한방부인과 이인선 교수 건강 칼럼(9)

체질과 약물
발행일 발행호수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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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기바라는 전설적인 의성(醫聖)이 공부를 마치고 스승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러 가자 스승은 마지막 문제를 그에게 제시하였다. “오늘부터 백일동안 세상을 돌아 다니면서 약이 안 되는 풀을 세 가지만 구해와라. 이것을 찾아야만 너에게 의사의 자격을 허락하리라” 기바는 그날부터 세상의 약초가 안 되는 풀을 찾아 헤맸으나 결국 허탕을 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스승 앞으로 의기소침하게 돌아왔다. 그러자 스승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세상에 위대한 명의(名醫)의 탄생을 선포하였다한다.
의성 기바의 고백처럼 세상에는 약으로서 쓸모없는 것이 없으니 버릴 것이 없는 반면 약으로 사용하기 위하여서는 이들의 기미(氣味)를 잘 알고 그 특성을 잘 이용하여야 약으로서 효용을 얻을 수 있다. 만일 성질을 잘못 파악하여 오용하면 약이 아니고 오히려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최근 건강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커져 각종 건강식품과 특효약에 관한 정보가 매스컴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간경화에 무슨 녹즙이 특효다, 양기 돋우는 데는 필리핀의 코브라 쓸개가 최고라는 등 알로에, 당두충, 지렁이, 개구리, 상어 간 심지어 바퀴벌레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기사회생 하였으니 그것이 세상에서 최고 만병통치약으로 굳은 신뢰를 하고 남들에게 권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그것을 먹고 오히려 더욱 건강이 악화되어 울상을 짓기도 한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에게는 좋은 약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죽음을 앞당기는 독약이 되는가? 이는 각 약물에는 편벽된 성질과 기미가 있어 특정한 편향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떤 사람의 체질과 병증에 적합한 경우에 그 사람에게 특효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이며 반대로 체질과 병증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켜 건강에 크나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처럼 한의학에서는 모든 약물을 관찰하고 그 효용을 추론하는 방법이 있다.

사상의학에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질이 있어 그에 따른 생리가 다르고 병리도 다르므로 합당한 약물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제마(李濟馬)는 체질과 병증에 맞는 약을 사용하면 중병에서 인명을 구할 수 있으되, 만약 잘못 투여하면 살인할 것이라 경고 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약물은 올바로 사용하면 아무리 하찮은 길가의 쇠똥일지라도 훌륭한 약이 될 수 있으며 아무리 훌륭한 산삼과 녹용이라 할지라도 체질과 병증에 맞지 않으면 살인하는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삼은 소음인에게 적합한 약으로 타 체질이 잘못 복용하면 피부에 발진이 돋거나 열이 나며 몸이 무거워지고 오히려 병을 악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소음인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훌륭한 약이 된다. 또한 녹용은 태음인의 약으로서 누구나 훌륭한 보약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터무니없이 값만 비싸지 별로 효과가 신통치 않다고 서운해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진찰도 하지 않은 채 비전문가에게 고가의 보약이라 하여 선물을 한다는 말을 듣고 고소를 금할 수가 없다. 그 사람의 체질이나 병증을 알지 못하고 비싼 값을 치르고 선물을 해봤자 그 보약이 건강에 도움이 될 확률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비단 보약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약재마다 따뜻하고 찬 것이 있어 체질마다 적합한 약재가 있고 해로운 약재가 있다. 그 약재의 성질이 체질에 맞지 않으면 증상에 맞고 안 맞고를 따질 것도 없이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체질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하고 값비싼 보약도 독약이 될 수 있다.

동의대 한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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