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유율법을 지키는 것임을 깨달아

오경근 관장(2) / 죽성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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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설교 시간에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자유율법’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자유율법을 지킨다는 것은 마음과 생각으로도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행동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으로 범죄한 것도 하나님 앞에는 죄가 되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성경 구절을 하나하나 풀어 주시며 여러 가지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중에서 저는 자유율법에 관한 말씀이 가장 인상 깊게 남았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형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엄중하고 세밀한 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흘간의 집회 기간 중에는 3일 동안 체육대회도 함께 열렸는데, 서울운동장으로 향하는 교인들의 인파에 묻혀서 저도 체육대회를 관람하러 갔습니다. 운동장 본부석에 계신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만면에 미소를 띠우신 모습으로 선수들의 경기를 바라보셨습니다. 대회 중에 안내 방송으로 100미터 달리기를 한다는 것을 들었을 때 저는 학교에서 육상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나도 학생 때 육상 선수를 했었는데…….”라고 혼잣말을 했더니 옆에 있던 분이 “그럼 나가서 뛰어 봐요.”라고 했습니다. ‘아픈 몸인데 뛸 수 있을까?’ 하고 주저하면서도 그분의 말에 용기를 얻어서 100미터 경주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시작 신호와 함께 운동장 트랙을 박차고 나갈 때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발이 땅에 닿는 것이 아니라 공중을 휙휙 나는 것처럼 제 몸이 달려가는 것이었습니다. 1등으로 골인한 후 얼른 뒤를 돌아보니 2등이 한참 뒤에서 달려오고 있었으며 본부석의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저를 보시고 활짝 웃으시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리셨습니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고 상쾌하여 저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태어났다!’라고 가슴속으로 외치며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제가 건강한 몸으로 다시 태어난 그날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예배에 열중하다가 죄 타는 냄새와 성신의 향취를 맡고
그 은혜 속에서 마음은 한없이 기쁘고 즐거워져
문득 ‘내가 이 자리에 안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설마 꿈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 깊이 하나님께 감사드려

저는 집회 중에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제가 체험한 일들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느닷없이 맡아지던 고약한 냄새는 은혜를 받아 죄악이 소멸될 때 나는 냄새이며, 집회장에 계속 진동하는 좋은 향기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신의 향기라고 하셨습니다. 그 은혜 속에서 저는 마음이 한없이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예배에 열중하다가도 문득 ‘내가 이 자리에 안 왔다면 어떻게 됐을까?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토록 귀한 자리에 불러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몸은 날아갈 듯 가볍고 마음은 한없이 즐거워서 세상 최고의 부자라 한들 저보다 더 좋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이만제당 개관집회에 함께 했던 장로장립식에서
박 장로님께서 한 사람씩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해 주실 때
입에서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더니 예배실을 가득 채워

집회 중 하루는 장로장립식이 열려서 장로로 임명받은 분들에게 박 장로님께서 안수를 해 주셨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한 사람씩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쉭! 쉭!” 하며 축복해 주셨는데, 그렇게 축복하시는 순간 박 장로님의 입에서 뽀얀 안개 같은 것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뽀얀 것이 예배실에 점점 퍼져서 나중에는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을 계속 들으면서 그 뽀얗게 내리는 것이 바로 성경 호세아서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주 잘 익은 망고처럼 부드러운 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목으로 넘어가니 며칠씩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고픈 줄 몰라
나중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라는 것을 알게 돼

집회에 참석하는 동안 저는 웬일인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서울에 올 때 챙겨 온 미숫가루도 있었지만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서 사람들에게 전부 나눠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록 허기가 느껴지지 않으니 ‘배가 왜 안 고프지? 참 이상하다.’ 하고 의아했는데, 곰곰이 돌이켜 보니 예배를 드리다 보면 입 안에 무엇이 꿀꺽꿀꺽하고 넘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망고가 없었던 시절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잘 익은 망고처럼 아주 부드러운 것이 꿀꺽하고 넘어가며 그 순간 상쾌하고 좋은 향기가 진동했습니다. 그것이 하루에도 몇 번씩 목으로 넘어가니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몰랐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나’라는 말씀을 나중에 듣게 되었습니다.

집회가 끝나고 집에 갔을 때 어머니는 제 모습을 보시고 깜짝 놀라셨습니다. 항상 누렇게 뜨고 병색이 짙었던 제 얼굴이 몰라볼 정도로 뽀얗게 피고 화색이 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집회에 가기 전에 “거기 가면 병이 나을지도 몰라요.”라고 말씀드렸었는데, 어머니는 “정말 네 병이 나았구나!” 하며 기뻐하셨습니다. 이만제단 집회에 다녀온 후로 저는 완전히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매일 예배를 드리고 싶었지만 저희 동네에는 전도관이 없어서 우선 작은어머니 댁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사람들이 전도되면서 2, 30명 정도가 같이 예배를 드렸습니다.
1957년 7월에는 경기도 수원에 전도관이 세워져서 엿새 동안 개관집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박태선 장로님께서 수원제단에 오셔서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을 뵙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통을 향해 “쉭! 쉭!” 하고 축복하신 후 그 생명물을 사람들에게 한 병씩 나눠 주셨습니다.

집회 3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쉬고 있을 때 수원제단 교인 분의 입관예배를 드린다고 했습니다. 제단에 시신을 모셔 와서 입관예배를 드렸는데 40대로 보이는 그 남자 분은 얼굴이 누런빛을 띠고 온몸이 장작개비처럼 딱딱하게 굳어 보였습니다. 게다가 더운 여름 날씨에 시신이 부패되어 썩는 냄새가 코를 들 수 없을 만큼 지독하게 풍기는 것이었습니다. 남자 교인 몇 분이 시신 주위에 둘러앉아 생명물로 닦으시는 동안 다른 교인들은 힘차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하다 보니 고약하게 풍기던 썩는 냄새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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