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은혜 속에서 심령이 새롭게 깨어나 깨닫게 된 진리”
<487회> 진영섭 퇴임관장(1)/기장신앙촌1942년 저는 충남 논산시 연무읍에서 5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크게 지었던 저희 집은 비교적 부유한 편이어서 저와 형제들은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1961년 스무 살 때였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저는 졸업 후에도 연무읍 강경에서 유도를 배우며 체육관 운영을 하는 것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국민학교를 함께 다녔던 김영재라는 친구가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터라 중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육도시였던 공주로 가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한참을 만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찾아와주니 반가운 마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친구는 극심한 두통으로 힘들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두통을 고치려고 병원을 다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어 답답해하고 있었는데 박태선 장로님 집회 소식을 듣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집회에서는 병자들의 병이 낫고 벙어리가 말을 하는 등 기사 이적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전도관을 찾아 모여들었고 친구도 그곳에 가게 된 것입니다. 집회를 마치고 박 장로님께서 축복해주신 “생명물”을 마시고 깨질듯한 두통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박 장로님께서 세우신 “전도관”을 다니고 있다고 말하며 저에게 함께 가보자고 했습니다. 사실 저희 마을에는 큰 장로교회가 있어 동네 사람들 절반 정도가 다니고 있었지만, 저뿐 아니라 가족 모두 아무 종교도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전도관이라는 곳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주에 바로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이슬같은 은혜가 향기로 맡아지는 경이로움
전도관은 저희 집에서 4킬로미터 정도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지만, 친구와 함께 걸으며 즐거운 마음으로 갔었습니다. 도착해서 보니 연무대 전도관이었습니다. 예배실에는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고 저도 그 틈에 들어가 찬송을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종교에 대해 잘 몰랐지만, 그곳에서 하는 모든 것이 참 좋게 느껴져 그 이후에도 계속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친구와 함께 세 번째로 전도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단상 바로 앞에 앉아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단상 쪽에서 제가 있는 곳으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주변을 둘러보며 ‘예배실 문이며 창이 다 닫혀 있어 바람이 불만한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된 일이지?’ 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기만 했습니다.
어느새 예배가 시작되고 전도사님의 인도에 따라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번도 맡아보지 못한 아주 좋은 꽃향기가 진하게 맡아지더니 소낙비가 내리듯이 향기가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그 좋은 향기가 배 속까지 들어오다가도 일부러 맡으려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어느새 싹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다 다시 향기가 나타나 맡아지다가 또 깊게 들이마시면 사라지기를 반복했습니다. 주변에 꽃도 없고 향기가 날 만한 것이 전혀 없는데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기는 것인지 궁금하면서도 기쁨이 차올라 딴 세상에 와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예배가 끝났는지도 모르고 계속 향기를 맡으려고 여기저기 코를 킁킁거리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던 친구가 무슨 일이냐며 물어서 저는 예배 시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친구는 그것이 “향취 은혜”라고 하면서 성경 호세아 14장 5절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같이 필 것이요~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하는 구절을 말하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라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는 이슬같이 내리는 은혜를 볼 수 있고 향기를 맡을 수 있는데 그 이유가 바로 박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성경 구절 속의 그 향기를 내가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차원을 넘어선 신의 차원의 세계가, 제 눈앞에 나타나 마음과 영혼을 새롭게 깨어나게 해주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전도관에 놀라운 권능이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변화를 일으켜
그 후 저는 매일 새벽예배를 나가게 되었습니다. 논길을 따라 찬송을 부르며 전도관을 오가던 그 길에는 향취가 진동해 기쁨이 넘쳐났습니다. 어떤 날은 향기를 보자기에 담고 있다가 쏟아 부어주는 것 같아 깜짝 놀라기도 했고, 사과 향 같은 향취가 가슴속에서 배까지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에는 몸까지 가벼워져 그 먼 길이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으니 저에게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생활하는 중에도 기도가 끊이지 않고 계속하고 싶어져서 공부하면서도 화장실을 가면서도 쉼 없이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놀라운 은혜체험을 전하고 싶어 친구나 가족 등 만나는 사람들에게 은혜받아 기쁨이 가득했던 일을 말해주었습니다. 제일 먼저 저희 동생들을 전도해서 일요일 예배에 함께 가게 된 날은 무척 기뻤던 기억이 납니다.
화가 나는 순간 은혜가 떠나버리고 마음이 답답해져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대하지 않으셨던 부모님께서 갑자기 전도관에 가는 것을 못마땅해 하기 시작하셨습니다. 동네 장로교회 사람들이 저희 부모님께 전도관은 이단이라며 보내면 안 된다고 비방을 하니 그 말만 믿고 다니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아버지와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전도관이 나쁘다고만 하시며 더는 가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잘 모르시면서 동네 사람들 말만 듣고 반대만 하시는 것이 화가 났습니다. 속으로 ‘아무것도 모르시면서 저러시는구나’ 하며 솟구치는 화를 꾹 억누르려고 했습니다. 그때 은혜가 쑥 빠져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더니 마음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하나님 은혜가 떠나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저는 부모님께서 저를 믿으실 수 있도록 책임감 있게 행동하려고 노력했고 전도관에 대해서도 이해하실 수 있게 조금씩 설명해 드렸더니 점차 부모님 마음이 수그러지셨습니다.
안찰을 통해 성신의 놀라운 권능을 깨닫게 돼
얼마 후 공주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공주 전도관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먼 거리를 달려 도착한 전도관에는 맨 뒤에까지 사람들이 서 있었고 늦게 도착했는지 예배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단상 쪽을 바라보니 단에 서 계시던 박 장로님께서 사람들에게 안찰해 주신다고 하시며 단에서 내려오셨습니다. 단상 옆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고 몇 사람은 박 장로님 옆에서 안내를 했습니다. 안찰을 받아 본 적이 없었던 저는 마냥 궁금한 마음에 멋모르고 맨 앞으로 가서 박 장로님께서 안찰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이 차례대로 안찰을 받았는데 박 장로님께서 배에다가 손을 살짝 얹어주시며 안찰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반응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금 아픈듯이 보이다가 괜찮아졌는지 얼굴이 평온해져서 나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전혀 아파하지도 않고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한 젊은 남자가 박 장로님께 안찰 받을 때였습니다. 그 사람 배에 박 장로님께서 두 손을 대시려는 순간 청년은 아프다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분명 바로 옆에서 보았는데 박 장로님 손이 배에 닿지도 않았고 10센티미터 정도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순간 배에서 갑자기 무언가 불뚝불뚝 솟아오르는데 마치 팥죽을 끓일 때 새알이 올라오듯 여기저기에서 주먹만 한 것이 튀어 올라왔습니다. 그 사람은 너무 아파하며 발버둥을 쳤고 박 장로님의 손길이 옮겨 가려고 하면 불뚝불뚝 솟아오르던 것들이 도망가듯 피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 처음 보는 광경이었습니다. 사람이 배에 힘을 준다고 한들 어떻게 볼록볼록 올라오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이 분명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는 박 장로님이 권능을 행하시는 분이고 그 놀라운 권능으로 참된 구원의 길로 이끌어 주실 분이라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전도사님께서 설명해 주시기를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신다고 하셨고 안찰 받을 때 아픔을 느끼는 것은 인간 속에 있는 마귀가 성신에 대항하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안찰을 받고 나서 아침 햇살처럼 평안해져
그 후 대전에서도 박 장로님께서 집회를 여신다고 하셔서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공주보다 더 먼 거리에 있었던 대전 전도관에 가기 위해 일찍부터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도착해서 보니 예배실 안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조금이라도 더 앞자리에 가고 싶은 마음에 중간쯤까지 들어가 앉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등단하신 박 장로님께서는 찬송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신 주” 찬송가 64장을 뜻에 맞춰 기도하시듯 부르시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마음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이어서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192장 찬송을 하실 때였습니다. 박 장로님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빛나는 모습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오신 분처럼 고귀하게 보여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기 때문입니다.
어느덧 예배가 끝나고 박 장로님께서는 참석한 사람들에게 안찰을 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배실 밖으로 나간 사람들이 길을 따라 모두 줄을 서서 차례대로 안찰을 받았습니다. 난생처음 안찰 받게 된 저는 기도를 드리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안찰 받을 때 박 장로님의 손이 제 배에 닿자마자 배 속을 쥐어 짜내는 것처럼 아파서 고함을 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때 박 장로님께서는 “이 고집, 고집, 고집”이라고 세 번을 지적하시면서 고집이 다 빠져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안찰을 받고 걸어 나올 때는 제 몸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져 마치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팠던 배는 시원해지면서 말할 수 없이 상쾌해졌고 또 마음은 아침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안해졌습니다. 처음 안찰 받고 나서의 그 순간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그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며 평안한 마음이 다시 찾아오는 듯해 미소가 지어집니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