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내 마음에 성신을 모시고 살고 싶어

최재연 퇴임관장(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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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연 퇴임관장 체험기

최재연 퇴임관장

<지난 호에 이어서>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스물다섯 살에 결혼하고 인천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이만제단에 다녔고 인천 살면서부터 인천전도관에 다녔습니다. 웅장한 인천전도관은 숭의동 산언덕에 있어 시내 어디서나 보였는데, 남편에게 전도관에 같이 가자 했더니 일요일마다 따라나서긴 하면서도 싫은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그런데 연배가 비슷한 인천전도관 전도사님과 자주 대화하며 가까워지더니 심방하시는 전도사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전도사님이 축현동에 새로 전도관을 지을 때도 매일같이 나가서 도와 드리고 장례예배 가실 때도 곧잘 따라가는 눈치였습니다.

싫은 표정으로 전도관 따라왔던 남편
장례예배에서 생명물로 핀 시신 보더니
새벽예배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가
얼마 후 교육을 받고 전도사 발령받아

한번은 남편이 집에 와서 장례예배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원래 얼굴이 까만 편이었던 고인을 생명물로 씻기고 나자 피부가 너무 환하고 뽀얗게 피었다며 신기하다고 연신 감탄했습니다. 그때부터 나가자는 말을 안 해도 새벽예배에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갔습니다. 그 후 전도사 수강생을 모집할 때 꼭 해 보고 싶다고 자원하더니 교육 과정을 수료하고 전도사로 발령받게 됐습니다.

일요일예배 때면 전도사님이 등단하기 전에 교인들이 돌아가며 준비 찬송을 인도하거나 주일학생에게 찬송을 가르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도 찬송을 인도해 보라 했지만 워낙 수줍음이 많아 한 번도 앞에 나서서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1983년 교역자로 추천받았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여러 모로 부족해서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막상 추천을 받고 보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예비 교역자들이 서울과 부산으로 나눠져서 정식으로 교육받을 때 저도 부산에서 참여했습니다. 설교와 예배 등의 교육과 함께 선배 교역자의 경험담을 들으면서 은혜 주시는 귀한 직분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 교역자들을 불러서
안찰을 해주시는데 “끝까지 열심히 해”
하시며 손을 떼시자 아주 좋은 향취
진동하여 마음에서 기쁨과 용기 솟아

교육 마지막 날은 하나님께서 기장신앙촌으로 부르셔서 안찰해 주셨습니다. 제 차례가 됐을 때 두 눈에 손을 얹으신 후 부드러운 음성으로 “교역자 나가지? 끝까지 열심히 해.” 하셨습니다. 제 눈에서 손을 떼시자마자 아주 좋은 향취가 진동하며 마음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어디서 그런 용기가 솟아나는지 하나님 은혜 주시는데 무엇을 못하랴 하며 마음이 아주 든든해졌습니다. 울진 천부교회로 첫 발령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습니다. 저는 원효로 구제단 주일학생 시절부터 마흔 살이던 그때까지 꾸준하게 교회에 다니며 계속 말씀을 들었는데 교역자로 발령 받은 후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교역자가 되기 전에도 축복일예배에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교역자가 되어 제단에서 하나님 말씀 테이프를 계속 듣다 보니 ‘이런 말씀도 하셨구나!’ 하며 놀라는 때가 많았습니다. 지구 창조부터 구원과 심판까지 세밀히 짚어 주시는 말씀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달고 오묘한 그 말씀”이라는 찬송이 딱 맞았습니다. 특히 초창기부터 체험해 온 은혜와 풀어 주시는 말씀이 딱딱 맞을 때는 말씀이 꿀송이보다 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 창조부터 구원과 심판까지
하나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세밀히 짚어 주시는 말씀 재미있어
말씀이 꿀송이보다 더 달다는 것 실감

초창기 원효로 구제단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한겨울 창문이 꽁꽁 얼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제부터 창문 녹는 것을 보여 주겠다 말씀하시면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창문은 꽝꽝 얼어 있는데도 그늘진 창문에 하얗게 얼어붙어 있던 성에가 스르르 녹아 내렸습니다. 예배에 모인 사람들이 다 같이 그것을 보며 신기하다고 손뼉 치며 기뻐했던 일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말씀하시며 그때 이미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 주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 하나님!’ 하고 속으로 외치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직접 보고 느꼈던 일이 말씀과 연결되니 하나님이심을 깊이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권능으로 보여 주시고, 은혜 내려 주시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원효로 구제단 시절, 꽁꽁 얼어붙은 창문이 녹는 것을 보여주시겠다 하신 하나님
햇살이 비치는 창문은 그대로 얼어있는데, 그늘진 쪽 창문의 성에는 스르르 녹아 내려
그때 이미 창조주임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하나님 말씀을 듣다가 깨닫게 돼

또 교역자로 입관예배를 인도하면서 여러 모로 깨닫는 점이 많았습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생명물로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았고, 허전하고 슬펐던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뻐지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에 입관예배에 정성을 기울이며 귀한 은혜를 간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1990년 논산 천부교회에서 시무할 때 직접 고인을 생명물로 씻겼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 권사님은 연세가 높으셔서 교회에 거의 못 나오셨기 때문에 유족들은 천부교회와 상관없이 장례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고인의 막내 아드님이 어머니 살아생전에 천부교회 식으로 장례를 치러 달라고 간곡히 당부했던 것을 기억하고 교회로 연락해 온 것이었습니다. 이미 염을 끝낸 상태라는 말에 급히 생명물을 챙겨서 교인들과 함께 그 댁으로 갔습니다. 마침 장례반 권사님들이 안 계셔서 제가 고인을 씻기게 됐습니다. 삼베로 꽁꽁 묶어 놓은 매듭을 풀고 생명물로 고인을 씻겨 드리자 팔다리가 부들부들해져서 나이든 할머니가 아니라 유연한 아이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여졌습니다. 입술에 자글자글했던 주름이 곱게 펴지고 피부 또한 뽀얗고 환하게 피어서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습니다. 장례를 부탁했던 막내 아드님은 깊이 허리 숙이며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권사님을 생명물로 씻기자
팔다리가 유연해지고 입술은 주름이 펴지고
피부도 뽀얗고 환하게 피어서 
막내 아들이 허리 숙여 고맙다 인사해

당시는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시고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직접 뵙고 은혜 받으며 따라왔는데, 낙원 가신 후에도 변함없이 은혜 주시며 함께하신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생명물로 씻어서 곱고 예쁘게 핀 권사님을 보며 ‘권능으로 함께하시는구나! 우리 곁에 계시는구나!’ 하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 눈물 흘리며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일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서울과 청주, 춘천 등지에서 시무하다가 올해 34년 간의 교역 생활을 마무리하고 정년 퇴임했습니다. 교역자로서 교인들과 한마음으로 준비하고 애쓰고 정성을 기울인 만큼 은혜 주신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확실한 은혜가 있고 분명한 하나님 말씀이 있으신데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 이루지 못한 일들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이제 신앙촌에서 지내면서 제2의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마음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만큼 일을 찾아서 하려고 합니다. 아름다운 신앙촌에서 내 마음에 성신을 모시고 산다면 그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싶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신앙인이 되어서 그날에 구원의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늘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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