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수 같은 이슬은혜와 향취에 가슴 벅차도록 감사

최온순 승사(1)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105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저는 1925년 물 맑고 공기 좋은 황해도 안악군 덕산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곳에는 일찍부터 장로교가 들어와 주민 대부분이 마을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덕산 장로교회에 다녔는데, 저희 부모님은 교인들 사이에서 가장 열심히 믿는다는 평을 들을 만큼 아주 독실한 신자였습니다. 그런 부모님의 영향으로 저도 교회에 열심히 다녔으며, 오빠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목사가 되었습니다.

스무 살 되던 해 장로교 집안으로 시집을 간 저는 6·25 전쟁 중에 피난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목사 일을 보고 있던 오빠를 찾아가니, 오빠는 남편(故 장세호 집사)이 대구에 있는 미국 선교회에서 일하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선교회의 도움으로 목사와 선교사들이 사는 주택지에 집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1955년 6월, 저는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성경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같이 공부하는 한 학생이, 칠성동에서 박태선 장로님의 부흥집회가 열린다며 꼭 가 보라고 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예배를 인도할 때 입에서 불이 쏟아져 나와 불의 사자라고 불리며, 집회장에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고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나 하며 그 이야기가 믿기지 않았고 오히려 의심쩍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회에 가지 않고 있었는데, 그 학생이 며칠 동안 간곡히 권유하여 ‘어떤 곳인지 한번 가 보기나 하자.’는 생각으로 집회장을 찾아갔습니다.

단상에 서신 박태선 장로님은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 차림으로 굉장히 깨끗하고 환한 인상이셨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눈물 흘리며 간절히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드넓은 집회장에 빼곡히 모여 있는 사람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안수해 주신 후 “병 나은 자는 다 일어나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일어나 병이 나았다며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었고, 집회장은 온통 축제라도 열린 듯 기쁨과 환호가 넘치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기쁘지도 않고 그저 맨송맨송하기만 했는데, 그런 제 모습이 무척 어색하게 느껴져 ‘여길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니, 이웃의 목사님이 제가 박 장로님 집회에 다녀온 것을 알고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오늘 어떤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하고 묻기에 아무 은혜도 받지 못했다고 했더니, “그렇게 향취가 나고 이슬은혜가 내리는데 하나도 체험하지 못했습니까?” 하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름대로 진실하게 믿어 왔다고 생각했는데, 남들이 다 받은 은혜를 나는 못 받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속상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집회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은혜를 받기 전에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집회가 열린 며칠 동안 박 장로님께서는 종종 “마음 문 여세요.”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기도는 오직 마음을 열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내 마음이 얼마나 더러우면 귀한 은혜를 못 받는 것인지, 그 안타까운 심정은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나 낮고 추한 죄인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지금까지 믿노라 했던 것이 한없이 부끄러울 뿐이었습니다. 애타는 심정으로 간절히 기도드리다 보면 쉼 없이 흘러내린 눈물로 자리가 흥건히 젖어 있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집회가 거의 막바지에 이른 날이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단상에 서셔서 “쉭! 쉭!” 하고 축복을 하시자, 박 장로님 입에서 뽀얀 안개가 퍼져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개가 사람들에게로 오는 것이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한없이 내렸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전혀 닿지 않고 싹싹 피해 갔습니다. 그 신기한 광경에 저는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 은혜는 합당한 자에게만 내리는구나. 은혜가 피해 가는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 절실히 깨닫게 되었고, 제가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제 머리 위에 물이 쏟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주 많은 물이 한꺼번에 쫙 쏟아져 온몸이 흠뻑 젖는 느낌이었는데, 아무리 옷을 만져 봐도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무슨 꽃향기인지 너무나 좋은 냄새가 코로 확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제가 은혜를 받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이슬은혜와 너무나 향기로운 향취 은혜……. 귀한 은혜를 주심에 가슴이 벅차도록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렸습니다. 이전에 느껴 보지 못했던 한없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서 어느새 시간이 다 지나고 집회는 끝이 났습니다.

당시 남편은 선교회 일의 하나로 부흥집회가 열리는 곳에 천막 치는 일을 했었는데, 박 장로님 집회 때도 여러 명의 청년들을 데리고 천막을 친 후 집회에 참석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던지 그해 가을 대구에서 박 장로님 집회가 또 열렸을 때 남편은 박 장로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이제부터 박 장로님 집회하시는 곳을 따라다니면서 일을 돕기로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릴 때마다 가족들 모두 참석하자고 했습니다. 갑작스런 이야기였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계속>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