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제단(7) 특전대②

한경직 목사에게 성경 토론 신청
발행일 발행호수 2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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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 1957년 이만제단에서의 설교. 신축된 서울중앙전도관에서 복음의 말씀을 설교하시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도하다가 매를 맞고 핍박을 받을수록 특전대의 사기는 올라갔다. 노량진 징로교회에서 심각한 폭행을 당하였지만 특전대는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다음날 수십명이 영락교회로 한경직 목사를 찾아갔다. 한경직 목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단이라고 규정하여 2천 여명 은혜 받은 목사들이 하루아침에 하나님께 등을 돌리게 만든 장본인이었다. 그러나 전도관 특전대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한경직 목사는 어디로 피해 버리고 한경직목사를 만나지 못한 특전대는 영락교회 교인들을 붙들고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혈기를 내며 대항하는 자도 있고 천막집회에 참석하여 은혜의 맛을 본 자는 긴가 민가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김원태전직관장의 말이다.

당시의 또다른 특전대원이었던 백정환(67세. 기장신앙촌) 전직 관장의 증언을 들어본다. “미아리 언덕의 비탈길에 있었던 제일교회로 짐작되는데 그 교회로 여러 명이 가서 목사에게 면회를 청하자 목사가 나오기에‘ 성경 토론 좀 합시다. 우리들은 장차 이 나라 종교계를 걸머지고 나가고 싶어서 목사님께 배우러 왔는데 숨김없이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성경에 감람나무라는 문구가 나오는데 감람나무가 누굽니까’하니 목사가 대답하기를 ‘감람나무는 여호수아와 엘리야입니다.’하고 대답하므로 ‘그러면 그분들이 지금 이슬성신을 내릴 수 있습니까’하고 질문한 후에 ‘예배당 문안에만 들어오면 구원 얻는다고 하는데 그러면 젊은 날에 세상에서 맘껏 놀다가 죽을 때쯤 되어서 교회에 나와 ‘주여’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니 목사가 약이 올라 청년들을 불러 우리를 한사람씩 끌어냈습니다.

그날 목사가 부른 청년들에게 처음으로 매를 맞아 봤습니다. 따귀도 맞고 후크도  맞았습니다. 저녁에 각 교회에 갔던 대원들이 다시 제단에 와서는 우리는 어디에 가서 이렇게 했다 저렇게 했다 하면서 그날 활동했던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갖곤 했습니다.”

감람나무가 여호수아라는 답변에 `여호수아가 이슬성신 내립니까?`

특전대의 전도는 헛되지 않았다. 특전대원들을 중심으로 한 천년들은 전도활동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체험하면서 감람나무의 체계가 더욱 확고하개 섰고 목사가 성경 토론에서 답변을 못하는 것과 목사의 비겁한 폭력행위를 본 많은 기성교인이 전도관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폭력을 휘둘러도 막을 수 없었던 특전대의 전도에 기성교회 총회에서는 마침내 각 교회에 공문을 보내고 “전도관 특전대원을 일체 상대하지 말고 토론도 벌이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게 되었다. 장일천 관장(67세. 기장신앙촌)의 증언.“이만제단이 완공되는 시점에 저는 주일학교 반사와 특별전도대원으로 있으면서 전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을 따라 ‘무더기 심방’도 하고 북을 치며 노방전도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만제단에는 어찌나 많은 사람이 모였던지 일요일 대예배 때에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를 이뤘습니다. 이만 제단은 서울에 사는 사람 치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지붕에는 ‘서울중앙전도관’이라는 대형 네온사인이 밤새 번쩍였으며,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대형 음악종이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졌습니다. 새벽이면 강 건너 영등포 구로동까지, 강북에서는 북한산까지 들리는 정도였습니다. 그 아름다운 음악종 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어 감동을 주었는데, 심지어 한강에 자살하러 나왔던 사람이 그 종소리를 듣고 마음을 돌이키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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