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제단(8) 특전대③

나팔불고 노방전도하며 감람나무를 증거해
발행일 발행호수 2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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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특전대의 또 다른 전도 활동은 하나님의 지방 순회에 앞서 순회 예정 도시에 가서 밴드를 불고 북을 치며 노방 전도를 하고 밤에는 영사기를 돌려 하나님과 전도관의 소식을 전하는 것이었다. 특전대의 노방전도와 전도영화 상영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신기한 광경을 지켜보았으며 그 효과는 매우 컸다. 그러나 당시의 영사기에는 녹음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영화를 상영할 때는 화면을 보면서 변사(辯士)가 옆에서 말로 일일이 화면을 설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당시 특전대 선전부장이었던 이정길(60세. 기장신앙촌 남자숙소 사감)씨는 영사기를 돌릴 때 변사 역할을 맡았었다. “제가 김포에서 많은 사람을 모아놓고 영사기를 돌리며 신이 나서 감람나무를 증거할 때였습니다. 화면을 보면서‘기성교회 목사들은 벙어리 개와 같고 눈뜬 장님과 같다’고 외치고 있을 때 별안간 큰 돌맹이 하나가 날아와 제 뒷머리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돌을 맞고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숙소인 여관방이었습니다.”
변사가 쓰러지자 영화 상영은 중단되고 말았다. 이러한 핍박은 비일비재 하였지만 특전대의 사기는 충천하였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과 안찰을 받았고 때로는 하나님과 한 기차를 타고 지방을 순회하는 신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특전대원으로 활약했던 사람들의 회고담을 들어 본다.
“특전대는 특별전도대라고 했던 만큼 전도를 목적으로 결성되어 기성 교회의 핍박에 대항하고 참진리를 증거하였어요. 그래서 기성교회마다 다니면서 목사들이 무슨 설교를 하나 보러가요. 나중에 예배 끝나고 나면 그 설교한 목사와 설교내용 가지고 토론을 해요. 그래서 두 명이서 조를 짜서 기성교회에 가기도 하였는데 가보면 전도관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는 곳이 없었고, 하나님을 나쁘다고 말하지 않는 교회가 없었어요. 하나님 이야기가 안 들어가면 설교가 안되는 모양이었나 봐요.
그래서 예배가 끝나면 그 목사를 입도 벙긋 못하게 만들어 버리니까, 우리를 엄청나게 핍박했죠. 깡패 불러다가 우리를 혼내 주려고도 많이 그랬어요. 그런 상황에서 전도관이 이런 곳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방전도 할 때는 메가폰을 하나씩 들고 다니며 찬송을 부르기도 했죠. 어딜 가도 창피한 줄을 모르고 그냥 막 찬송가를 부르며 다니는 거예요. 북치며 찬송 부르는 것이 그 때도 좋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었어요.” 안혜석(64세. 기장신앙촌)
“그 때는 다들 참 열심히 했어요. 따로 조건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정말 열심쟁이 아니면 특전대에 들어가지 못했어요. 특전대는 ‘특전대’라는 이름표가 붙어 다녔어요. 행동을 아무렇게나 할 수 없었어요. 그 때 특전대는 전도관의 이미지였어요. 학생들 간에도 그렇고 전도관 식구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으로 부러움을 샀어요. 자기네들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개인적인 사정이 그렇지 못하니까 부러워할 뿐이었죠. 지금도 제가 특전대 출신이라는 생각이 참 저를 많이 잡아 주는 것 같아요. 신앙이 조금 헤이해질 때도 ‘예전의 신앙을 찾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박순희(66세. 서울 노량진교회)
“특전대 활동을 할 때는 하루하루를 참 빠듯하게 생활했어요. 그 때 우리는 제단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었는데, 잠을 자는 시간은 얼마 없어요. 새벽예배 끝난 후 하나님께서 안수해 주시면 잠깐 아침 먹고 금방 또 와서 성경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전도, 심방을 하러 나갔어요. 체계를 담은 책이 한 권 있었는데, 밤새 그 책 들여다보고 있다가 기도드리느라 무릎 꿇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잠깐 들면 새벽 3시에는 교인들이 오시기 전에 일어나야 됐어요.
그리고 우리는 두 다리 뻗고 편안히 자면 죄송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때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나름대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몰라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감사’라는 마음이 먼저 들었어요.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 때의 우리 마음들이 그랬어요. 거의 매일 철야하고 한강에 가서 얼음 깨고 세수하고. 그렇게 제단에서만 살다시피 하니까 하루는 안수를 하시면서 “너희들 얼굴을 보면 여기 제단에 항상 있는 학생들과 제단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의 얼굴이 확실히 구분이 된다.”고 하셨어요. 제단에 항상 있는 학생들은 얼굴이 피어서 광채가 난다고 하셨으니 우리들 마음이 어땠겠어요. 더 열심히 하고 싶었죠.
이렇게 제단에서 살다시피 하며 은혜를 많이 받으니까 오랜만에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면 어머니가 빨래를 하시면서 이상하게 옷에서 향기가 난대요. 그리고 참 기분이 좋다고 그러셨어요. 하나님께서 참 힘도 많이 주시고 사랑도 많이 주셨어요. 무더기 심방하고 하나님 집회가 끝나면 하나님께서 수고했다 하시며 냉면을 사 주시기도 하셨어요.” 이종학 체험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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