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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소신앙촌(19. 끝) – 시온 어린이 합창단②

덕소신앙촌(19. 끝) – 시온 어린이 합창단②

음악인들 찬사속 각종 대회 휩쓸어

시온을 알리는 꼬마 전도사로 활발하게 활동을 했던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라디오 방송 뿐 아니라 본격적인 TV 방송이 시작 되면서 TV 출연 요청이 줄을 잇게 된다.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1962년 8월 14일 KBS TV 방송에 출연했다. KBS TV는 1961년 12월 31일 첫 전파를 내보냈는데 처음에는 서울 경기 지역만 시청이 가능했고, 개국 당시 수상기는 8,000대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

덕소신앙촌(18) – 시온 어린이 합창단①

덕소신앙촌(18) – 시온 어린이 합창단①

방송 출연 대회 공연 등 전방위 활약

덕소신앙촌 시절 시온 어린이 농구단만큼이나 주목을 받고 사랑을 받았던 것이 덕소 어린이 합창단이었다. 1963년 9월에 창단된 덕소 어린이 합창단은 TV와 라디오 방송 출연은 물론 국제 어린이 음악제에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다수의 합창 경연대회에 나갔으며 1967년 레코드를 취입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다. 덕소 어린이 합창단의 전통은 소사신앙촌 시절 시온 어린이 합창단으로부터 이어진다. 소사의 시온 어린이 합창단은 […]

덕소신앙촌(17) – 시온 어린이농구팀③

덕소신앙촌(17) – 시온 어린이농구팀③

시온을 드높이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

1965년 11월 14일자 소년한국일보는 제1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 결승전 경기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제1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 결승전은 1965년 11월 13일 장충체육관을 메운 각 학교 응원단의 북소리, 나팔소리, 고함소리가 체육관을 뒤흔드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시온 응원단 2,900명을 포함한 11,000여 명의 각 학교 응원단과 구경온 관중 등 모두 15,000여 명이 빽빽하게 들어찼는데 이와 같은 […]

덕소신앙촌(16) – 시온 어린이농구팀②

덕소신앙촌(16) – 시온 어린이농구팀②

시온 어린이농구팀의 묘기에 감탄한 사람들 '어린이들이 저렇게 잘 할 수가...'

어린이 농구공이 없던 당시에 어른용 축구공을 가지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시온 어린이농구팀은 드디어 제1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라는 무대에 출전하게 된다. 시온 팀은 먼저 ‘서울 혜화’ 팀과 대전했는데 1965년 11월 11일자 소년한국일보는 그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시온 어린이 팀과 어린이 농구의 강자였던 ‘서울 혜화’ 팀이 대전할 때는 ‘혜화’응원단 1,600명과 ‘시온’응원단 1,300명이 맞부딪쳐 ‘혜화’응원단은 북을 […]

덕소신앙촌(15) – 시온 어린이농구팀①

덕소신앙촌(15) – 시온 어린이농구팀①

어린이 농구의 신화를 다시 썼다

1960년대 중반 덕소신앙촌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어린이농구팀이 있었다. 평소에 스포츠를 권장하신 하나님께서는 덕소신앙촌 어린이들로 어린이농구팀을 만들어 탁구와 함께 신앙촌을 대표하는 체육 종목으로 육성하려고 하셨던 듯 하다. 어린이 농구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시온 어린이농구팀은 단시간에 전국대회를 내리 3연속 제패하면서 어린이 농구계를 평정하였으며 성인들 못지않은 스피드와 기술로 농구장을 누비면서 상대팀을 압도하여 관중들의 인기를 독차지 하였다. 어린이 농구하면 시온을 […]

덕소신앙촌(14)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⑪

덕소신앙촌(14)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⑪

신앙촌의 15년은 사회의 1세기

1970년 주간조선 박광리 기자의 보도는 다음과 같이 계속된다. “1억 원짜리 자가 발전기 4대를 갖춘 시온철강, 한일물산, 시온합섬의 산하엔 30여 개의 공장이 있다. 여기서 생산되는 제품은 무려 80여종. 술과 무기만 빼놓고는 거의 모두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들 시온(Zion) 상표가 붙은 신앙촌 제품은 품질 좋기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신앙촌 제품이 1백만 신도를 제외한 일반 가정으로 파고들어 […]

덕소신앙촌(13)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⑩

덕소신앙촌(13)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⑩

1970년 주간조선, 신앙촌의 생활상 상세하게 소개 - 반공정신 투철, 음악 스포츠 선호

1970년 9월 27일 ‘주간조선’은 덕소신앙촌의 생활상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보도했다. “이 곳 주민들은 모두 박 장로가 인도하는 새벽기도(새벽5시)에 참석하는 것으로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한다. 아침식사 후에는 모두가 신앙촌 안에 있는 각자의 일자리에서 8시간의 정상 근무를 하게 되는데 자가용 승용차를 갖고 있는 몇 몇 일반 기업체의 사장들을 제외한 공무원, 회사원, 대학생(신앙촌 안에 대학은 없다)들은 10여 대의 신앙촌 […]

덕소신앙촌(12)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⑨

덕소신앙촌(12)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⑨

신앙촌 자체 기술로 개발한 국내 최초의 전기로

1970년 9월 27일자 주간지 ‘주간조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옥고에서 자유의 몸이 된 박 장로는 곧이어 보다 근대적인 규모와 문화 시설을 갖춘 새로운 신앙촌 건설에 착수했다. 경기도 양주군 덕소리에 50만 평의 땅을 매입, 제2의 신앙촌 건설에 박차를 가한 것이다. 실로 그가 출감한지 한 달 뒤의 일이다. 특히 제철공업은 그가 평생에 이뤄보려는 사업 중의 하나였다. 그 후 […]

덕소신앙촌(11)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⑧

덕소신앙촌(11)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⑧

교세가 나날이 발전하자 기성교계가 총동원해 신앙촌에 큰 시련을 안겨줬다

1970년 주간조선의 신앙촌에 대한 보도는 계속된다. “한때 기독교 기성교단들은 박 장로를 이단자로 몰았으나 그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초교파적인 신앙운동을 이끌었으며  국민자주경제의 슬로건을 내걸고 신앙촌을 건설해 왔다. 이제 그는 시온경제권의 총수로서 그리고 백만 신도를 거느린 거물급 종교 지도자로서 성장했다.” 주간조선은 하나님의 존재에 관하여 단순한 부흥사가 아니라 성경에 예언돼 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박태선 장로는 지금으로부터 […]

덕소신앙촌(10)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⑦

덕소신앙촌(10) – 생필품에서 제철까지⑦

'산진수회의 명승지에 시온경제권' -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 앞 다투어 덕소신앙촌 보도

1963년 5월 7일자 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였다.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한강 둔덕의 20만 평 터전에 차려놓은 「제2신앙촌」은 착공 10개월 만에 벌써 서울의 위성도시처럼 그 규모가 틀이 잡혀졌다.   작년 7월 박 장로가 ‘자유율법을 지키기 위한 두번째 울타리’로 세웠다는 이곳은 이제 소사의 ‘제1신앙촌’을 능가하는 ‘시온경제권’을 이루고 있다.   호화선박도 건조   1만 평의 생필품 공장지대, 2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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