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12> 유일신(唯一神)을 만든 과정에 대하여

세계 종교 탐구<12>
발행일 발행호수 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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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1> 가뭄에 말라 죽은 6마리 기린들 (출처: 가디언)

지난해 12월 14일, 황량한 땅 위에 기린 6마리가 뒤엉킨 채 말라 죽어있는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자료1> 영국 가디언지는 이 사진을 실으며 “6마리의 죽은 기린들, 케냐 가뭄의 공포가 사진 한 장에 담겼다.”라는 제목을 달았다. 최근 케냐는 2011년 이후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목초지와 물이 사라져 가축은 말라 죽어 가고 농부들은 절규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역 목축업자 아흐메드 이브라힘은 “구할 방법이 더 이상 없다.”, “하늘의 뜻”이라고 안타까워하며 “비가 오기를 기도할 뿐”이라고 했다.

천재지변은 인간에게 있어 언제나 불가항력적인 존재였다. 저항 불가한 거대한 자연의 힘은 예로부터 신의 영역으로 여겨지곤 했다. 실례로 자연에 의한 불가항력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act of God’. 우리말로는 ‘신의 행위’이다. 이러한 인식의 시작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 수메르, 신들이 탄생하다

지금으로부터 7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 두 강 사이에 위치한 비옥한 땅에는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 문명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그들은 비약적인 속도로 문명을 발전시켜 나갔다. 그럼에도 좀처럼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자연재해였다. 태양에 농작물이 타거나 가뭄으로 말라 죽는가 하면, 거듭되는 홍수와 하천의 범람으로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 순식간에 폐허가 되기도 했다. 때문에 수메르 사람들은 일찍부터 자연계에 인간보다 위대한 어떤 힘이 있다고 믿었고, 자연계의 여러 요소들을 신적인 존재로 숭배하기 시작했다. 다신교가 생겨난 것이다.

많은 신들 사이에는 나름의 계층 질서가 있었고, 지위가 가장 높은 최고의 신이 존재했다. 수메르의 최고신은 하늘의 신 안(아누)이었다.(괄호 안은 바빌로니아 시대의 이름)그렇다고 그가 혼자서 세상을 다스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하늘을 관장하고, 이 땅의 세상은 그의 두 아들, 대기의 신 엔릴(엘릴)과 물의 신 엔키(에아)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함께 다스리게 했다.

▣ 바빌론, 마르둑을 최고의 신으로 만들다

그런데 서기전 1800년경 바빌로니아 시대에 들어서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큰 신들의 서열을 뒤집고 한 신이 전지전능한 최고신으로 올라서게 된다. 바로 바빌론의 수호신 마르둑이다.<자료2>

<자료2> 마르둑이 새겨진 경계석 (출처: 영국국립박물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각 도시마다 수호신을 두었는데, 각 도시국가의 신은 그 도시의 힘을 나타내는 상징이자, 명성, 부와 힘의 원천이었다. 바빌론이 가장 큰 세력을 떨치는 도시국가가 되었을 때에는 바빌론의 중심 신인 마르둑이 가장 강한 신이 되어야했다. 바빌론인들은 수메르의 전통적인 신의 위계를 적절히 변형시켜 마르둑을 최고의 신으로 만들었다. 여러 신을 인정하지만 한 신만을 주신(主神)으로 섬기는 단일신 사상이 출현한 것이다.

그 과정은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 ‘에누마 엘리쉬’에 기록되어 있다. 에누마 엘리쉬는 그들의 신 마르둑의 업적을 찬양하는 시다. 마르둑이 어떻게 바다 괴물 티야마트와 싸워 이기고 세상과 인간들을 창조했는가에 대한 내용으로, 메소포타미아의 모든 신들이 그의 활약을 칭송하며 그를 최고의 신으로 추대하고, 모든 권한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에누마 엘리쉬는 바빌로니아 제국의 신년 축제 넷째 날에 마르둑의 신전에서 대사제에 의해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수많은 도성 사람들은 사제가 낭독하는 약 1100줄이나 되는 이 서사시를 밤이 새도록 들었다.

그때 위에 하늘이라 이름하는 것이 아직 없었고,
밑에 땅이라 불리우는 것이 아직 없었을 때 (…)
신들 중에서도 가장 현명한, 가장 강한 신이 태어났다.
마르둑 신이 태어났다. (…)
바다 괴물 티야마트가 아들 킹구를 필두로
전쟁을 일으킨다. (…) 마르둑은 티야마트를 죽였다.
티야마트의 시체를 반으로 쪼개어 하늘과 땅을 만들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들었다. (…)
티야마트를 충동시켜 전쟁을 일으키게 한 킹구를 죽여
그 죄지은 신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 (…)
마르둑은 신들의 왕이 되었다.
– 에누마 엘리쉬 中 발췌 및 요약

에누마 엘리쉬를 들을 때면 사람들은 언제나 마르둑의 위대함에 감명받곤 했다. 날이 밝아오면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물을 끼얹으며 ‘에아(마르둑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한 해 동안 지은 죄를 속죄받는 의식을 치렀다. 이러한 축제를 함으로써 바빌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널리 퍼트렸던 것이다.

▣ 이스라엘, 마르둑을 뛰어넘을 유일신을 만들다

<자료3> 바빌론 유수를 묘사한 작품.『포로들의 대이동』제임스 티소作
바빌론 유수란 서기전 587년 ~ 538년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빌로니아의 포로가 되어 바빌론으로 유배된 사건을 말한다.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인들은 매해 신년 축제에서 사제가 낭독하는 바빌론의 창조 서사시를 들었고, 이때부터 본래 히브리 전승에는 없던 창조 서사시를 포함시켜 자신들의 경전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때문에 유대교의 기원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민족 종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보통 유대교라고 하면 바빌론 유수 이후 ‘모세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발달한 유대인의 종교를 말한다. (출처: 유대인 박물관)

서기전 1000년경 히브리 민족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사이에 위치한 가나안땅에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세웠다. 이스라엘은 서기전 587년 바빌론에 의해 멸망되었는데, 이때 왕족과 귀족, 제사장 등 유력한 자들이 바빌론에 유배되어 약 50년간 포로 생활을 했다. 이를 ‘바빌론 유수
(幽囚)’라 한다.<자료3> 이 시기, 포로로 끌려온 이스라엘인들은 마르둑을 기리는 바빌론의 신년 축제 모습을 매해 지켜보았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서사시를 들은 이스라엘인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을 구원해 준다고 믿었던 민족 신은 단지 압제자로부터 해방시켜 줄 구세주에 불과했을 뿐, 세상 만물을 만든 창조신은 아니었다. 이에 이스라엘인 중에는 개종하여 바빌론 신들을 믿는 이들도 생겨나고, 오히려 그 장점을 받아들여 본인들의 교리로 만들어 경전을 집필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들은 본인들의 신이 창조신임을 포함해 우주와 인간의 기원을 설명하며 경전을 써 내려갔다. 이때 집필되기 시작한 것이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 유대교의 율법인 토라였다. 이전까지 구전으로 자신들의 율법을 전하던 이스라엘인들이 경전을 만든 것이다. 때문에 바빌론 유수 시기를 유대교의 정립 시기로 본다.

이스라엘의 신이 마르둑과 다른 점이 있다면, 신들 중의 최고신을 넘어, 하나뿐인 유일신이라는 것이다. 바빌론의 창조 서사시가 에누마 엘리쉬였다면 이스라엘의 창조 서사시는 구약 창세기인데, 창세기의 저자는 자연물이 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의도적으로 피했다. 유일신화하기 위해서는 메소포타미아의 신들을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자연의 객체에 신이라는 칭호를 앞에 붙임으로써 자연을 신격화했다. 예를 들면 ‘신 태양’, ‘신 바다’라고 하는 것이다. 창세 개념은 메소포타미아의 것이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때 신이라는 칭호는 삭제하고 자연 상태의 객체로만 표현했다. 자연은 신이 아니라 유일신의 피조물일 뿐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큰 나라, 큰 신들의 권위를 추락시키는 방법이었다.

<자료4> 가나안의 최고신 바알
바알은 가나안 지역에서 숭배받던 최고신으로, 성경에서는 바빌론의 최고 신 마르둑이나 이민족의 최고신으로 묘사된다. 바알을 마르둑과 동일시하는 이유는 신으로서의 역할과, 배우자 여신, 관련 신화, 숭배 의식 등이 마르둑과 상당히 유사하며, 바알이라는 이름부터 마르둑의 다른 호칭인 벨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이다. 신의 이름 앞에 주(主)를 붙여 ‘주 야훼’라고 하거나 ‘주’라고만 하기도 하듯이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벨 마르둑’이라 불렀고, ‘벨’이라고만 해도 바빌론에서는 마르둑을 지칭했다. 이것이 가나안 지역에 전승된 것이 ‘바알’이다. (출처: 루브르 박물관)

바빌론이 에누마 엘리쉬를 통해 ‘최고의 신이 다스리는 바빌론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상을 효과적으로 퍼트렸듯이 이스라엘의 경전에서는 ‘유일신 야훼가 온 세상을 다스린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만드는데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마르둑의 존재였다. 마르둑의 존재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신앙에 깊게 뿌리박혀 있어 쉽게 지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에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최고의 신이라는 마르둑을 최고의 악신으로 전락시키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바빌론의 마르둑은 단 한 번 직접 언급(예레미야 50장 2절)되고 주로 이민족의 최고신인 ‘바알’로서 등장한다.<자료4>

<자료5> 콜랭 드 플랑시의 지옥 사전에 묘사된 베엘제붑 (출처: 위키피디아)

구약 성경에서 바알은 그들의 신과 대적하는 대표적인 거짓 신이자 악마들의 신으로 묘사된다. 성경에서는 바알 숭배가 엄격히 금지되었으며 그를 숭배하는 자에겐 격노하며 저주를 내려버린다. 신약에 가서는 심지어 당대 기독교 문화권에서 가장 더러운 동물로 여겨온 똥파리의 외모를 한 베엘제붑(바알세불)이란 악마로 더욱 격하시켜버린다.<자료5>

성경의 이러한 묘사들은 이스라엘의 신 이외의 신은 악신이자 추한 악마이며, 그들을 숭배하면 자신들의 신에게 벌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나(야훼) 이외에는 신이 없다’는 유일신 교리를 드라마틱하게 풀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력에도 바빌론 종교와 히브리 민족 신앙을 조합해 쓰인 최초의 히브리 경전은 매우 다신교적이고 현재 성경의 기준에선 이교도적이었다. 처음 쓰여진 구약은 전부 소실되어 존재하지 않지만, 수많은 성경의 작가들이 사본들을 편집하여 오늘날 성경을 만들었다. 다신교적이고 이교도적인 요소들은 오랜 편집 과정을 거쳐 제거되었다. 그럼에도 아직 바빌론의 종교와 유사한 구조 및 표현들, 또 다신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내용들이 다수 남아있다.

예를 들면 마르둑이 바다 괴물 티야마트<자료6>를 물리치고 세상을 창조하듯, 이스라엘의 유일신 야훼도 바다 괴물 레비아단<자료7>을 물리치고 세상을 창조했다는 것이나, 물 가운데를 갈라 위로 세워 하늘을 만들고 그곳에 해와 달과 별들을 세웠다던가, 다른 한 쪽으로 땅과 바다가 생기게 하고, 사람을 신의 형상으로 그의 모습을 닮게 만들었다는 내용 등이 유사하다.

<자료6> 티야마트를 물리치는 마르둑(위) 바빌론의 원통형 인장 (출처: 영국국립박물관)  <자료7> 그 날, 야훼께서는 날서고 모진 큰 칼을 빼어 들어 도망가는 레비아단, 꿈틀거리는 레비아단을 쫓아가 그 바다 괴물을 찔러 죽이시리라. – 이사야 27장 1절 – 레비아단을 물리치는 야훼.  1865년, 귀스타브 도레作 (출처: 위키피디아)

또 다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일신 체계를 표방하면서도 ‘다른 신들’, ‘모든 신들’, ‘개인 수호신’ 등 다신교적인 표현들을 자연스럽게 언급하며 다신교적인 종교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유일신 교리에 영향을 준 것은 마르둑 뿐만이 아니었다. 마르둑을 최고신으로 격상시키긴 했지만 바빌로니아의 종교는 기본적으로 이전 문명인 수메르의 종교를 계승한 종교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최고신은 하늘의 신 ‘안’이었다. 그를 기록한 시는 ‘하늘에 계신 신들의 아버지 안’으로 시작한다. 또 수메르인들은 주요 신들에 60진법의 숫자를 배정하기도 했는데, 안의 숫자는 가장 높은 ‘60’이었다. 60진법에서 ‘60’은 곧 ‘1’이기도 해서 처음이자 끝을 의미했다. 앗시리아에서는 안의 숫자 ‘1’이 ‘하나, 처음, 첫째’를 의미하는 것을 두고 세상의 최고신은 첫째이며, 홀로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러한 표현은 수메르의 잠언에도 이미 있었다.

우투(태양신)는 정말로 하나이며 그 혼자이다.

– 슈르파크의 가르침 75행<자료8>

자료8> 슈르파크의 가르침 점토판의 일부
(출처: 위키피디아)

현대 유일신교에서 자주 사용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와 같은 표현들이 수메르 시대부터 존재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 유일신교, 유일함을 독차지하기 위하여

바빌론 유수는 이스라엘의 치욕적인 역사이기도 하지만, 덕분에 유일신 사상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다신교가 우세했던 시대에서 유일함을 차지해야 하는 큰 과제가 남아있었다. 이를 위해 그들의 경전에서는 유일신임을 여러 번 강조하며,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여호와(야훼)이며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다.”라는 구절은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의 신을 믿지 않으면 저주하며 파괴시키라고 명하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상을 만들어 몰래 섬기는 자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다.
– 신명기 27장 15절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
– 신명기 11장 28절

너희가 요르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에서 주민을 모조리 쫓아내라.
돌로 새긴 우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깨뜨려버려라.
신전들도 모조리 허물어버려라.
너희는 그 땅을 차지하고 거기에서 살아라.
그 땅은 내가 너희에게 소유하라고 주는 것이다.
– 민수기 33장 51~53절

너희 하느님 야훼께 유산으로 받은 이 민족들의 성읍들에서
숨 쉬는 것을 하나도 살려두지 마라. 그러니
헷족, 아모리족, 가나안족, 브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명령하신 대로 전멸시켜야 한다.
– 신명기 20장 16절

자료9> 아브라함 종교 주요 분파 계통도
한 뿌리에서 파생된 종교들이지만 지금은 여러 종교와 종파로 분열돼 있다.

이러한 이스라엘 민족 종교의 가르침은 그 파생 종교<자료9>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들의 대표적 파생 종교인 이슬람교와 기독교에서는 야훼라 불리던 신의 명칭을 각각 알라와 하느님으로 바꾸어 ‘알라 이외에 신은 없다’, ‘하느님은 한분이시요 다른 이가 없다’ 등으로 가르친다. 그들은 경전의 가르침대로 신실히 믿음을 실천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 이외에 신은 없으며, 무함마드는 알라의 사도’라고 맹세해야만 입교할 수 있다. 이를 신앙고백이라 하는데, 신앙고백은 이슬람에서 천국에 가기 위해 행해야 할 5대 계율 중 가장 첫 번째 계율로 이슬람 사람들은 이를 삶의 근본이자 반드시 지켜야할 의무로 여긴다.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을 위해 실제로 다른 신을 믿는 종교를 세상에서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것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4세기 로마 시대부터이다. 313년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어 자유롭게 포교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392년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오직 기독교만을 로마 제국의 유일한 종교로 선언함과 동시에 다른 종교를 믿거나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였다. 이에 이교도 사원이 전면 폐쇄되거나 파괴되었고,<자료10>

<자료10>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건립 이래 천 년 가까이 아테나 여신의 신전으로 유지되었던 파르테논 신전은 435년, 모든 이교 신전을 폐쇄하라는 로마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칙령으로 폐쇄되었다. 6세기에는 성모 마리아에 봉헌된 기독교 교회로 쓰였다. 기독교식 제대와 성상이 배치되고, 벽에는 성상이 그려졌고, 기둥에는 기독교 비문이 새겨졌다. 1460년대 이슬람 국가 오스만 제국에 정복되었을 때는 모스크로 사용되었는데, 1687년 기독교군의 포격으로 신전과 조각물이 크게 훼손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 시기를 기점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전통 종교를 비롯해 미트라교, 키벨레 종교, 디오니소스 종교 등 여러 기존 종교들이 자취를 감추거나 신도 수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자료11> 아즈텍의 왕 목테수마 2세에게 가톨릭으로의 개종을 요구하는 장면 (출처: 멕시코 헤럴드)

15~16세기에는 원주민들의 제국에 찾아가 이교도를 몰아내고 자신들의 신을 믿게 했다. 일례로 남미의 아즈텍 제국에 가서는 “당신들 아즈텍인들이 믿었던 신들은 모두 사악한 악마고, 오직 가톨릭의 하느님만이 진정한 신이다. 그러니 아즈텍 신들을 버리고, 가톨릭을 믿으라!”며 개종을 요구했다.<자료11> 아즈텍의 신전은 교회로 개조되었고, 그들의 신상은 예수와 성모마리아 상으로 대체되었다. 아즈텍인들은 반발하였지만 이교 심문소를 설치하고 추종자들을 화형시키는 등의 강력한 제재 끝에 모두 개종하고 만다. 이러한 노력으로 아즈텍 문명이 있었던 현재 멕시코는 인구의 94%가 그들의 신을 믿는 나라가 되었다.

각자의 유일신 사상을 확립한 후에, 이제는 서로 유일성을 주장했다. 서로 자신들의 신의 이름을 걸고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중세 말기부터 근대에 걸쳐 일어났던 전쟁은 대부분 종교와 연관된 전쟁이었다. 십자군 전쟁을 비롯해 레판토 해전, 80년 전쟁(네덜란드 독립 전쟁, 칼레 해전, 30년 전쟁), 미국 독립 전쟁 등이 대표적이다.<자료12> 처음에는 이교(異敎)간 싸움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같은 신 아래 구교와 신교의 싸움으로 번진 양상을 볼 수 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은 같은 신을 믿더라도 교리 해석, 종교 의식의 차이에 따라 교파가 갈라지게 되었고 ‘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교파’인 이단(異端)이라는 개념까지 탄생시킨다. 예를 들면 이슬람 수니파는 시아파를 이단이라 하며, 기독교는 예수를 믿지 않거나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경우 이단이라고 하는 식이다.

<자료12> 30년 전쟁을 묘사한 삽화, 1632년 자크 칼로作
30년 전쟁은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이다.
유럽 뿐만 아니라 인류의 전쟁사에서 가장 잔혹하고 사망자가 많은 전쟁 중 하나였으며, 사망자수는 800만 명이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이단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서 시대나 상황에 따라 기준이 변했다. 초대교회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을 이단이라 했지만, 후에는 유대인들이 이단으로 불리며 복음의 원수(로마서 11장 28절)가 되었다. 예수 역시 성령모독죄를 범했다는 이단이었으나 정작 예수를 이단으로 정죄(定罪)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가 오히려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11세기 십자군 전쟁 당시, 서방 기독교인 로마 가톨릭 교회가 동방 기독교 지역을 약탈하고 교인들을 학살한 이후 동서(東西) 교회가 분열되어, 서로 이단으로 규정하고 상호파문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20세기에 들어서 다시 철회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21세기에도 계속된다.

지난해 3월 5일~8일, 로마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이라크를 방문했다. 프란치스코는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통 조상인 아브라함의 고향, 이라크 우르의 고대 유적지에서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폭력은 가장 큰 신성모독’임을 강조하며, ‘한 뿌리에서 나온 아브라함의 종교끼리 서로 싸우지 말고 공존과 화합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자료13> 연설을 마친 후엔 이슬람의 경전 <코란> 낭송을 듣기도 했다.

<자료13> 이라크의 종교 지도자들과 나란히 서 있는 로마 종교 지도자 프란치스코
가운데 흰 옷을 입고 십자가 목걸이를 멘 자가 프란치스코이다. 이러한 행보에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다.”, “이단과 한 발 차이다.”라는 비판을 들은 프란치스코는 자신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2,800명의 사제가 정한 교리대로 한 것이라 해명했다. (출처: CNN

가톨릭 수장의 이러한 행보는 유일신을 만들어 왔던 그들의 역사나 교리와 차이가 있었다. 이를 의식한 프란치스코는 이라크 방문 일정의 마지막 날, “교황은 용감한게 아니라 무모하다.”,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짓을 하고 있다.”, “이단과 한 발 차이다.”라고 비판하는 자들이 있다며, 이는 자신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제시한 교리와 일치한다고 기자들에게 해명했다.

그가 말한 교리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정한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으로 이슬람과 유대교를 비롯한 비그리스도교를 포용하겠다고 하는 내용이었다. 1962년~65년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사제 대표 2,800명이 참가한 역대 최대 규모의 회의였다. 많은 사제들이 동의한 교리라고 하니, 그동안 유일신 교리를 공들여 편집해온 성경의 저자들에게는 겸연쩍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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