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아 돈이 없어도 걱정이 없어

이득선 권사(1) / 기장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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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30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난 저는 해방되던 해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건너왔습니다. 일본에서 마련한 집과 재산은 전쟁 중에 불타 버리고 거의 빈손으로 돌아왔지만 저희 가족은 부산에서 기반을 잡으려 열심히 일했습니다.

저는 열여덟 살에 결혼한 후 부산 남부민동에서 살게 되었는데, 저희 집에서는 새벽마다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새벽부터 예배를 드리며 정성을 기울이는구나. 저렇게 하면 정말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기회가 되면 교회에 한번 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1956년경 어느 날 대신동전도관에 다니던 이웃집 탁 집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 이야기가, 대신동전도관에 다니는 교인의 어린 아들이 숨을 거두었는데, 은혜를 받아 너무나 곱고 예쁜 모습으로 유리관에 안치해 두었다며 전도관에 가면 그 아기를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전도관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기에 저는 선뜻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그 전부터 교회에 다니고 싶었던 데다가 아기의 모습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서 전도관에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대신동전도관에 처음 간 날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화장품 냄새라고 해야 할까 아주 좋은 냄새가 코로 싹 들어왔다가 사라지고 또 어느 순간 맡아지면서 향긋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유리관 안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때도 그 좋은 향기는 계속해서 맡아졌고, 아기는 뽀얗고 고운 얼굴이 어찌나 예쁜지 화장을 해도 그만큼 예쁘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후로 대신동전도관에 계속 다니게 된 저는, 제가 맡았던 향기가 바로 향취 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새벽예배는 남부민동 천마산제단에서 드리고 일요일예배는 대신동전도관으로 다녔습니다. 어느 날인가 새벽예배를 드리려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머리카락 타는 냄새인지 솜을 태울 때 나는 냄새같이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교인에게 물어보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저의 죄를 태워 주실 때 나는 냄새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또 언젠가는 집 앞에 있는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는데 향긋한 냄새가 진하게 맡아졌습니다. 우물물에서 그런 향기가 날 리 없는데 마치 향기가 담긴 물을 한가득 퍼 올린 것 같았습니다. 부엌에서 밥을 할 때도 바람처럼 그 향기가 불어와 맡아졌고 길거리를 갈 때도 향취 은혜가 저를 따라오는 것처럼 계속 진동했습니다. 향긋한 은혜 속에 생활하면서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 모르고 돈이 있으나 없으나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항상 기쁘고 즐거운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입관예배에 참석했을 때 일입니다. 대신동제단에 열심히 다니는 권사님의 손자가 세상을 떠나 우리 교인들이 그 집에 모여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아이를 보았더니 대여섯 살이던 아이의 얼굴이 뽀얗게 피어나고 온몸이 노긋노긋하여 쌔근쌔근 잠을 자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제단에 다니지 않던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팔을 가만히 잡았다 놓았는데, 손을 떼고 보니 시커먼 손자국이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윳빛이던 아이의 팔에 까만 손자국이 선명하게 생긴 것을 보고 모두들 깜짝 놀랐습니다. 교인들이 다시 마음을 모아 찬송가를 한참 동안 불렀더니 까만 손자국이 싹 사라지고 그 전처럼 예쁜 모습으로 입관할 수 있었습니다.

대신동제단에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면서 1957년 영주동 산꼭대기에 웅장한 제단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는 한편으로 주일학교 반사와 성가대로 활동하였고 신앙촌에서 생산되는 물건을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주일학생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쉽게 풀어 설명해 주고, 성가대에서 찬송을 부르고, 신앙촌 카스텔라와 캐러멜을 판매하는 등 짧은 시간을 쪼개어 가며 바쁘게 생활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재미있고 즐거운 시절이었습니다.

그즈음 친정아버지가 노환으로 유명을 달리하시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착하고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하셨던 분으로, 전도관에 다니지는 않으셨지만 제가 제단에 다니며 기쁘게 사는 것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돌아가시기 3일 전부터 저는 아버지 곁에서 계속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렸습니다.

영주동제단의 관장님과 교인들이 오셔서 정성껏 예배를 드리고 생명물로 시신을 깨끗하게 씻겨 주었습니다. 시신은 금방 목욕하고 나온 사람처럼 뽀얀 얼굴에 발그스름한 핏기가 감돌며 너무나 곱게 피어났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땅에 묻기가 아깝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얼마 후 저는 아버지의 장례예배를 드리는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장례예배를 드린 날처럼 꿈에서도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고 아버지는 뽀얗게 피어났는데, 예배를 드리는 내내 하나님께서 아버지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죽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너무나 편안해 보였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 하나님께서 아버지를 지켜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며 마음속으로 감사드렸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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