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지도국의 필요

박상섭 /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정치학 박사
발행일 발행호수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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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박상섭(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 정치학 박사)

부시의 재선과 그 정책의 향방에 대해서는, 우방국과 적대국에 관계없이 세계의 모든 국가가 주목하였다. 그 까닭은 간단하다. 미국이 명실상부한 세계지도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치는 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한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막강한 군사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경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소련이 붕괴된 이후 미국이 혼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일극(一極)체제가 확립되었다. 그런데 앞서 말한 군사력과 경제력은 세계지도력의 필요조건이기는 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않는다. 그러한 지도력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다른 나라들의 승인이 있어야만 한다.

현재 세계정치체제의 최고의 규범은 개별국가의 주권의 최고성과 평등성이다. 그럼에도 안정된 질서는 필요한데 그렇다고 국가 상위의 기관을 (현실적으로나 규범적으로나) 만들 수 없다. 따라서 특정 국가들에게 그러한 역할을 위탁하게 된다. 이러한 역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도덕적 승인을 얻기 위해서 지도적 국가는 어느 정도의 이기적 욕구를 억제해야 하지만 그러한 성공적 수행의 물질적 조건을 위해서는 보다 큰 이기적 욕구의 충족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개별국가는 국가성원을 상대로 세금을 거두지만 국제정치에서 그러한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리더십 국가는 항상 군사적 정복자, 제국주의적 침략국의 측면을 보이게 되는 것도 현실이다.

일극체제의 유포리아를 즐기던 미국의 입장에서 9.11 테러사건은 일극체제가 결코 미국에게 손쉬운 체제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만들었다. 이 사건 이후로 미국의 외교는 단순히 정부 대 정부의 관계만이 아니라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의 대내체제까지 다루어야 한다는 사실이 절감되고 있다. “미국의 자유체제 생존이 외국의 자유체제에 달려있다”는 말로 집약되는 부시 취임연설은 바로 이러한 사실에 대한 고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부시 선언은 미국이 세계지도국으로서의 책임을 계속 지고 나가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으로 많은 나라들이 환영하지만 그 환영이 반드시 일색만은 아닌 듯싶다. 왜냐하면 그러한 결의가 국내정치 불간섭이라는 국제정치의 또 다른 규범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에서 야기되는 국제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설득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미국의 리더십은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이러한 설득이 국가지도자급을 상대로 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전체 국민을 상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업은 말로만 되는 것은 아니고 그러한 말에 상응하는 자기희생의 모습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이 미국에 우호적인 나라들에 있어 더욱 절실히 기대되고 있다는 점을 미국이 절실히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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