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재정절벽(fiscal cliff)

정진영 / 경희대 국제대학 학장
발행일 발행호수 2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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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정진영 / 경희대 국제대학 학장

민주주의가 재정적자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기는 어렵지만 정부의 재정지출을 늘리기는 쉽다. 국민들은 증세는 싫어하지만 복지증대 등 재정지출 증대는 좋아한다. 정당과 정치인은 국민들의 이러한 정서에 편승해 선거 때 표를 구걸한다. 그 결과는 당연히 재정적자다. 유럽의 여러 선진 민주국가들과 일본, 미국 등 많은 민주국가들이 재정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세계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든 유럽 위기의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회원국들의 재정위기였다.

미국에서는 요즘 재정절벽이라는 용어가 최대의 정치쟁점이 돼 있다. 부시 행정부 시절에 도입한 감세조치의 10년 시한이 올해 말에 만료됨에 따라 이것을 연장하는 법률적 조치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미국인들은 내년부터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한다. 그리고 지난해 국가부채 상한선 협상 때 도입한 재정지출의 자동적 감축도 새로운 감축안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정부의 재정지출이 자동적으로 감소하게 돼 있다. 그 결과 세금증대와 재정지출 축소가 동시에 실행될 수 있는 상황이다.

16조 달러가 넘는 미국의 엄청난 국가부채를 생각할 때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하고 반문할 수 있다. 세금증대와 재정지출 축소는 분명히 미국의 국가부채를 크게 감축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이것이 문제란 말인가. 그 이유는 바로 미국의 경제현황에서 발견된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재정지출이 줄어들고 세금마저 증대하면 미국경제의 회복세가 꺾이고 또 다시 위기에 빠질 우려가 있다. 재정절벽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군다나 조세감면이 종료되고 국민들의 세금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다. 미국경제가 되살아나지 않으면 세계경제의 회복도 어렵다. 이러한 사태가 도래하는 것을 막으려면 민주-공화 양당이 조세감면 종료와 재정지출 감축에 대한 대안을 합의해야 한다.

그러나 양당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안을 고집하며 타협하려 들지 않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상원의 다수당인 민주당은 부자증세를 통해 재정수입 증대를 주장하고 있다. 조세감면 조치를 연장하되 상위 2% 정도의 부자들에 대한 조세감면조치는 중단하자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하원의 다수당인 공화당은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지출을 감소시켜 재정적자를 축소하자고 주장한다. 재정절벽이 가져올 부정적인 영향을 생각하면 양당이 쉽게 타협을 할만도 한데 서로 버티며 벼랑 끝 협상을 하고 있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볼모로 상대방이 더 많은 양보를 하라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재정절벽 이야기는 유럽의 재정위기와 더불어 민주국가가 부채의 덫에 걸려들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타산지석의 교훈으로 삼아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마저 국가부채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 않다.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진행 중인데 후보들과 정당들은 앞 다투어 돈 쓸 공약들만 내세우고 있다. 국민들도 더 많이 주겠다고 약속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사태가 계속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우리 모두 투표하기 전에 심각히 생각해 봐야 한다. 나이 든 유권자들은 어떤 나라를 자식들에게 물려줄지 심사숙고해야 하고, 젊은 유권자들은 국가부채의 부담을 결국 누가 짊어지게 될 지를 고민해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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