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밭’ 건사하기

이정우 /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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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정우 / 연세대학교 정보대학원 교수

삼국유사에 신라 제46대 경문왕에 관한 설화가 있다.경문왕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컸는데 왕의 두건을 만드는 두건장이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늙어 죽게 된 두건장이는 너무도 답답하여 그 비밀을 대나무 숲에 가서 속시원히 털어 놓고 죽었다. 그때부터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하는 소리가 들려 왔고 따라서 온 세상이 다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대나무 숲은 언로가 통제된 왕권시대에 의사를 소통할 수 있는 수단을 상징하고 있다.

최근에 인터넷이 대의제 정치의 약점을 보완하는 쌍방향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보이는 매체라고 평가를 하는 시각이 있다. 이러한 시각은 대나무 숲으로써의 인터넷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대나무 숲이 상징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익명’하에 공표할 수 있는 의사 표현의 통로였다. 지금의 인터넷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확장된’ 대나무 숲이라는 것이다. 자생적으로 자라기 시작한 대나무 숲은 서로간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네트워크로 성장하였고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한 가지 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소리들이 그 안에서 생성되고 자라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중의 하나로 실시했던 도편추방 혹은 패각투표란 제도가 있었다. 독재 가능성이 있는 정치가를 해외로 10년간 추방하기 위해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 제도 중의 하나로 고안하여 실행하였으나 이에 내재된 정치적인 부작용으로 인하여 오래 존속하지 못한 제도이다.

패각투표와 대나무 숲 설화는 일맥상통하기는 하지만 그 교훈의 측면에서 보면 서로 상반되는 딜레마를 제시하고 있다. 잘못된 소문이나 이의 확산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의사표현의 자유와는 다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인터넷에서의 시위가 전통적인 시위와 다른 점은 익명성이다. 대나무 숲을 통한 의견의 개진은 두건장이가 하지 못할 말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또한 허위사실 유포나 마녀사냥에 활용되는 패각투표의 역할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떤 시대이건 기술은 중립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나타나는 가치는 이를 개발하고 쓰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반영되어 발달한다. 인터넷이 스스로의 통제가 가능한 긍정적인 수단으로 발전을 하게 될 것인지 아니면 무분별한 의견의 개진과 이를 통한 잠정적 혼란의 수단으로 변화하여 갈 것인지 세심하게 지켜보아야 한다. 필요하다면 실명공간과 익명공간을 명확히 구분을 하여 주어야 할 것이고 찬성과 반대가 균형잡혀 나타나도록 조정을 해주어 표현의 자유가 관련된 책임과 같이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나무를 심어 밭을 일구는 것만이 주인으로서의 책무라는 자세는 이 대나무 밭에서 수익을 얻고 있는 주인으로서 무관심을 가장한 무책임이 아닌가 싶다. 표현의 자유에는 “마음대로 떠들어도 좋다”와 “그에 따른 책임”도 같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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