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은 독재자의 말로에서 교훈을

이지수 /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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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이지수 / 명지대 북한학과 교수

북아프리가에서 시작된 국민들의 저항이 결국 리비아 카다피의 비극적인 종말까지 불러일으키는가하면, 미국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뉴욕 맨해튼에서는 난데없는 1% 부자를 향한 점거 농성이 한창이다.

물론 예를 든 두 사건의 경우, 배경과 성격, 그리고 전망 모두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단 하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즉, 불만에 가득 찬 사람들의 저항이란 점이다. 문제는 이러한 불만표시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미국이란 나라는 이미 내부 문제를 나름 스스로 치유, 보정하는 메카니즘을 시스템 자체에 가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간단히 말해서 여론정치를 통해 문제점을 보정할 기능이 우수하며, 또 최악의 경우에는 정권이 교체됨으로써 국민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

그러나 내부 불만을 자체적으로 소화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지 못한 곳에서는 시스템 자체가 붕괴되게 마련이다. 튀니지아가 그랬고, 이집트가 그랬고, 리비아가 그렇다. 이제 그들은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들어야 한다. 제일 먼저는 아마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가능한 제도의 도입이 될 것이다. 대체로 일 국가에 경제 혹은 정치에 전반적인 위기가 오면, 이러한 위기는 국민 성원들 대부분의 불만을 야기 시키며, 불만은 선거를 통한 정권 교체로 해소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민주주의 정치의 여러 모습 가운데 한 단면이다. 이런 민주주의 제도를 갖지 못한 곳에서는 불만의 해소는 곧 권력자의 교체가 아니라 권력자의 종말을 의미한다.

현재의 경제적 위기는 어느 한 국가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이다. 북아프리카의 사태도 따지고 보면 경제위기로부터 시작되었다. 경제위기에 따른 불만은 당연히 정권의 교체를 통해 해소되지만, 정권교체의 메카니즘이 없는, 즉 독재국가에서는 독재자 본인에게 화살이 돌아가게 마련이다. 결국 본인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버린다. 기존의 권력자가 권력을 물려주면 어쩌면 쉽사리 끝나는 것을 독재국가에서는 반드시 권력자가 끝까지 저항하다가 비극적 최후를 맞는 장면을 수없이 역사는 보여주었다.

북한국민들 역시 불만에 가득 차 있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다만 불만을 드러낼 자유가 없다 뿐이다. 여기서 김정일 정권의 고민이 있다. 불만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불만은 점점 쌓여갈 것이고, 불만을 해소할 경제문제 해결의 뾰족한 해답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국민을 겹겹이 억누른 채 경제가 회복되길 기대할 수 는 없다. 평양의 대학들에 휴교령을 내렸을 정도로 인민 통제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작 인민불만의 원인인 경제난 해결은 점점 요원해 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제를 일으킨다고 인민들을 옥죄던 것을 푼다고 하자. 아마도 쌓였던 불만들이 마구 터져 나올 것이다. 그때에는 북아프리카와 같은 사태가 안 생긴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러니 정작 답답한 것은 누구보다 김정일 자신 일 것이다. 더 이상 억누르는 것으로 불만을 잠재운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파괴력은 폭발적으로 점점 더 커질 것이며 그에 따른 비극적 종말도 더 앞당겨질 것이다.

김정일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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