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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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뉴욕타임스는 “지구촌 전쟁은 유일신 종교들이 문제”라는 칼럼을 게재했다. “자신이 믿는 신을 내세워 전쟁에 나선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뿐이며, 자신의 경전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기 위해 어떤 위협도 서슴지 않는 전쟁”이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는 전 세계를 이슬람화 하겠다는 욕망을 뿜어내고 있고 중세 유럽은 이슬람교도를 기독교로 개종시키려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킨 바 있다.

십자군 전쟁 중 시리아의 소도시 마라에서의 학살은 잔혹함으로 악명 높다. 마라를 함락시킨 십자군은 기대했던 식량을 얻지 못하자 광범위한 식인 행위를 벌였다. 시리아인 중에 어른들은 솥에 넣어 삶고 아이들은 꼬챙이에 꿰어 불에 구워 먹었다. 굶주린 십자군은 시체의 엉덩이살을 잘라 조리하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덜 익은 고기를 먹어 치우기까지 했다. 이 사건은 연대기의 기록으로 남았고 이후 시리아인들은 십자군을 식인종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유럽 입장에서 십자군은 어디까지나 거룩한 신의 뜻에 따르는 전사였다.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가 신의 뜻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바티칸에 시리아 난민 가족을 받아들였는데, 난민들이 “주님이 원하는 만큼” 머물러도 된다며 신의 뜻을 내세웠다. 또 전 세계가 이슬람 난민을 받아들일 것을 주장하며 “낯선 자를 환영하라”는 성경 구절을 근거로 들었지만 기독교 국가들의 반대로 궁색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헝가리는 이슬람 난민이 기독교적 정체성에 위협이 된다며 전면 차단에 나섰고, 국민의 95%가 가톨릭 신자인 폴란드에서도 “폴란드의 이슬람화를 반대한다.”며 난민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프란치스코가 갑자기 난민 포용에 나선 시점은 냉동 트럭에서 발견된 시리아 난민들의 시체와 세 살 배기 난민 아기의 죽음이 세계 언론을 뒤흔든 때였다. 불과 한 달 전 바티칸에서 열린 회의에서 뉴욕 시장이 난민 문제 해결을 촉구할 때도 교황청은 별다른 논평을 내지 않았다. 올해만 35만 명의 난민이 유럽에 들어와 심각한 문제가 되었지만 난민 문제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전까지 바티칸의 관심 밖에 있었다.

신의 이름으로 정복 전쟁을 벌이며 역사를 피로 물들였던 종교가 이제는 포용과 인도주의라는 외피로 시류에 발 빠르게 맞춰 가고 있다. 종교가 성전(聖戰)이라는 미명 아래 학살을 벌이는 것은 끔찍한 일이고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둘 다 그들이 믿는 신의 뜻이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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