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시스트

발행일 발행호수 2568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최근 교황 프란치스코가 “악마는 존재한다”는 책을 펴냈다. 프란치스코만큼 악마를 자주 언급하는 교황도 드물 것이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머리에 뿔을 그려 악마로 만든 사진이 인터넷에 유행했는데, 그런 기대에 부응하려는 듯 그는 1년간 수백 번이나 악마를 언급했다.

이번에 내놓은 책은 그동안 했던 악마 이야기의 총정리인데, 핵심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예수 편에 서지 않는 자는 전부 악마이며 예수의 힘으로 악마를 이긴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 악마는 타락한 천사를 말한다. 태초에 하느님이 창조한 천사가 타락해서 악마가 됐다는 것이다. 주목할 점은 타락한 이유인데, 천사는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고 예수에 대적했기 때문에 악마가 되었다. 예수도 악마를 퇴치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하니 둘은 시작부터 끝까지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예수는 사람에게서 악령을 내쫓는 엑소시스트(퇴마사)를 자처했는데, 당시는 모든 질병이 악마의 소행이며 정신병도 귀신 들린 것이라고 믿던 때였다. 지금 의학으로 보면 예수는 간질병과 정신병 환자에게 악령을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했던 것이다. 예수가 살던 1세기 예루살렘에는 식물로 만든 고약을 코에 올려주면서 마귀를 쫓는다는 퇴마사들이 많았다.

예수 시대에는 질병이 악마였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악마의 기준은 계속 변해 왔다. 12세기에 접어들면서 가톨릭 내부에서는 교리의 모순을 지적하거나 교황의 권위에 도전하는 조직들이 나타났는데, 가톨릭은 그들이 악마라며 퇴치에 나섰다.

프랑스 남부에서 활동하던 발도파라는 단체는 가톨릭교회가 신도들을 착취해서 재산을 쌓았다며 정면으로 비난했고 이로써 교황의 눈엣가시가 되었다. 1215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발도파를 악으로 규정한 이래 수차례에 걸쳐 잔인한 학살이 자행됐다. 발도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학살당했고 그 수는 최소 7,000명을 헤아렸다.

이와 반대로 템플 기사단은 가톨릭의 공인을 받고 교황에게 충성하는 조직이었으나 그들이 가진 부와 무력 때문에 프랑스왕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됐다. 프랑스왕은 교황 클레멘스 5세에게 기사단 해체를 요구하면서 만약 따르지 않으면 교황의 범죄를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 프랑스왕과 교황이 공모해 1304년 전임 교황 베네딕토 11세를 암살한 사실이 있었던 것이다. 결국 1314년 기사단은 해체되고 단장은 악마를 숭배했다는 죄목으로 화형당했다.

그 후 15세기에 이르러 가톨릭은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흉년과 전염병, 기근과 전쟁이 모두 악마의 작용이라고 했다. 그리고 악마의 하수인을 태워 죽이면 불길이 그들의 영혼을 정화하고 악마를 쫓아낸다고 했는데 바로 악명 높은 마녀사냥이었다. 수많은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산 사람을 화형시킨 마녀사냥은 가장 대중적인 정화 의식이자 퇴마 의식이었다. 그러나 17세기를 지나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면서 퇴마 의식은 대중성을 잃게 되었다. 특히 1970년대 퇴마 의식에 일대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있었다.

1976년 독일의 아넬리즈 미셸이라는 여대생이 정신질환을 앓게 되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는 교회에서 추천하는 대로 퇴마 의식을 받게 했다. 1년여의 퇴마식 끝에 아넬리즈는 영양실조와 탈수 상태에 빠졌고 사망 직전 체중이 31kg밖에 되지 않았다. 퇴마사들은 아넬리즈가 악마에게서 해방됐다고 주장했으나 당사자는 이미 죽은 뒤였다. 재판에서 아넬리즈의 부모와 퇴마 신부 2명은 과실치사죄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1999년부터 퇴마사들은 정신질환자에게 퇴마 의식을 해 주지 않고 있다. 교황청이 발표한 의식서에 따르면, 먼저 병원에 가서 정신 감정을 받고 의학과 정신병리학 전문가와 상의를 거쳐야 하며 당사자 동의가 있을 때만 퇴마식을 하도록 규정했다. 예수는 그의 제자인 가톨릭 사제에게 퇴마 능력을 주었다고 했으나 이제는 사제보다 의사들이 악마를 퇴치해 주는 시대가 되었다.

최근 체사레 트루퀴라는 유명한 퇴마 사제가 자신의 책에서 퇴마의 실체를 털어놓았다. 퇴마식에서 악마야 물러가라고 소리쳐도 아무런 효과가 없자 그는 울부짖으며 “예수님! 왜 이 사람들을 고통받게 내버려 두십니까? 왜 해방시켜 주시지 않습니까? 이제 기적을 행하실 수 없습니까?” 하고 절규했다.

그러나 사제가 절망할 일은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른다. 자신이 믿는 신이 계속해서 응답도 없이 고통만을 준다면 그는 버틸 수 있을까. 2,000년 동안 계속되는 퇴마 의식이 결국은 실체가 텅 비어 있는 허장성세(虛張聲勢)라면 그는 견딜 수 있을까. 악의 구렁텅이에서 진정으로 구원이 필요한 사람은 바로 그 사제일지도 모른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이전 기사

종교의 진화(進化)

리스트로 돌아가기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