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와 미투

발행일 발행호수 2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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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당신의 죄를 사합니다.”

고해성사에서 사제가 외우는 ‘사죄경’이다. 가톨릭에서는 자신이 지은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면 죄를 사함받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사제가 신을 대리해 죄를 사해 준다는 것이다.

고해성사는 비밀 유지가 핵심이다. 성당에 마련된 고해소에는 고해신부와 신자 단둘이 들어가게 된다. 이런 특성 때문인지 고해성사에서 일어나는 색다른 사건이 미투 운동과 더불어 주목받고 있다.

독일의 도리스 바그너는 고해신부에게 당한 성추행을 폭로하며 미투 운동에 나섰다. 2009년 수녀였던 도리스는 고해성사 도중 헤르만 가이슬러 신부가 껴안고 키스하자 고해소에서 도망쳤고 수녀직을 그만뒀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매캐릭 전 추기경이 고해성사 도중 소년과 신학생에게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매캐릭의 문란한 성생활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의 자금책이자 최고위직인 그의 범죄를 오랫동안 모른 척했다는 지적도 다시 제기됐다. 교황청이 지난 16일 매캐릭의 사제직을 박탈한 것은 최근 미투 운동으로 촉발된 가톨릭에 대한 비난을 잠재우려는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고해성사는 가톨릭 신자라면 남녀노소 모두의 의무이기 때문에 누구나 성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었다. 특히 수녀원은 고해신부가 상주하는 전통으로 성범죄 또한 수백 년간 은밀히 이어졌다.

1550년대 베네치아 수녀원의 고해신부였던 지오반니는 고해성사를 하는 동안 수녀들을 유혹했다. 끝내 거부하는 수녀에게는 감금과 폭행 등의 고문도 서슴지 않았고, 그리 예쁘지 않은 수녀가 유혹에 넘어오면 그냥 나체로 서 있게 했다고 한다.

1620년대 피카르 신부는 엘리자베스 수녀원에서 고해성사를 맡고 있었다. 그는 고해성사를 하는 동안 수녀들의 손을 자신의 성기에 가져다 놓았고 거부하면 완력으로 피할 수 없게 했다. 또 20대였던 마들렌 수녀를 교회의 제대(祭臺 : 미사를 드리는 단) 앞으로 불러내 그곳에서 강간했다. 그 충격으로 마들렌 수녀는 정신착란에 시달리게 되었다.

수녀에 대한 성학대는 수백 년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지만 최근 미투 운동으로 수녀들까지 고발에 나서고 있다. 인도에서는 한 수녀의 미투로 프랑크 물라칼 주교가 2년에 걸쳐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물라칼 주교에게 성폭행을 당해 교회를 떠난 수녀만 20명이라고 한다. 한 조사에 의하면 1990년대 이미 5개 대륙 23개국에서 수녀들에 대한 성학대가 있었다고 하니 빙산의 일각이 드러나는 형국이다.

그 때문인가. 최근 교황이 색다른 행보를 보였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수녀들이 성노예 수준으로 학대당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성범죄를 교황이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범죄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자백이라 한다. 그러나 더 이상 은폐할 수 없는 궁지에 몰린 후에야 죄를 인정하는 것을 자백이라 할 수 있을까. 혹시 세상이 속아 주기를 기다린 것은 아닐까. 범죄 사실을 알고도 끊임없이 세상을 기만하며 범죄를 방조하고 감춰 준 것은 방조죄이자 범인 은닉죄에 해당할 뿐이다. 사제 개인의 성범죄도 끔찍하지만 전 세계 성범죄를 방조하고 은닉한 죄는 더욱 흉악하다.

교황으로서는 더 이상 속이지 못했으니 참담할 것이다. 하지만 염려할 필요는 없다. 고해성사를 하면 신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교황이 고해성사로 신과 관계를 회복하면 더욱 업그레이드된 기술을 하사받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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