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종교 탐구 <37> 음란에 관한 종교의 가르침에 대하여-②

발행일 발행호수 2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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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8> 美 유타주 초·중교 서가에서 성경을 퇴출시킨 사건에 대한 뉴스 보도
미국 유타주의 한 교육구에서는 성경이 음란하고 폭력적이라는 이유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서가에서 성경을 퇴출시켰다. 성경을 퇴출시켜 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던 학부모는 “성경에는 근친상간, 자위, 수간, 매춘, 강간 등이 기록되어 있다”며, 이는 “학교 도서관과 교실에서 음란물 콘텐츠가 포함된 모든 책을 금지한다”는 유타주의 법안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출처: MSNBC 유튜브 캡처)

◆음란에 대해 종교가 가르친 것

지난 6월, 미국 유타주의 한 교육구에서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서가에서 성경을 퇴출시켰다.<자료8> 음란하고 폭력적인 내용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는 “성경에는 근친상간, 자위, 수간, 매춘, 강간 등이 기록되어 있다”며, 이는 “학교 도서관과 교실에서 음란물 콘텐츠가 포함된 모든 책을 금지한다”는 유타주의 법안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구약 성경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의 공통 경전이다. 어떤 내용이 문제가 되었는지 학부모가 청원서에 첨부한 포르노적인 성경 구절 목록의 내용을 토대로 일부 발췌하여 살펴본다.

먼저 근친상간에 대한 내용이다. 창세기 19장에는 두 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먹인 뒤 성교를 해 자손을 본 내용이 있다. 성경에는 근친상간을 금하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대를 이을 자손이 없을 때 근친상간이 의무가 되는 구절도 있다. 다음은 신명기 25장 5~6절이다.

“만일 형제들이 함께 살다가 그중 하나가 아들 없이 죽으면 그 미망인은 집을 나가 다른 사람과 재혼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그 남편의 형제가 그 여자와 결혼하여 형제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그 여자가 낳은 첫아들이 죽은 형제의 대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십시오.”

이를 실천하는 내용이 창세기 38장에 있다. 창세기 38장에는 ‘유대인’이란 말의 기원이 되었던 유다(야곱의 아들)와 그의 아들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큰아들이 장가를 가서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자,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에게 형수와 결혼하여 큰아들의 씨를 남기라고 얘기한다. 그러나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그가 자기 아들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형수와 동침할 때마다, 형의 이름을 이을 아들을 낳지 않으려고, 정액을 땅바닥에 쏟아 버렸다고 한다.

<자료9> Pieter Lastman,『유다와 다말(Judah and
Tamar)』, 1620년경 이스라엘 유다 지파의 설립자이자 예수의 조상 유다는 며느리 다말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는다. (출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런데 창세기 38장에서 신명기 25장 5~6절이 허용한 근친상간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유다는 창부로 변장한 첫째 아들의 며느리와 성관계를 하여 아이를 낳는다.<자료9> 시아버지 유다와 그의 며느리 다말이 통정해서 낳은 아이가 다윗의 조상이자, 예수의 조상 중 한 사람인 ‘베레스’이다.

성경 창세기에는 인물들의 관계에 대한 서술이 많다. 창세기에 따르면 믿음의 조상으로 알려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원래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다. 아브라함의 형제 나홀은 조카와 결혼했고, 히브리인의 조상으로 알려진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사촌지간이였다. 이들은 모두 근친상간 관계에 해당하며, 예수의 조상이다.

성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일부다처제가 등장하며 이를 비판하는 내용은 없어 일부다처제를 용인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한편, 이슬람의 경전 꾸란 4장 3절에서는 “너희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둘, 셋, 또는 넷을 취할 것”이라며 공식적으로 4명의 아내를 허용하고 있다.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는 아내의 수에 제한이 없었다. 이슬람교의 전승을 종합하면 무함마드의 아내는 13명 또는 21명으로 추정된다. 무함마드가 25세 때 결혼한 첫 아내는 40세 과부 사업가였는데, 꾸란 93장 8절에서 그녀가 무함마드에게 “곤궁한 너를 보고 부유하게 해 주지 않았는가?”라고 한 것을 보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무함마드를 도와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는 53세 때 9살의 아내와 결혼하였는데, 약혼은 그녀가 6살일 때 했다고 한다. 또 외사촌이자 며느리와도 결혼했는데,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그녀를 보고 마음을 뺏겼다고 한다. 그 밖에 여러 여종들과 과부, 이혼녀들과 결혼했다고 한다.

유타주에서 문제가 제기된 구절 중엔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찬미하는 내용의 성경인 아가서의 구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아가서의 등장인물은 한 쌍의 연인으로, 연인의 육체적 아름다움에 관해 에로틱하게 묘사하고, 애무하고 입을 맞추는 등의 성행위를 하는 내용이 있다. 한편 인도의 힌두교에는 성행위의 종류와 기술 등을 상세히 분류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한 성교의 교과서와 같은 경전인 카마수트라가 있다.

동양에선 묵례나 악수 등의 방법으로 인사를 하지만 서양에선 가벼운 키스 인사로 인사하기도 한다. 인간이 입을 맞추는 행위는 고대에도 있었지만 인간이 입을 맞추는 행위가 단순히 동물적 본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진화생물학자 다윈의『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1872)』에 의하면, 키스는 선천적인 행동이 아니다. 다윈은 유럽인들은 애정의 징표로서의 키스가 너무나도 익숙하여 인간의 본능이라 여기지만 이는 오류라고 한다. 여러 원주민족을 연구한 결과 일부 원주민에게서는 키스 행위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키스가 사회문화적으로 학습되는 행위임을 역설하는 것이라고 한다. 악수, 키스, 포옹의 역사를 다룬 내셔널지오그래픽의 칼럼에서는 키스 인사의 유래 중 하나로 바울이 추종자들에게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라고 지시한 신약성경 로마서 16장 16절의 구절을 들었다. 성경에는 다양한 의미의 입맞춤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의미 중 하나는 ‘초대교회의 일반적인 인사’였다. 예수를 배신한 제자 유다는 한밤중 예수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예수의 위치를 알리는 방법으로 예수에게 다가가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며 입을 맞췄다.(마태복음 26장 49절)<자료10> 입맞춤이 얼마나 일반적인 인사인지 알 수 있는 장면이다.

<자료10> James Tissot,『유다의 입맞춤(The Kiss of Judas)』, 1886-1894
예수의 제자이자 배신자인 유다는 예수를 체포하러 온 사람들에게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붙잡아라” 일러두었고, 평소처럼 인사하는 척 키스 인사를 건네며 그의 위치를 알렸다. (출처: 브루클린 박물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 육체에 관한 자신의 신학적 사상을『몸의 신학』이라 불렀다. 그는 몸의 신학에서 사랑은 자기 자신을 주는 ‘자기 증여’라고 정의하며, 남성과 여성이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관계를 제시하였고, 성 영역 전체가 지니는 좋음과 아름다움을 강조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이후에도 “성행위는 남성과 여성을 연결해 주는 언어며 두 사람 간 사랑의 표현이자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신으로부터의 선물”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종교들의 가르침에서, 배우자에게 가서 성욕을 풀라는 방법 외에 성욕을 소멸시키는 다른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바가 있는가? 그렇지 못한 종교라면 금욕이란 비종교인도 알고 있는 윤리적 상식일 뿐인데, 종교의 존재 이유가 있을까?

사람은 진실 여부보다는 다수의 믿음에 자신의 믿음을 순응시키려 하는 본능이 있다. 이 때문에 인간은 ‘집단 착각’에 빠지기 쉽다. 집단 착각은 흔히 안데르센의 동화《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된다.<자료11>

<자료11>《벌거벗은 임금님》동화책의 표지 일러스트
‘집단 착각’은 흔히 안데르센의 동화《벌거벗은 임금님》에 비유된다. 인간은 진실이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수의 믿음과 본인의 믿음을 일치시키려하는 본능이 있다. 동화에선 진실을 얘기한 소년의 한 마디로 착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현실에선 착각을 알아차리기 힘들뿐더러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러나 집단 착각의 안개를 걷어내야 우리는 더욱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pioneer valley books)

“허영심 강한 임금님에게 임금님을 위한 멋진 옷을 마련했다며 사기꾼 두 사람이 찾아온다. 사기꾼들은 그 옷이 매우 아름답지만 멍청한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 누구도 멍청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고, 주변의 모든 이들이 사기꾼의 장단에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결국 임금님은 벌거벗은 채 위풍당당한 태도로 마을을 가로질러 행진하기 시작했고, 그때 한 소년이 나타나 진실을 말하면서 자신이 벌거벗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임금님도 처음엔 자신이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 모든 신하들이 옷이 보인다고 하니 자기 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 정말 옷이 있을 것이라고 믿게 된 것이다. 이처럼 진실이나 자신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다수의 믿음과 본인의 믿음을 일치시키려 하고, 종내에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 집단 착각이다.

집단 착각은 일종의 욕망이라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는 익명의 군중 속에 녹아들어 삶의 흉내를 내는 가짜 삶의 강물을 따라 편안하게 흘러내리고픈 약간의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욕망을 이겨내고 집단 착각의 안개를 걷어내어야 더욱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종교가 더욱 금욕적일 것이라는 대다수의 믿음과 달리, 종교인의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종교의 경전은 내용이 음란하여 학교에서 퇴출되기도 하는 현실에서, 올바른 판단은 무엇일까?

거짓말과 기만은 다르다. 거짓말은 그저 허구의 답을 만들어 제공하는 것에 지나지 않지만, 기만은 진실을 은폐하면서 동시에 남들을 속일 수 있는 허구를 만들어 내는 일이다. 사기꾼들에 기만당한 벌거벗은 임금님이 되지 않기 위해선 다수의 믿음보다는 진실 여부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종교 탐구 음란에 관한 종교의 가르침에 대하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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