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남산집회편(2)

"선풍적 부흥운동 이 땅의 심령계를 진동시켜"
발행일 발행호수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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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집회

남산집회를 마치고 청주 외덕교회 교인들과 함께한 기념사진. 당시 외덕교회 주동 장로였던 장시춘 관장(사진 뒷줄 좌로부터 네 번째)은 남산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전 교인과 함께 하나님께 돌아왔다.

천막집회에서 은혜받은 김성여 목사의 증언

“그는 목사도 아니요 설교자도 아니지만 그가 금년 정월 강단에 서기 시작한 후 불과 몇개월만에 각처에서 일으킨 선풍적 부흥운동은 이 땅의 심령계를 진동시켰다.”

1955년 부산진교회 김성여 목사는 천막집회를 인도하시는 그분에게 은혜를 받고 감동하여 ‘박태선 장로의 이적과 신비경험’에서 이와 같이 쓰고있다. “얼굴은 희고 맑고 키는 크고 양복저고리는 벗어 던지고 강단에 우뚝 서 있을 때는 마치 하늘 천사가 거기 서있는 듯 하다. 입을 열면 그의 입에서는 불이 터져 나온다.

나는 ‘불의 사자’라는 말을 말로만 들었는데 박태선 장로의 입에서 정말 불이 나오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인간의 입에서 불이 나오는 놀라운 광경을 나는 눈으로 보았다.”

남산집회에 15세 어린 나이에 병든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는 간절한 염원으로 참석했던 조영철 이사장(기장신앙촌)의 증언을 들어본다.

“빈손으로 서울에 오신 부모님께서는 갖은 고생을 하시며 생계를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님의 건강이 더욱 쇠약해지시고 병원에서는 심장병이라며 요양하면서 치료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빈곤한 생활이기에 쉬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딱한 사정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심한 독감까지 걸려 설상가상으로 앓아 눕게 되었습니다. 선교사의 도움으로 서울역 앞 세브란스 병원에 한달 동안 입원하여 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낫지 않고 고생하시던 중 당시 감리교회에 다니던 김화남 집사라는 분이 오셔서 ‘지금 장안엔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 나타나시어 부흥집회를 하시는데 앉은뱅이가 일어서고, 소경이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하는 등 수많은 병자들이 고침을 받는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런 놀라운 소식을 접하고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머니 병도 고칠 수 있을 텐데, 그렇게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간절한 마음과 호기심까지 일어나 그 집회에 참석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다음날 저녁, 병원에서 몸이 불편한 어머님을 간신히 모시고 남산집회 장소를 찾아갔습니다.

대형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바닥에는 가마니가 깔려 있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여 철야기도를 드리기 위해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도 함께 철야기도를 드리기 위해 비집고 들어가 가까스로 뒤편 한쪽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집회 둘째 날을 맞았습니다. 날이 새고 준비찬송이 시작되었는데 손뼉을 치며 부르는 찬송은 처음인지라 어색하고 좀처럼 마음 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준비 찬송이 끝나니 키가 크시고 인자하신 분이 등단하시는데, ‘아! 저분이 소문대로 병자를 고치시는 불의 사자 박 장로님이시구나.’ 하고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단상에 서신 다음 기도하실 때 머리 위에 광채가 둘린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양복 상의를 벗으시고 흰 와이셔츠 차림으로 찬송 인도 하실 때의 그 음성은 매우 고음이었습니다. 찬송가 가사에 마음을 실어 부르시는 모습은 정말 진지하고 간절했습니다. 단상 위에 놓인 책받침을 들어 꽝꽝 단상을 치시며 “주여! 불이여!” 하고 외치실 땐 두렵기까지 했습니다. 그 우렁찬 목소리는 천막 안 분위기를 삽시간에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내게서 능력이 나갔는데 받은 사람 일어나 손들고 간증하세요.” 하고 말씀하시자 여기저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손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어머니 병 고칠 일념으로 하나님의 부흥집회에 참석
같은 마을 앉은뱅이 일어나고 옆자리 벙어리가 “할렐루아”
집회 5일째 드디어 뜨거운 불의 성신 받고 감격의 눈물

그중에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앉은뱅이 처녀가 벌떡 일어나 기뻐 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본 사람이지만 제 옆자리에 있었던 분은 말을 못하여 손짓으로 의사 표시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일어나 ‘할렐루야’를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말로만 듣던 앉은뱅이가 일어서서 걸으며, 벙어리가 말을 하는 그 모습을 처음 본 저는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광경을 처음 본 저는 어머님 병도 고쳐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매달렸습니다.

집회 5일째 되던 아침에 드디어 어머님께서 뜨거운 불의 성신을 받고 감격해 우셨습니다. 그렇게 심하던 기침이 멎고 날듯이 기쁘고 온몸이 뜨거움을 느낀다는 말씀을 하시며 목이 메어 우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감격해 같이 울었습니다.”

남산집회의 증언

“제 마음은 은혜받고 한없이 기쁘기만”

임영신 총장의 간증

임영신 총장

중앙대 임영신 총장

저는 벌레와 티끌만도 못한 죄인입니다. 그러나 받은 은혜가 너무나도 이 죄인에게 커서, 참을 수 없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제가 그때 남산집회엘 가보니 사람의 송장 썩는 냄새가 어찌도 그리 심한지 처음에는 사람이 많이 모여서 그런가 했으나, 그것은 결코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보통 냄새는 아니었습니다. 저길 가면 괜찮을까 하여 그곳으로 가면 거기도 마찬가지였고, 가는 곳마다 숨막힐 듯한 송장 썩는 냄새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번 기도를 드리고 나자 송장 썩는 냄새는 씻은듯이 사라지고 시원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것이었습니다.

임영신 박사(1899~1977) 박사는
중앙대학교를 설립하고 키운
세계적 교육지이자 행정가

저는 세계에서도 제일 간다는 최고급 향수의 냄새를 맡아본 일이 있지만 그것은 심령속 깊이 스며드는 이 향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그동안 십 여일 간이나 계속하여 철야를 해 가시면서 참석하고 계시는데, 그렇지 못한 부족한 이 죄인은 이 자리에 나와서 간증의 말씀을 드리기조차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값없이 받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신기하고도 놀라와, 저는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나 제게 있어서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장로님의 집회에 참가하여 은혜를 받은후 부터는 그것이 가능하여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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