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이 은혜입은 천막집회 한강집회편(7.끝)

앉은뱅이를 일으키기 전 "내가 일어나라고 외치면 용기를 내어 일어나세요"
발행일 발행호수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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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양』지의 김형근 기자는 집회장의 강단 바로 옆에 바짝 붙어앉아 하나님의 전무후무한 권능이 나타나는 역사적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자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는 박 장로의 물음에 호응하여 손을 든 환자 수는 폐병 환자 80-90명, 심장병 환자 70-80명, 반신 또는 전신불수의 앉은뱅이가 60여명 정도, 기타 치질, 축농증, 벙어리, 귀머거리, 잡병에 걸린 환자가 약 100여명 정도로 이날 병 고치러 모여 온 중환자의 수는 수백명이 넘어 보였다. 리어카나 달구지로 혹은 추럭을 타고 병고침을 받으려고 몰려온 환자들로 장내는 병자에게서 나는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박 장로의 지시에 의하여 중환자들은 연단 앞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앞자리를 차지하였던 건강한 사람들은 뒷자리로 물러섰다. 업혀서 앞자리로 옮겨오는 불구자, 이불에 싸인 채 옮겨지는 환자, 그리고 좀체로 뒷자리로 물러서지 않으려는 가벼운 환자들로 해서 장내는 소란해졌다. 다시 장내는 박 장로의 말소리로 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진다.

“이제부터 다 같이 찬송가를 부릅시다. 찬송가를 부르다가 내가 앉은뱅이는 일어서라 하고 외치면 앉은뱅이는 용기를 내서 벌떡 일어나 보십시오. 그리고 폐병, 기타 병의 환자들도 마귀를 불살라라 하고 외치는 순간 속이 후련하고 몸이 거뜬해지거든 벌떡 일어나십시오. 자, 그러면 우리 찬송가를 펼치고 박수를 치며 찬송가를 부릅시다.”

넓디넓은 한강 모래사장에 빼곡이 앉은 사람들
집회자은 온통 이슬성신으로 덮여 뽀얗게 되고

양옥섭 집사(79세,기장신앙촌)는 평소에 하나님의 집회 소문을 듣고 하나님을 사모해 오다가 이웃집 아주머니의 권유로 한강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일주일의 집회기간 동안 한 잠도 자지 않고 철야하며 은혜를 간구하였던 양 집사는 이슬성신이 집회장 안에 가득히 내리는 광경을 목격 하였고 자신도 은혜를 받아 뜨거운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1955년의 여름 어느 날, 제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기성교회에 다니던 그분 댁으로 놀러갔을 때였습니다. 그 아주머니가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 몇 달 전 박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남산 집회에 참석해 보았는데 집회 장소에 이슬 같은 것이 뽀얗게 내리고 향취가 나는 등 은혜가 기가 막히고 너무나 신기한 일이 많더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일부터 한강 모래사장에서 박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가 열리니 저에게 같이 참석해 보지 않겠냐고 권유하였습니다. 저는 주저 없이 아주머니와 함께 집회에 참석하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다음 날 저는 아주머니와 함께 집회 장소에 찾아갔습니다. 도착해 보니 넓디넓은 한강 모래사장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저와 아주머니는 빼곡이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참만에 겨우 앞 부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준비 찬송을 마친 후,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박 장로님께서 나오셨습니다. 예배가 시작되고 단에 서신 박 장로님의 찬송 인도에 따라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부르는데 이상하게도 그때부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잘못했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르면서 회개의 눈물이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왔습니다.

찬송을 한참 부르고 있던 중, 갑자기 제 온몸이 뜨거워지며 후끈후끈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입안에 무엇인가 달콤한 것이 감돌았습니다. 그리고 집회 장소에는 안개 같은 것으로 뒤덮혀 전체가 뽀얗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설교를 하시며 강대상을 치실 때마다 불이 번쩍번쩍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 모든 현상들이 그저 신기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다음 날 새벽예배를 마친 후 박 장로님께서는 그 자리에 모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안수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정성껏 안수해 주시다 보니 박 장로님의 옷 전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안수를 해 주신 후 다시 단상에 올라가셔서 병 나은 사람들은 다 일어나라고 하시자, 여기저기에서 병자들이 일어나 “저는 무슨 병이 나았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봉사가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였으며 곱추의 등이 펴지는 등 놀라운 기사 이적이 집회 마지막 날까지 계속 일어났는데, 병 나은 사람들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또한 저는 7일간의 집회 기간 동안 한 잠도 자지 않고 철야를 하였는데도 몸이 전혀 피곤하지 않았고 마음이 기쁘고 편안하였으며, 집회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전혀 피곤을 느끼지 못하였습니다.

한강 집회에 다녀오고 얼마 후 저는 금호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한강 집회에서 많은 은혜를 체험하였던 저는 박 장로님의 집회에 또 다시 참석해 보고 싶었지만 그 뒤로는 집회가 어디서 열리는지 알 길이 없어 그저 답답할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내던 중, 저는 그해 겨울부터 동네에 있는 금호 장로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면 아무런 느낌도 없고 마음이 냉랭해지기만 하니, 저는 교회에 가서도 늘 한강 집회에서 받았던 은혜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질 뿐이었습니다.

7일간 철야해도 피곤치 않아

그러던 중 1956년 어느 날, 우연히 종로에 갈 기회가 생겼는데, 문득 한강 집회 때 저를 데리고 갔었던 아주머니 생각이 떠올라 그 댁에 들러 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저를 보고 매우 반가워하셨습니다.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하다가 저는 아주머니에게 박태선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가 어디서 열리는지 알 수 없냐고 여쭈어 보았습니다.

아주머니는 한강 집회에 참석한 이후에도 계속 박 장로님이 인도하시는 집회에 참석하다가, 지금은 박 장로님이 세우신 전도관에 다닌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박 장로님께서 마포에 이만제단을 새롭게 지으시며 거기에서 집회를 하시니 저에게 내일 함께 가 보자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동안 너무나 듣고 싶었던 소식이었기 때문에 아주머니에게 선뜻 내일 같이 가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다음 날 아주머니를 따라 이만제단에 가보니 건물이 완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집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단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는데 저는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눈물이 쏟아져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어린애가 엄마를 떨어졌다 다시 만난 것처럼, 어찌나 반갑고 좋던지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놀라운 것은,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그 전까지 몹시 아팠던 왼쪽 다리의 통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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