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대법정에서의 세기의 재판

발행일 발행호수 2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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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3년에는 우르바노 8세에 의해 종교재판에 회부된 갈릴레오의 지동설을 ‘재판’하는 종교 재판이 열리더니, 1959년 서울의 한 법정에서도 비슷한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그때는 갈릴레오가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을 도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신성을 모독하였다 하여 그를 재판정에 세워 놓고 심판했는데 1959년 서울의 법정에서는 이슬성신의 진위를 놓고 종교 재판이 열렸던 것이다.

밖에는 기마경찰이 삼엄한 경비를 펴는 서울지방법원 대법정에는 이남규 판사가 법대에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증인이라는 이름으로 기성교회 교권주의자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박태선 장로가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감람나무라고 주장했으며 또 그가 이슬 같은 성신을 내린다고 하니 이단이 틀림없다며 고소를 한 것이었다.

그들이 준비한 회심의 카드는 모두 세 가지였다. 첫째는 박태선 장로가 사람이 되어서 어찌 감람나무라 하며 하나님이라 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둘째 성경 이사야서에 감람나무는 한국 땅에 나타난다고 기록돼 있다고 하는데 이사야 시절에는 세계 지도도 없고 지구가 둥근 것도 알지 못할 때인데 어떻게 이사야가 한국 땅을 묘사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감람나무가 이슬성신을 내린다고 하는데 그 사실이 거짓이 아니냐 하는, 이슬성신의 진위에 관한 것이었다.
그들은 이 세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오늘로 감람나무는 끝이라고 확신하고 스스로 대견한 나머지 얼굴에 희색이 만면했다. 그 질문들은 한 가지도 답변을 할 수 없도록 그들이 머리를 짤 때로 짜서 준비한 치명적인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박태선 장로의 집회마다 이슬 같은 성신의 은혜가 내린다는 것은 집회에 참석했던 수천 명 목사들이 자기들 입으로 증거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그 은혜야말로 감람나무, 즉 육신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성신 중의 성신이라는 성경 호세아서를 발견하게 되자 그들은 하루아침에 태도를 돌변하고 그것이야말로 이단의 증거라고 총공격을 가해 왔던 것이다. 그들의 주장에 동아일보 등 모든 언론이 이슬성신이 내리는 성화는 조작된 것이라고 대서특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이 부정하려 해도 이슬성신이 내린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진짜로 이슬 같은 성신이 내린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판사가 이슬성신이 찍힌 사진을 제시하며 질문했다. “이것이 진실인가요?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라고. 이에 감람나무가 답변했다. “만일 지금 당장이라도 나로 하여금 집회를 열 수 있게 해 주시면 당신들의 카메라로 이슬성신이 내리는 사진을 찍을 수가 있습니다. 이슬성신이 내리나 안 내리나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의외의 자신있는 답변에 당황한 판사는 주위의 기성교회 교권주의자들과 의논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슬성신의 성화 사진이 찍혀 자신들의 거짓이 드러날까 두려워했다. 그리고 끝내 집회 신청을 기각하고 말았다. 이슬성신이 내린다는 사실을 부작위(不作爲)적으로 인정한 셈이었다. 이리하여 1959년의 서울지법 대법정에서 열린 재판은 감람나무가 이슬성신을 내린다는 것을 입증하는 세기의 재판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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