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평양 방문기

발행일 발행호수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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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 발표된 도올 김용옥 교수의 평양 방문기가 재미있었다. 남북 정상회담 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을 다녀온 도올은 개성 시내를 통과하면서 학생들이 하나같이 책을 펼쳐 들고 읽으며 길을 걷는 ‘연출된 풍경’을 보고 “이것은 아닌데” 하는 첫인상이 들었다고 했다. 인간의 자유와 창의를 신봉하는 사상가로서 주민 생활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통제하는 북한의 실상을 처음 목격하고 좌절했다는 것이다.

평양의 만찬장에서 옆 자리에 앉은 북한의 최고 지성이라는 김일성 대학 총장에게 “누가 인민을 그렇게 통제하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당(黨)이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그러면 그 당이 잘못되는 것은 누가 견제하는가?”라고 했더니 “우리의 장군님이 계시지 않는가?”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 장군님이 잘못되는 것은 누가 바로잡는가?”라고 했더니 “이 ‘사이비 사상가’가 ‘개똥 철학’을 논하네”라는 욕설이 돌아오더라고 했다. 할말이 없어진 그 총장이 ‘말의 똥 바가지’로 답변을 대신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10만 명이 연출하는 아리랑 공연 등 북한 사회의 경직된 모습을 여러모로 관찰하고 도올은 “이 사회를 어떻게 봐야 하나” 하는 생각에 밤을 새워 고민했다고 했다. 그러다가 도올이 얻은 결론은 “(북한 사회가 이렇게 된데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오늘의 저 역사를 우리도 참여해 만든 것이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면서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고 했다. 즉 한반도를 교차하는 20 세기의 냉전 시대 열강의 힘 겨루기 속에서 북한의 이러한 체제가 형성된 것이라고 이해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이라면서 “과거는 더 이상 묻지 말고, 오늘을 원점으로 미래만을 설계해 나가자”라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말은 평양을 방문했던 모든 사람들이 북한의 눈치를 살피는 와중에서도 “자유로운 사상가로서 북한의 주체성, 통일성을 감내하기 어려웠다”라고 당당하게 의문을 표시했던 도올이 내린 결론으로서는 학자답지 않은 어정쩡한 것이었다.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냉전 시대의 생존을 위한 산물로만 치부한 것은 도올의 한계라고밖에 할 수가 없다.

같은 냉전 시대를 살아왔고 열강의 가혹한 시련을 겪었던 중국과 베트남에서는 모택동 체제나 호지명 체제가 아닌 선출된 지도자들이 개혁과 개방을 국시(國是)로 삼고 인민을 잘 살게 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유독 북한만이 왕조(王朝)성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데 문제는 왕조 체제가 개혁과 개방이라는 개념과는 모순되는 것이며 개혁과 개방에는 심한 거부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 회담에 참석했던 인사들이 북한 지도부에 “개방 좀 하여 잘 살아 보시죠.”라고 순진하게 권면 했다가 그들의 강력한 거부감에 당황하여 앞으로 그런 말조차 꺼내지 말자고 했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다.

도올이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할 수 있는 진정한 용기와 혜안을 가졌다면 개혁과 개방 대신 선군 정치를 내세우는 북한의 왕조성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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