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신앙촌(16) – 시온 어린이농구팀②

시온 어린이농구팀의 묘기에 감탄한 사람들 '어린이들이 저렇게 잘 할 수가...'
발행일 발행호수 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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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시온 어린이농구팀의 경기 장면. 오른쪽은 장충체육관을 메운 <신앙촌 응원단>. 응원단장과 밴드대의 모습도 보인다.

어린이 농구공이 없던 당시에 어른용 축구공을 가지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던 시온 어린이농구팀은 드디어 제1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라는 무대에 출전하게 된다.

시온 팀은 먼저 ‘서울 혜화’ 팀과 대전했는데 1965년 11월 11일자 소년한국일보는 그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시온 어린이 팀과 어린이 농구의 강자였던 ‘서울 혜화’ 팀이 대전할 때는 ‘혜화’응원단 1,600명과 ‘시온’응원단 1,300명이 맞부딪쳐 ‘혜화’응원단은 북을 치며 노래를 했고 ‘시온’응원단은 시온중학 밴드대까지 동원하여 박수로 장충체육관을 뒤흔들었다. 결과는 패스와 슛이 정확한 ‘시온 팀’이 24대 15로 이겼다.

‘시온 팀’은 전반전에 16대 6으로 크게 앞섰는데, 후반전에 들어 ‘서울 혜화’가 치열한 공격을 퍼부어 8:9로 한점 앞섰으나, 결국 전반전의 큰 점수 차이 때문에 지고만 것이다.” 시온 팀은 준결승전에서 ‘서울 마포’와 맞붙게 되었는데 준결승전의 모습을 1965년 11월 12일 소년한국일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1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경기 시온’대 ‘서울 마포’ 남자 경기에서는 ‘시온’ 4번 센터 차길점 군의 원핸드 슛이 정확했으며, 또한 11번 임창호 군은 큰 키를 이용하여 리바운드 볼을 거의 혼자 잡아내듯하여 점수 차를 벌여 20분 경기에 34점이라는 엄청난 점수를 올려 크게 이겼다.”

강팀들 모두 꺾어 

두 번 경기를 내리 이긴 시온 어린이 팀은 ‘서울 교동’ 팀과 결승전을 벌였는데 당시의 광경을 1965년 11월 22일자 신앙신보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11월 13일, 교동국민학교 팀과의 결승전은 서울텔레비전 방송국과 기독교 방송국에서 중계방송을 하였는데 시온 어린이 팀은 처음부터 좋은 팀웍과 정확한 슛으로 스코어 차를 벌여 후반전에는 제2진을 기용하는 정도의 여유 있는 게임으로 진행되어 31대 14의 성적으로 승리하였던 것이다.

20분 간의 짧은 게임에 이처럼 엄청나게 놀라운 스코어 차를 낸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주최 측에서는 감탄했다. 특히 이날 1,000여 명의 전도관 신도들과 덕소, 소사 중·고교 학생들 그리고 밴드대까지 열띤 응원을 벌여 장충체육관을 메운 만 여 관중을 놀라게 했다.

이날 게임이 끝나고 하오에 있은 시상식에서 시온 제2 국민학교 팀은 영예의 우승기와 우승컵 그리고 부상을 받았으며 양수천 군은 개인 최우수상을 받았다.”

장충체육관 메운 만 여 관중 열띤 응원 속
시온 어린이 팀 감격의 첫 우승

6개월간 흘린 땀과 노력의 결과가 그 해 가을에 열린 전국 제1회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에서의 우승으로 나타난 것이다. 당시의 신문과 언론들은 시온 어린이농구팀의 놀라운 활약상을 앞다투어 실었는데 결승전을 관람한 서울시 교육위원회 박종협 국장은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농구 기술이 이처럼 능숙한 줄은 몰랐다. 이기고 지는 것을 떠나, 다만 볼 잡기에만 정신을 쏟고 있는 운동정신은 어른들도 본받아야 할 것이다. 손에 땀이 괴는 아기자기한 경기를 첫날부터 구경하지 못한 것이 섭섭하다. 어린이들의 체력 향상과 체육 교육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 내년에도 계속하여 적극 협조하겠다.”고 관전 소감을 말하기도 했다.

어느 ‘짚신 세대’의 감탄

또 20여 년 전 짚신을 신고 농구, 축구, 유도 등 각종 운동부문에 걸쳐 선수생활을 한 바 있다는 나주연씨(58살)는 이번 전국 어린이 농구대회를 보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일 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처음인 이번 전국 남녀 국민학교 농구대회는 국민학교 어린이들의 체력과 체위 향상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겠다.”고 감탄을 연발했다고 한다.

창단할 때부터 시온 어린이농구팀은 청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A팀과 백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B팀으로 나누어 연습을 하였는데 A팀은 고학년 위주로 B팀은 저학년 위주로 선발하였다.

어른같은 ‘언더 슛’ 기술

선수는 모두 18명이었고 출전선수는 A팀의 12명이 주로 출전하였는데 당시의 출전 선수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오성덕(5년), 차길점(5년), 이용만(6년), 이원석(5년), 곽신웅(4년), 박연식(4년), 이영호(5년), 임창호(6년), 황진규(4년), 유승택(5년), 양수천(4년), 장현배(5년).경기 중에 시온 어린이농구팀은 ‘언더 슛’의 기술로 관중들의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언더 슛’은 본래 고등학생들이나 성인선수들이 묘기를 부리는 농구기술인데 국민학교 어린이들이 이를 구사하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과 코치는 가르치지 않았지만 선수들은 성인선수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했던 것이다. 당시의 ‘대한뉴스’에서는 어린이들이 어쩌면 저렇게 멋진 언더 슛을 구사하는지 분석하겠다고 특별촬영을 하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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