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랴 (호14:9)

이슬성신에 관한 증거와 기성교회의 비방
발행일 발행호수 2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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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슬과 같이 임하리니…”(호세아 14장 5절)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마지막 때 감람나무를 통해 한없이 내리시는 이슬성신.
그러나 천막집회에서 이슬성신을 받고 기뻐 뛰며 증거하던 기성교회 목사들은 정치세력, 언론매체들과 연합하여 네 바람을 일으키며 이슬성신을 대항했다. 그들은 이슬성신을 내리는 ‘감람나무’가 곧 ‘하나님’인 낌새를 챘던 것이다.
아래 노란색 문서는 사진에 관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코닥사가 이슬성신 사진을 감정하고 조작의 여지가 없음을 확인한 것이다.

촬영자들의 증언 – `신앙촌 하늘 위에서 빛줄기가 마구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심광수(한일물산)사장
1996년 11월 16일 추수감사절 전야였다. 나는 장일천 관장, 이종숭 관장 등 여러 명과 아름다운 기장 신앙촌의 야경을 촬영하기로 하였다. 시간은 대략 밤 9시에서 10시경이었다. 그날은 외국에서 온 교인들과 전국의 교인들로 기장신앙촌은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그 때 기장신앙촌의 밤하늘에 이슬성신이 내리고 있었다. 그간의 이슬성신은 주로 실내에서 목격되었으나 그날은 야외에서 너무나 생생하게 목격되었다. ‘눈 있는 자는 볼 것이요’라는 성경말씀대로 그날 기장신앙촌 상공에서는 남녀노소, 교인이나 비교인 모두의 눈 앞에서 이슬성신 최대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제1아파트 옥상에서 준비 중이었는데 대제단 터 쪽에서 붉은 기둥이 빛을 내며 마구 쏟아지는 것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교환에게 전화하여 방송을 하여 모두 나와서 보도록 하였다. 우측의 죽성리에서 좌측의 학리 쪽으로도 이슬성신의 기둥들이 내리고 있었다. 보이는 기둥만 세어보니 70개 가량이었다. 방송이 나가자 제1아파트 앞 농구장에서 농구하던 젊은이들이 하던 농구를 멈추고 쳐다보고, 다리 쪽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모두 이구동성으로 “하나님께서 신앙촌을 축복하신다. 너무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라고 소리를 쳤다.
좀 더 가까이 촬영하기 위해 제2아파트 옥상위로 올라갔다. 나이 많으신 권사님들이 올라오셔서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 사진을 찍어야지”하며 기뻐했다. 다시 대제단 터 쪽으로 올라가니 중앙에 가장 큰 불기둥을 중심으로 죽성리와 학리 쪽으로 작은 기둥들이 쫙 늘어서 있었다.(위 왼쪽 사진) 마침 경리부의 이명옥 과장이 밖에 나갔다가 기장신앙촌에 들어오다 보니 신앙촌 전체가 이슬성신으로 뽀얗게 덮혀있더라고 했다. 1996년 추수감사절을 계기로 그 후 기장신앙촌에 이슬성신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목격되고 사진에도 촬영되었다.

▶이종숭(일광교회)관장
우리는 1996년 추수감사절에 다섯 팀으로 나누어 기장신앙촌 전경을 사진에 담기로 하였다. 장소는 정문, 흙더미, 제강, 송정리, 한국유리 방향이었다. 그 날에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이슬성신의 장엄함에 압도되어 나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한 후에 촬영을 하였다. 하늘에서 막 쏟아지는 빛나는 이슬성신을 보니 신기하고 기뻤다. 그날 추수감사절에 모였던 모든 교인들은 너무나 기뻐 어쩔 줄을 모르던 모습이 생각난다.

▶정현철(마산교회)관장
1999년 가을 동부리 사건 때부터 신앙촌의 이곳저곳을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2000년 1월 초 밤 9~10시 경 정문 쪽에서 들어오다가 오른쪽에 있는 흙더미 위에서 신앙촌의 아름다운 야경을 찍으려 했다. 그때 하늘에서 빛이 막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은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하였다. 나는 그것이 이슬성신임을 깨닫고 ‘특별한 체험도 없는 부족한 나에게까지 하나님께서 귀한 것을 보여 주시는구나’ 생각하니 너무나 기뻤다. 한편으로는 두려움에 가슴이 떨려왔다. 죄를 지으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장신앙촌을 향하여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위 오른쪽 사진)

기성교계가 이슬성신을 부인하는 것은 ‘감람나무’ = ‘하나님’의 낌새를 챘기 때문, 정치세력 등에 업고 종교바람 일으키며 결사반대 해

이 땅에 오신 감람나무 하나님께서 이슬성신을 내려주시고 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슬성신을 체험한 후 “내가 이슬과 같이 임하리니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하는 호세아서 14장의 성경 구절과 결부를 시키자 천막집회에서 이슬성신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증거하던 2,000여 명의 기성교회 목사들은 돌이켜 이슬성신을 비방하기 시작한다.
천부교가 시작되던 그 해 1955년 7월 한국 기독교 연합회는 ‘신비주의적 오류’를 규탄한다고 성명을 발표했고, 1955년 8월 4일 대한 기독교 장로회 총회는 6가지 항목을 들어 각 기성교회에 전달하는데 여섯 번 째 항목에는 “향취, 이슬성신 등은 성경에 근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인들은 여기에 현혹치 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 땅의 언론들과 합세해 이슬성신의 은혜를 비방하고 모략하였는데, 특히 동아일보와 경향신문 등이 앞장을 섰다.
동아일보는 1960년 9월 14일 이만제단 장로장립식에서 찍은 축복 사진(본보 1면)을 ‘신앙촌에서 진짜라고 하는 축복’이라는 사진 설명을 달고 “축복의 진가(眞假)”라는 제목으로 그 아래에는 “기자가 축복처럼 만들어 본 것”이라며 조악한 그림을 싣기도 했다.(왼쪽 사진) 그 후 1960년 12월 6일에는 또 다시 ‘축복 사진은 조작할 수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1960년 이러한 동아일보의 허위보도에 분노한 천부교인들은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벌이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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