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성교회 정경자 권사(81세)

지금도 자전거 씽씽 타는 '이팔청춘'
발행일 발행호수 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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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정경자 권사가 신앙촌 폭포 옆을 지나며 힘차게 페달을 밟고 있다.

“자전거만 타면 이팔청춘인데, 허리가 꼬부라져서. 자전거 배우길 참 잘했지.”
자전거 위에만 앉으면 걱정이 없는 정경자 권사(81. 죽성교회). 신앙촌과 가장 가까운 마을인 죽성에서 매일 신앙촌 내의 오리엔스 금속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가면 계속 앉아서 조립하는 일이라서 우리 같은 사람도 용돈을 받으며 일을 해요. 또 우리네는 요즘 젊은 사람들처럼 설렁설렁 하지 않고 열나게 하니까, 우리가 일을 하면 죽기살기로 하잖아요. 호호호.” 말을 마치고 환하게 웃는 웃음에 주름살이 다 펴진다.

서산에서 인천으로 시집 와 숭의동 인천전도관 아래에 살았다. 그 동네에는 전도관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안 믿는 사람들은 전도관 가면 미친다고 하는 소리를 했다. 전도관에 다니는 김예비 권사님의 동생과 이웃에서 친하게 지냈는데 그 권사님이 전도관에 다니자고 몇 번 전도를 하는 것이었다.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어느날 새벽종 소리에 눈을 뜨니 전도관에 가고 싶은 것이었다. ‘전도관 사람 따라가서 미치나, 세상 사람 따라가도 어차피 다 죽는것, 밑져야 본전이지.’ 그길로 곧장 교회로 갔다.

`하나님께서 인천제단에 서신 예배 때인데
창문으로 계속해서 연기가 들어오길래 처음에는
동네 사람들이 불 지르며 장난 하는 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이슬성신임을 깨달아`

교회에 가서 찬송을 부르면 기쁘고 좋았다. 찬송가 가사 하나하나가 쏙쏙 들어왔다. 찬송으로 먼저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신앙의 길, 어느 예배인가 하나님께서 단에 서셨는데 창문으로 연기가 자꾸 들어오는 것이었다. 동네에 나쁜 사람들이 불지르나 보다고 생각을 하고 옆에 있는 교인들에게 물어보니 그게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이슬성신이라고 말해주는 것이었다. 나중에 김예비 권사님이 말하는데 나에게 전도를 할 때 향취가 진동하더라며 꼭 전도가 될 줄 알았다고 했다.

소사신앙촌에 입주해 소비조합을 하면서 신앙이 자라는 것을 느꼈다. 기쁘고 즐겁고 예배에는 일찍 가서 기도하고 싶고, 그렇게 마음이 움직였다. 기장신앙촌이 건설되고 오매불망 그리다가 1977년 신앙촌 가까운 죽성으로 이사를 왔다. 여기서도 소비조합을 했다. 역시 소비조합을 하면서 은혜 체험을 많이 했고, 기도도 많이 드리게 되었다. 하루는 손님이 찾는 물건을 가지러 지하 창고에 급하게 내려가다가 굴렀다.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그때 잘 처리하지 못해 허리가 꾸부러졌다.
사고나 나고 20일 후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환갑 때였다. 장사를 마치고 들어와 죽성국민학교 운동장에서 한 시간씩 타면서 배웠다. 그때 자전거 배우길 정말 잘했다.

“새벽예배에 가면서도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오르막엔 끌고 가면 한 10분 정도 가죠. 아침에 출근할 때도 늦으면 10분만에 달려가고 보통은 15분 정도 걸려요. 이만한 운동이 없지.” 하루에 보통 50분 정도 자전거를 타며 움직이는 정 권사. 자전거에 내려와 자전거를 잡고 걸으면 역시 허리가 꾸부러졌는지 모른다.
하루하루 바쁘게 일할 일터가 있고, 즐겁게 몰두할 일이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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