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춘 전직 관장 편 ② 하나님의 구제단에서 은혜를 받다

목욕재개하고 간구하니 회개의 눈물 쏟아져
발행일 발행호수 2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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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서울 원효로 구제단의 예배 모습.

윤재춘 관장은 교역자로 발령을 받기 전에 하나님께 은혜를 받는 체험을 하게된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안타까워 하다가 마침내 원효로에서 하나님께서 기성교회와 결별하시고 구제단을 시작하셨음을 알고 참여한다. 한국 천부교의 태동의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때는 그가 22세였던 1955년 12월이었다.

교역자로 나오기 전 육군 본부 군인교회 집회, 한강 모래사장 대집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윤재춘 관장은 집회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나신 하나님을 뵈올 수 없어 클클한 마음에 새벽예배에 가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게 되었다.

“저는 하나님께 좀 더 정성을 드려야겠다 싶어 새벽 1시경에 일어나서 냉수목욕을 하고 교회를 찾아가 마루바닥에 꿇어 엎드려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떤 기도를 어떻게 하여야 할 줄을 몰라 눈을 감고 엎드려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다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바라고 기다리고 묵상했습니다.

하루 평균 5~6시간 엎드려 기도를 드리기를 한 보름정도 지났을 무렵이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기도의 말문이 열리게 되어 나도 모르게 기도가 술술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제 마음에 빛이 비추어지며 회개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제 나이 22살 때인데 어릴 때부터 그때까지 지은 죄가 낱낱이 생각나고 기억이 나는데,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 어떤 죄를 지은 것이 환히 떠오르며 통곡과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때 죄를 세어보니 90여 종류가 생각났습니다.

어릴 적에 친구들과 남의 집 배나무에 몰래 배따먹은 죄, 마른 호박 줄기를 갖고 담배 피우는 흉내 내던 일, 나보다 약한 친구 욕하며 때리던 일, 또 싸우던 일, 평생에 닭 2마리를 잡아보았는데, 닭 목을 베어서 잡아먹은 일은 마치 사람을 해친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는 세상 모든 사람이 ‘나보다는 다 나은 사람이구나! 내가 제일 큰 죄인이야… 이 태산 같은 죄를 어찌할꼬…’ 깊이 탄식하고 또 탄식하며 마음은 천길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는 한번 부복하면 눈물 없이는 기도를 드릴 수 없고 하염없는 눈물이 또 흐르고 흘러 그 다음부터는 말 한 마디 행동 하나 눈길 하나 조심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고 사모하며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했습니다. 그때부터 성신의 불이 뒷잔등에 계속해서 뜨겁게 임하고, 집에 있으나 학교에 가거나 이 뜨거움은 몇 년간 계속 임했습니다. 불성신이 임하여 앞가슴과 배와 아래 배 쪽으로 태워주심을 느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하나님 말씀대로 마귀의 구성체요, 사망의 신으로 빚어진 인간이라는 것이 실감이 났습니다. 또 심장 쪽으로도 태워주심을 분명히 알 수 있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면 70번씩 7번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7천 번씩 7천 번이라도 사하여 주시는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이심을 느꼈습니다.”

성신의 임하심을 체험한 윤재춘 관장은 하나님을 사모하다가 원효로 4가 전차 길가 양옥 2층 하나님 댁을 찾게 되었다. 그는 설레이고 부푼 마음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였다.

하나님 댁 마당에는 친히 경영하시던 정밀공장이 있었고, 그 옆에 20평 정도되는 기도실이 지어져 있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실에서 기성교회와 끊고 따로 모일 것을 선언하시고 매 주일 2시경에 예배를 드렸다. 구제단이라고 일컫는 한국천부교의 태동의 순간이었다.

“그때만 해도 교인들이 자기 본 교회에 예배를 보러 갔기 때문에 시간을 오후로 잡아준 것입니다. 120평 되는 공장을 헐어내고 바닥에 가마니를 깔아놓고 예배를 보기 시작하였고, 그 자리에 판자로 구제단을 120평 짓고 뒤쪽으로 2층을 올리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어 그때부터 정시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구제단에서는 하나님께서 매일 아침 단에 서셔서 말씀해주시고, 또 매일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기성교회에서 들어보지 못한 새롭고 새로운 말씀으로 깨우쳐 주시니 그 말씀은 꿀송이보다 더 달고 달았습니다. ‘묵시록에 네 입에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더라’했는데 ‘말씀을 들을 때는 너무나 좋지만 지켜 행하려면 쓰디 쓰고 어렵다’하는 뜻이라 하셨습니다.

새벽제단에 서시면 말씀을 길게 하셔서 10시가 지나도록 단에 서셔서 학교에 갈 시간이 훨씬 지났지만 일어나서 나갈 수가 없었고 눌러앉아 예배를 드리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학교에 가면 3교시가 끝날 때가 수두룩했습니다. 은혜 받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니까요.”

1956년 1월 중순 어느 날 영하 18도로 몹시 추워서 구제단 유리 창문이 꽁꽁 얼어서 밖이 내다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유리창에 성애가 꽉 낀 적이 있었는데 이날 하나님께서는 이적을 행해 보여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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