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 관장 편 ① 신앙의 터닝포인트

하지현 관장 / 인천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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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관장 / 인천교회

모태신앙인 나는 나 자신의 애타는 신앙보다 전도사 출신인 아버지의 신앙에서 출발하였다. 그런 나에게 신앙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결정적인 일이 있었다.

대학 시절, 여대생 MT를 대구교회로 갔다.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평생 열정적으로 소비조합 활동을 하셨던 권사님이 오랜 암 투병 끝에 돌아가셨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고 장례예배에 참석했다. 어려서부터 늘 듣던 것이 시신 피는 신앙체험기였건만 그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장례예배 시작부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찬송을 하고 드디어 시신이 피는 것을 처음 본 순간… 그 놀라운 장면은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에 생생히 남아있다. 오랜 투병 생활로 시신은 전체적으로 검푸른 반점들로 뒤덮여 있었는데 생명물을 먹이고 씻기자 백옥같이 형광체로 빛나는 얼굴과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팔, 다리는 물론 손가락 관절까지도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세게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신이 피는 권능이 사실이라면 하나님 말씀하신 모든 것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 특히 평소에 내가 행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시고 심판하신다는 것이 생생하게 와 닿으며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어떡하지… 난 말씀대로 지키지 못한 게 더 많은데.’ 한평생 성실하고 정확한 신앙생활을 하셨다는 고인의 신앙생활을 들으며 거짓 없이 드러나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덕소 신앙촌)

생명물을 축복하시는 모습(덕소 신앙촌)교역 생활 첫 발령지는 아름다운 유달산 아래 우뚝 솟아 있는 목포교회. 시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여성회 부회장님의 바깥어른이 돌아가셨다. 교장 선생님으로 퇴임하셨던 고인은 신앙촌상회를 하시는 부회장님을 평소에도 많이 도와주셨다. 그러나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을 하시는 큰 아드님은 목포에서 제일 큰 기성교회 성가대 지휘자였던 탓에 장례절차를 의논하는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결국은 어머님의 강경한 태도로 천부교 장례절차대로 진행되었다.

크리스천이던 유족이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놀라 정중히 감사 인사를 해

교인이 아닌 분의 장례식은 처음이라 시신이 과연 어떻게 변화될지 무척 궁금했다. 생명물로 씻긴 고인의 팔다리는 자유자재로 움직였고 입술은 어린아이의 것보다 더 예쁜 앵두 입술이었다. 또 인중에는 영롱한 이슬방울까지 여러 개 맺혔다. 모두 아름답고 편안하신 모습에 기뻐하는 와중에 뒷자리에서 까치발로 열심히 지켜보는 낯선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바로 독실한 크리스천인 큰며느님이었다. 큰며느님은 눈 앞에 펼쳐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에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입관예배가 모두 끝나고 처음에 무시하고 홀대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정중히 90도 감사 인사를 전하는 유족들. 교역 생활을 하며 지켜본 수많은 장례식장에서 벌어지는 풍경이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과학적이고 보편적인 생명물의 놀라운 권능! 내게 확실한 진리의 이슬성신 권능을 전할 수 있는 교역자의 직분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새삼 다시 한번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뿐이다. /인천교회 학생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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