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제단’, 천부교 첫번째 교회(2)

원효로에 임시 '서울 전도관' 건축
발행일 발행호수 2066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공장 기도실에 모이기 시작한 은혜받은 사람들, 원효로에 임시 ‘서울 전도관’ 건축

목사들의 음해로 흩어졌던 양떼들중 몇 사람들이 1955년 말 서울시 용산구 원효로 3가 52번지 박태선 장로님께서 경영하시던 대한정밀기계공업사 기도실에 모여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였고 이 소문이 퍼져나가자 곧 많은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왔다.

천막집회에서 받은 은혜를 잊지 못하여 애타게 박태선 장로님의 소재를 수소문하던 수많은 사람들은 하루가 다르게 원효로로 몰려들었다. 처음에는 20평 가량의 공장 기도실에서 예배를 드렸으나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어 기도처를 허물고 뒷마당 공간에 교회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 교회를 ‘원효로 제단’, ‘구 제단’ 혹은 ‘서울중앙임시전도관’이라고 불렀는데 천부교 역사상 첫 번째 교회였다.

`그 후 새벽제단 때 내일 아침 연보를 해서 제단을 크게 짓자고 하시더군요. 그 이튿날 ‘하나님의 마지막 뜻을 완성하시는 것이 어디 있는가 알 때가 올 것이다’ 하시고 연보를 거두었는데 그때 수를 세어 보니까 80명이었습니다. 그 이튿날부터 짓기 시작해서 10일도 못되어 기둥을 올렸습니다. 그리하여 1955년 12월 25일 역사적인 원효로 임시 전도관 개관 집회가 있었는데 그때 하나님께서는 찰떡을 해서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때 모인 수는 500여 명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말씀하시는데 지금 여기 뒷자리가 비었지만 얼마 안되어 차고 넘치리라 하셨습니다. 과연 그 후 얼마 안되어 제단이 넘치고, 새로 증축한 2층까지 넘치고, 앞 쪽의 전차길까지 온통 인파로 덮여서 교통 차단이 일어났었습니다. 용산경찰서에서 경찰이 출동하여 교통을 정리하는 소동이 벌어졌었습니다.` 당시 참석자들의 증언이다.

교회를 짓자마자 그곳도 다시 장소가 비좁게 되어 예배실 뒤쪽으로 2층을 지어 올렸지만 그래도 앉을 자리가 없었다. 제단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은 현관 밖에까지 차고 넘쳐 교회 양쪽 창문에 붙어 서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고, 또 하나님 댁 뒤쪽 한강 샛강과 미나리꽝 사이의 둑에까지 앉아서 바깥에 설치해 놓은 스피커를 통해 예배를 드렸다.

1956년 2월 17일자 신앙신보 23호에는 당시의 광경을 묘사한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참과 거짓을 분별시키시는 성령의 은혜는 한없이 내려 영하 16도 이하의 추운 새벽에 얼어붙은 교회 유리 창문이 하나님이 서신 강대상 쪽부터 다음 다음으로 녹아내리는 기이한 현상, 난방 장치가 필요치 않고 입고 온 웃옷도 벗어 놓고 향기 진동하는 이슬성신 속에서 별세계의 진상을 바라보는 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때로는 하나님의 시선만 마주쳐도 불치병이 낫고, 사귀가 물러가고 매일 완치자 수십명이 간증하니 참관자들은 모두 경탄치 않을 수 없다.`

그 시절 겨울철은 한강이 얼어붙지 않을 때가 없을 정도로 몹시 추웠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원효로 교회 안을 뜨겁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신 듯, ‘참석자들이 난방장치가 필요 없고 웃옷을 벗고 예배를 드릴 정도로’ 더웠다고 했으며 어떤 사람은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까지 몸에 후끈 후끈한 열기가 남아 있더라고 했다. 그 시절 참석자들의 간증을 들어 본다.

`제단이 있어도 제단 안에 못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단 뒤쪽 3분의 1정도 2층을 올렸어요. 그런데 그곳에도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올라가니 그 무게를 지탱하기 어려웠던 모양이에요. 한번은 예배를 마친 후 2층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놀라 우왕좌왕하니 하나님께서 보시고 ‘괜찮아. 내가 있어.’ 외치시니 사람들이 안심하여 요동치 않아 부상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어요. 그 사고로 다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로 다 나았고. 그 중에서 유독 많이 다친 할머니 한 분이 계셨는데 그 분도 하나님께 안찰 받고 그 자리에서 바로 나았어요.` (강명수 승사. 85세. 기장신앙촌)

`1955년 12월, 원효로 구 제단 유리창의 유리가 꽁꽁 얼어붙을 정도의 몹시 추운 겨울 새벽예배 때, 하나님께서 나오시더니 ‘춥지?’하며 ‘쉭’ 하고 부시니까 유리창에 얼어붙었던 얼음이 다 녹아내리면서 전혀 춥지도 않고 향취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성녀. 신앙체험기)

`제가 처음 구 제단에 예배를 드리러 간 날이었습니다. 제단 안에서 예배를 한참 드리고 있는데, 위에서 물을 들어붓는 것처럼 소낙비가 막 쏟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 어머니에게 ‘엄마, 이 집은 지붕이 어떻게 생겼길래 비가 다 새요?’ 하고 물어보니, 어머니는 ‘어디 지붕이 새니? 옷을 만져봐라. 젖은 데가 있는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옷을 만져보니 정말 비에 하나도 젖지 않고 옷이 뽀송뽀송하였습니다.

조금 후에는 어디선가 좋은 냄새가 났습니다. 처음에는 백합꽃 향기 같더니 나중에는 사과 향 비슷한 맛있는 과일 향기가 나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저는 ‘엄마, 누가 화장을 진하게 하고 왔나봐요. 예배 시간에 화장품 냄새가 났어요. 그리고 예배 보는데 누가 사과를 먹었는지 사과 냄새도 나고….’ 하며 어머니에게 이야기 하니, 어머니와 옆에 있던 집사님들이 ‘야, 너 향취 맡았구나.’ 하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최정숙 집사. 62세. 죽성교회)

`잠시 후 박 장로님께서 나오셔서 예배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찬송을 부르고 있던 중, 갑자기 제 코에 여러 가지 냄새가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지나가기도 하고 성냥불을 그을 때 나는 냄새도 났다가 사라졌습니다. 또 이번에는 제단 안을 과일로 꽉 채워놓은 것같이 맛있는 과일 향이 진동하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온갖 종류의 꽃 향기로 바뀌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춥고 떨리던 몸이 어느 순간부터 후끈후끈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몸에 뜨거운 기운이 계속 감돌았습니다.` (승운표. 신앙체험기)

`하나님 댁에를 자주 갔는데, 한번은 원주 부흥회를 가셨다 오신 날로, 마당에는 환자들이 가득히 모여 하나님께서 돌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들어 오시자마자 인자하신 웃음으로 일일이 다 만져 주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36세셨다. 그 사랑은 이 세상 사랑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아니면 하실 수 없는 사랑이었다.

환자 중에는 세 살 난 애기가 두 다리를 불에 데었는데, 감염으로 곱이 끼어 차마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모님께서 ‘이 애기 먼저 봐주세요.’ 하시니, 아기의 두 다리를 꽉 쥐신 채 한 5분 기도하시고 일어나시며 ‘오늘 저녁부터는 잘 잘겁니다.’ 하시는데 두 손에는 고름이 가득했다. 사흘째 되는 날 그 애기를 다시 데리고 왔는데, 새살이 빨갛게 나오고 애기는 방글방글 웃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에 제일이란 사랑을 가진 부모도 병은 안아맡지 못하는 법이다. 폐병 앓는 환자들 안찰을 하시면 며칠간 기침을 하시며 가래를 뱉으시고, 귓병 앓는 애기들 안찰을 하시면 귀를 솜으로 막고 계시었다. 병을 당신 몸에 끌어안아 맡아 대신 앓으시며 병마 사살을 시키시니,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크셨을까! 이제 겨우 철이 들 듯 하니 뼈가 아프다.` (맹경순. 신앙체험기)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