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를 받으면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해”

박광자 권사/성남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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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체험기 “광자야! 박 장로님 계시는 교회 안 갈래?”

1955년 12월 제 나이 열여섯 살 때였습니다. 친구가 알려준 박 장로님 소식에 귀가 번쩍 뜨였습니다. 몇 달 전 박태선 장로님의 남산집회에 참석한 후로 어디서 집회하시는지 늘 궁금했는데 그분 교회가 있다는 말에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날 저녁 친구가 알려준 대로 원효로를 찾아가 보니 기차처럼 기다랗게 지어진 예배실이 있었고 사람이 차고 넘쳤습니다. 힘차게 말씀하시는 박 장로님을 뵈니 남산집회 때 일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남산공원에 천막을 쳐 놓은 집회장은 어찌나 넓은지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 장로님 계시는 단상이 저 멀리 아득한데 힘차게 외치시는 말씀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커다란 음성으로 “병자들은 일어나 뛰세요!” 하시자 제 옆의 앉은뱅이 아저씨가 꼬부라진 다리를 점점 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짝씩 걸어 보더니 힘이 생기는지 풀쩍풀쩍 뛰기까지 했습니다. 방금 전만 해도 바닥에 손을 짚고 엉덩이를 밀면서 다니던 아저씨가 기뻐 뛰며 “앉은뱅이였는데 일어섰습니다!” 하고 외치는 것이었습니다. 집회장 곳곳에 그런 사람이 많았습니다. 들것에 실려 와 꼼짝 못하던 중환자가 일어나고 벙어리 아가씨가 말문이 트여 더듬더듬 엄마를 부르는 모습은 어린 마음에도 감격스러웠습니다. 박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길 하나님 은혜가 내려서 불치병이 낫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은혜는 참 놀랍고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원효로를 처음 찾아간 날도 은혜를 체험하게 됐습니다.

제가 간 날은 원효로전도관의 ‘개관식’ 날이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박 장로님 댁으로 몰려들자 마당에 예배실을 마련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박 장로님께서 강대상을 쾅 치시더니 “이 은혜를 받으라!” 하고 외치셨습니다. 그 순간 주먹만 한 불덩어리가 가슴에 들어온 것처럼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불덩이가 한참 가슴에 머물다가 쑥 내려간 것처럼 사라지고 나니 온몸이 가뿐해지고 마음이 기뻐지는 것이었습니다.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되시며 나의 생명이 되신 주” 찬송을 부를 때 가슴에서 솟아나는 기쁨을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 후 어른들이 “오늘은 은혜가 많이 내렸어요.” “찬송할 때 불성신을 받았어요.” 하고 이야기하시는데, 저도 불성신을 받아 몸이 뜨겁고 마음이 한없이 기뻐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효로전도관 개관식 날 예배 도중
불성신을 받으니 가슴이 뜨겁다가
몸이 가뿐해지고 마음이 기뻐져서
솟아나는 기쁨을 다 표현할 수 없어

그때부터 원효로전도관에 다니며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었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차고 넘쳐 무엇을 가진들 이렇게 좋을까 싶었습니다. 예배 시간에 아주 좋은 향기가 진동하기도 했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향취 은혜라 하셨습니다. 새벽예배 때 들려주시는 설교 말씀이 어찌나 재미나는지 거기 푹 빠져서 해가 중천에 떠오르는 것을 보고야 시간이 지난 것을 알았습니다. 자유율법을 배우게 되면서 양심에 어긋나는 죄를 분별하게 됐는데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예배드린 후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당시는 버스 안내양이 차비를 받고 거슬러 줬는데 집에 와서 거스름돈을 많이 받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기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마나 괴로운지 한시라도 빨리 돌려주지 않으면 못 견딜 것 같았습니다. 그 안내양을 찾을 수가 없어 버스 회사까지 갔습니다.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돈을 돌려줬더니 “이것 때문에 오셨어요?” 하며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돌아올 때는 어찌나 좋은지 날아갈 것 같았고 죄지으면 괴롭다는 것을 그때 느끼게 됐습니다.

예배를 드린 후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했는데
거스름돈을 많이 받은 것을 알게 돼
기쁜 마음은 사라지고 너무나 괴로워서
빨리 버스 회사를 찾아가 돈을 돌려주고 와
돌려주고 나니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아
죄지으면 괴롭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느껴

날이 갈수록 원효로전도관에 사람이 몰려오면서 예배실 뒤쪽을 늘리고 2층도 올렸지만 주변 도로까지 사람이 차고 넘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만 명이 들어가는 큰 교회를 짓는다 하셨고 1956년 여름부터 마포 산언덕에 터를 닦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인이 거기 가서 공사를 도왔는데 찬송하며 일하는 시간이 어찌나 즐거운지 하루라도 빠지면 마음이 답답하고 클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의 매일 오셔서 안수해 주셨고 안수를 받고 나면 피곤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온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친구들과 ‘무슨 일을 하면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며 일을 찾아서 하게 됐습니다. 이듬해 이만제단이 완공된 후에는 성경 공부 모임이 생겨 매일 성경 공부를 했습니다. 하나님 가르쳐 주신 ‘동방의 한 사람’과 ‘감람나무’에 대한 구절을 집중적으로 배웠습니다. 그리고 여름방학에 두 명씩 팀을 이뤄 전도 나갈 때 저는 친구와 같이 서울 이문동에 갔습니다.

당시 이문동은 논밭만 있는 시골이었습니다. 저와 친구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하나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생명물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축복하셔서 은혜가 담긴 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때 한 아주머니가 오시더니 아기가 피똥을 싸고 많이 아픈데 생명물을 줄 수 있냐고 간곡히 부탁하셨습니다. 그래서 생명물을 컵에 담아 드리며 수저로 조금씩 떠서 아기 입에 넣어 주시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주머니가 달려와서는 아기가 깨끗이 나았다며 무척 기뻐하셨고, 아침상을 푸짐하게 차려 주셔서 맛있게 먹고 돌아왔습니다. 얼마 후 이만제단 언덕길에서 예배 가시는 어른들을 부축하며 도와드리는데 “학생! 여기 있네!” 하는 소리가 들려 쳐다보니 아이 업은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못 알아보고 누구신지 물었더니 “학생이 전도하러 왔었잖아? 그때 너무 고마워서 전도관 다니려고 물어물어 찾아왔어.” 하셨습니다. 활짝 웃는 아주머니를 보며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고 전도하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그때 알게 됐습니다.

그 후 1957년 11월 소사신앙촌이 시작되면서 건설대에 자원했습니다. 이만제단을 지을 때 기쁘게 일했던 것처럼 신앙촌을 짓는 일에 동참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보람되고 기쁜 일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건설대로 근무한 시간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하나님께서 현장에 오시면 멀리서부터 향취가 진동해서 뵙기 전에 향취를 먼저 맡고 오시는 것을 알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집에 온돌을 깔고 흙 반죽을 할 때 흙냄새는 나지 않고 아주 좋은 향취가 진동했습니다. 공기가 전부 향취로 변한 것처럼 진하게 맡아져서 하나님 오시길 기다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오시지 않았습니다. 물어보니 지방 순회를 가셨다고 하여 ‘멀리 계셔도 은혜를 보내 주시는구나.’ 하며 무척 감사했습니다. 그 후 결혼하고 서울에 살면서 남편의 반대로 제단에 나가지 못했는데, 그동안에도 신앙촌에서 은혜 받았던 일은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제단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큰아이의 병이 나은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작업을 하는데 향취가 진하게 맡아져
하나님 오시나 했는데 오시지 않아
알고보니 지방 순회 가셨다고 해서
멀리서도 은혜 보내 주심에 감사드려

장남인 큰아이는 두 살 때부터 경기를 자주 했습니다. 아이가 커갈수록 점점 심해져서 저녁만 되면 열이 오르고 경기를 했는데 그때마다 들쳐 업고 한의원에 달려갔습니다. 침을 맞으면 열이 내리고 경기가 멎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었습니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가 “예전에 전도관 다녔다고 했지? 거기 가면 애가 좋아지지 않을까?” 하셔서 저는 얼른 아이를 데리고 청량리에 있는 5중앙 전도관으로 갔습니다. 그동안 아픈 아이 때문에 마음이 고달프고 힘들었는데 제단 교인들과 관장님이 따뜻하게 맞아 주셔서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관에 간 그날부터 큰아이의 경기가 완전히 멎는 것이었습니다. 매일같이 눈을 하얗게 뒤집고 경기하는 아이를 보며 제대로 자랄 수 있을지 걱정이 컸는데 아이는 깨끗이 나아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 무슨 말로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1975년 무렵 성남으로 이사하면서 성남제단에 다니게 됐습니다. 성남제단에서 초창기처럼 열심을 내 보자고 다짐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저는 교인들의 장례예배에 많이 참석했는데 몇 달 전에 안성제단 교인의 장례예배를 드렸습니다. 병원 영안실에 모셔 놓은 고인을 보니 무릎을 세운 채로 뻣뻣하게 굳어 버려서 그 상태로는 관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예배드릴 때 교인들이 찬송을 부르고 관장님들은 생명물로 온몸을 닦아 드렸는데 수의를 입힌 고인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두 다리가 반듯하게 펴졌을 뿐 아니라 거무스름하던 얼굴이 뽀얗게 피고 창백했던 입술에는 연분홍 혈색이 감돌아 참 곱고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편안히 주무시는 것 같은 고인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은혜 속에서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은혜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노력했던 시절이 가장 많이 떠오릅니다. 은혜 받으면 기쁨과 즐거움이 넘쳐 내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체험으로 알게 되었고 영원한 하늘세계를 그리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허락해 주시는 은혜를 간직하며 맑게 살아서 아름다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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