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보면서 배우는 폭력교실

김인회 / 한양사이버대 객원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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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김인회 / 한양사이버대 객원교수

며칠 전 이모님의 구순 잔치 자리에서 나는 사촌 형제들의 부탁에 따라 이모님에 대한 옛날 기억을 말하게 되었다.

가장 오래 된 기억은 네 살 때의 일이다. 부모님이 잠깐 집을 비우고 어딜 가셨었던가보다. 나는 두 살짜리 누이동생과 외가에서 겸상으로 밥을 먹게 되었다. 그러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내가 밥주발 뚜껑을 누이동생의 얼굴에다 던져 그 아이가 울음을 터뜨리고 당연히 식구들의 관심이 우리 쪽으로 집중 되었다. 그 순간, 대청 상석 독상 앞에서 식사 중이시던 외할아버지가 벼락처럼 달려오시더니 나를 엎어 놓고 엉덩이를 여러 차례 때리시는 것이었다. 평소 나를 귀여워만 해 주시던 외할아버지가 그 순간에는 그리도 무서울 수가 없었다. 나는 아프기 보다는 겁에 질려 울면서 그만 오줌까지 싸고 말았다. 한 바탕 난리가 지나가고 난 뒤에 나를 씻겨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면서 “외할아버지 무섭지? 혼났구나. 어린 동생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하는 등의 말로 자상하게 타이르면서 나를 달래 주시던 얼굴이 어린 나의 기억 속에 각인 된 큰 이모에 대한 첫 인상이다.

구순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큰 이모의 모습에는 “어린 동생 때리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하면서 다짐하던 달덩이처럼 환한 처녀적 인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나는 느낀다. 내가 평생을 돌이켜 볼 때 나보다 어리거나 약한 이에게, 심지어 자식들에게조차도 폭력을 행사 한 적이 없이 살아 올 수 있었던 연유를 나는 이모님 구순 잔치 자리에서 깨닫게 되었다. 나의 폭력에 대한 외할아버지의 즉각적 징벌, 이모의 자상한 타이름과 다독거림 등이 네 살배기의 잠재의식과 인격 속에 강하게 각인 되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화와 환경이 칠십 여 년 전하고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한다손 치더라도 좋은 쪽으로가 아니라 나쁜 쪽으로만 변했다면 더 늦기 전에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노력이 어디선가부터는 시작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조짐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 환경이 야만사회로 변질된 지 오래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척 덮어버린 채 예까지 오고야 만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서 강자의 위치에 있는 어른들이 걸핏하면 폭력을 휘두르면서 마치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큰소리치는 광경을 보면서 어린 세대들의 인격은 자라왔다. 국회의원은 국회 안에서 갖가지 기발한 행태로 폭력을 휘두르고, 정의를 부르짖는 시민단체 어른들은 백주에 시내 한 복판에서 경찰서장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면서 민주주의를 내세우는가 하면, 걸핏하면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교육의 민주화니 학생 복지니 인권이니를 들먹이던 이런저런 교원단체들은 교실에서 왕따 당하고 매 맞다 못해 자살하기에 이르는 학생들이 생길 때까지, 얼추 30여만 명에 이른다는 피해학생 통계가 나올 이 시점까지도 이렇다 할 대응행동은커녕 반성문이나 대 국민사과문 한 줄도 내어놓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의 상황이다.

가정에서건 학교에서건 도덕적 권위가 사라진 민주주의는 야수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학생들에게 도덕적 권위와 교육자적 신뢰를 상실한 교사들은 방출되어 마땅하다. 사회의 어른들도 마찬가지이다. 금년이 선거의 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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