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자본주의
윤창현 / 서울 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여러 해 전 보았던 ‘한 소년’이라는 제목의 단막 드라마가 기억이 난다. 그리 큰 인기를 끌거나 인구에 회자되지는 못했지만 경제학을 공부하는 필자에게는 묘한 여운과 충격을 남긴 드라마였다. 주인공 소년은 판자촌에서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초등학생이다. 그런데 꿋꿋하게 살아가는 이 소년에게 치명적 단점이 하나 있다. 소유관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남의 것을 훔친다는 것이 나쁜 일임을 알면서도 이 소년은 좀 다르다. 소유에 대한 느낌이 별로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체육시간에 당번으로 교실을 지키면서 친구의 도시락을 먹어버리고는 별로 미안해하지 않는 식이다. 같이 좀 나누는 게 뭐 그리 나쁘냐는 것이다. 카메라의 시선은 이 소년의 행위에 대해 묘한 애정을 보낸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연이은 사건들이 터지면서 결국 소년은 학교에서 쫓겨난다. 그리고 엄청난 홍수가 판자촌을 덮친 어느 여름날 아버지와 누나는 집을 탈출하여 구조되는데 소년은 일부러 집에 머물면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 울부짖는 아버지의 모습에 소년의 모습이 겹치던 마지막 장면을 보면서 필자에게 문득 떠오른 것은 ‘차가운 자본주의’라는 단어였다. 소유관념이 부족한 한 소년이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도태되어 버리는 모습을 뭉클하게 담아낸 드라마였다.
주지하다시피 자본주의경제는 사유재산과 시장의 메커니즘에 기초해있다. ‘내 것’과 ‘남의 것’이 분명해야 하며(사유재산) ‘남의 것’이 필요하면 ‘내 것’을 팔아서 남의 것을 사들여야 한다(시장). “당신이 오늘 아침 빵과 우유를 먹은 것은 제빵업자와 낙농업자가 이기적이었기 때문이다.” 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가 지적한 부분이다.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고 돈을 벌고 싶어하기 때문에 잠을 줄여가면서 노력을 하여 우유나 빵을 생산하고 결국 시장을 통해 제품이 당신의 식탁에 까지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 것’과 ‘남의 것’이 구분이 안 되면 비극이 싹튼다. 사람들이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일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면 사람들은 노력을 게을리 한다. 대충대충 일을 한다. 이처럼 사유재산을 향한 경쟁은 무서우리만치 치열하고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쟁에서 도태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런데 도태당한 사람을 그냥 내버려두면 자본주의는 오래 못 간다. 불평이 쌓이고 불만의 에너지가 축적이 되면 사회는 불안해지고 지탱하기가 힘들다. 살만한 사회가 못되는 것이다. 경쟁은 인정하고 장려하되 경쟁에서 뒤쳐진 사람을 보호하는 이 두 가지 과제 사이의 외줄타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소유관념결핍증이 있는 소년도 사회의 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가 나서서 세금을 걷어 어려운 사람을 돕는 공적재분배정책은 물론 민간기부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기업도 나서고 개인도 나서야 한다. 특히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는 기업조직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가 쉽다. 기업은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꽃이며 특히 성공한 기업은 자본주의의 일등수혜자이다. 따라서 기업은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서 기부문화를 실천해야 한다. 기업은 악착같이 벌어야 살고 동시에 이를 잘 나누어야 산다. 키움과 나눔은 같이 가야 한다. 자본주의가 따뜻한 체온을 찾을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다같이 노력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