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와의 전쟁
제1,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인류는 제3차 세계대전이 인류 최후의 전쟁일 것으로 알았으나 3차 대전 대신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일찍이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의 전쟁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테러의 원조는 1970~80년대 마르크스주의와 모택동주의를 모태로 한 좌파 테러리스트들이었으나 전 세계에 테러의 공포가 인류의 일상으로 확산된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미국 본토를 공격한 9.11 테러 이후부터였다.
9.11 테러에서 몇 명의 자살자들은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하였다. 재래식 전쟁에서는 국력과 막강한 무력, 첨단무기들이 적국을 섬멸할 수 있었으나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적군이 보이지 않으므로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도 승전할 수가 없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전쟁에는 승리하고도 테러에는 고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욱이 테러가 종교와 연관돼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될 때 그 결과는 가공하게 되었다. ‘순교’라는 미끼로 죽음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공포를 마비시켜 무고한 다중을 살상케 하는 것을 보면 새삼 ‘종교’의 사악함에 놀랄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에 억압에 대한 투쟁이나 민족 해방의 수단으로 테러리즘을 정당화하고 테러범을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는 자유의 전사라고 맹신하면 사태는 더욱 복잡하게 된다.
‘순교자’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를 초강대국의 힘을 가지고도 효과적으로 대응할 방법이 없는 가운데 앞으로 테러범들이 생화학 무기로 무장한다면 인류의 재앙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생화학무기는 저렴한 비용에 대량 생산이 용이하고 보관하기도 간편해 흔히 ‘빈자(貧者)의 핵무기’로 불린다. 비교적 손쉽게 구할 수 있는데 반해 그 파괴력은 엄청나기 때문에 생화학 무기는 테러범들에게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예를 들어 소형 핵무기 제조에 1백만 달러가 소요된다고 하면, 생화학 무기의 제조비용은 1만 달러 정도면 충분하지만 파괴력은 핵무기에 버금간다. 또 10kg의 탄저균을 도시상공에서 투하하면 10일 이내에 최대 5백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병든 이념과 치명적인 무기 그리고 ‘순교자’라는 이름으로 무장한 테러조직이 온 세계를 향해 선포한 테러라는 이름의 ‘더러운 전쟁’으로 인류는 다시 한 번 보편적 가치의 상실과 정신적 황폐를 강요받게 되었다. 인류가 테러와의 전쟁을 극복하려면 상이한 문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노력과 함께 폭력에 대하여는 결코 굴하지 않는다는 단호함을 보이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