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 합창단의 추억

합창도 하고 현악기도 하던 멀티 합창단
발행일 발행호수 2344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1. 오순희 권사 2. 합창단이 남산에 있던 KBS 방송국에 가서 녹화를 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안경 쓴 여학생이 오순희 권사이다.

요즘도 절기때가 되면 음악순서에 어린이 합창단이 나와 아름다운 합창을 합니다. 그 모습을 볼 때면 어릴 적 모습이 많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와 언니를 따라 처음 간 한강집회. 단상에서부터 빛이 뻗어나오는 모습을 보고 그 후엔 불빛이 번쩍번쩍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집회에 갔었던 것이 정말 좋았는데 박태선장로님의 교회는 없었습니다. 다니던 장로교회는 더 이상 가기가 싫었습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른 후 원효로에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을 알고 전차를 타고 원효로에 찾아갔습니다. 너무나 재미있고 좋았습니다. 그해 연말에 구제단에서 어린이들이 무대를 꾸몄습니다. 온 세상 만민과 산과 들과 짐승들도 감람나무 나타나심을 감사한다는 노래극 같은 것을 했습니다. “음메~ 감람나무 나타나셨네~ 음메~”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10살인 제가 맡았던 것은 소였습니다.

이만제단에서는 어린이 성가대로 활동을 했습니다. 몇 장의 사진이 남은 가운데 1957년 12월에 ‘이만제단 어린이 성가대’란 글씨가 적힌 사진에는 하얀색 가운을 입고 두 손을 모으고 찍은 사진 속의 아이들 모습이 귀엽습니다.

그 후 5학년 때 온 가족이 소사신앙촌에 입촌하여 시온합창단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어른 성가대와 별도로 학생들로 이루어진 합창단으로 당시엔 에덴합창단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이 음악의 밤’을 마치고 찍은 사진도 남아있고, 방송국 녹음도 여러 차례하고 삼일당에서 공연도 자주 가졌고, 미군부대에도 초청받아 오산 미군기지와 을지로 6가에도 여러 번 갔습니다. 미군에서 차를 내줘 타고 갔었는데 그때 부페 식사를 처음 접하고 칠면조 고기도 많이 먹어봤습니다. 미군 부대에 가서는 영어로도 노래를 했습니다.

여기 사진은 남산에 있던 KBS방송국에 가서 녹음을 할 때의 사진*입니다. 전체 줄을 맞춰 뻣뻣하게 서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스러운 분위기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기도 하고 약간씩 움직이면서 노래를 했습니다. 그때 우리 합창단은 현악기를 하나씩 다 다루었습니다. 저는 바이올린을 했는데 수제품이었습니다. 당시 소사신앙촌엔 바이올린 공장도 있었습니다.

당시 우리 합창단은 조가 바뀌어도 즉각 화음을 맞출 정도였고, 노래만 들어도 계명으로 노래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은혜 속에 살며 대단한 실력들을 갖추었다고 생각됩니다. 듣는 이들이 갈채하고 음악에 파 묻히곤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오순희 권사 /전농교회

*신앙신보(1962년 8월 20일자 1면)에 당시 일이 “종교와 음악의 융화”라는 제하의 기사로 남아있다. 이때 47명의 단원이 녹음에 참여했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