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교회 구선임 사장
구선임 사장1991년 운전면허를 딴 이래로 그 다음날부터 운전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운전대 안 잡은 날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몰고 다니던 봉고차에 “신앙촌”과 내 휴대폰 번호를 눈에 잘 띄게 해서 다녔다. ‘별나게 그렇게 적고 다니냐?’는 사람도 있었지만, 어느날 휴대폰으로 온 주문전화. “어떻게 제 번호를 알았어요?” “봉고차에 적혀있길래 전화한 거예요.”
고객이 생기면 차로 다니며 배달을 했고, 혹시 주문 받지 않아도 물건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먼저 찾아가기도 했다. 그러면 “집이는 가게가 어디야?” “나는 이렇게 그냥 차로만 다녀…” 그 대답을 할 때면 그렇게 씁쓸할 수가 없었다. 지금은 “전주중앙상가 1층 92호에 있어요, 놀러와요.”
열어놓고 밖으로 도는 시간이 더 많지만 이곳에 신앙촌가게가 생겨서 너무나 좋다는 손님들 반응에 힘이 난다.
“신앙촌 물건은 좋은데, 신앙촌은 좀 그렇잖아.” “그렇잖아가 뭐요?” “아니 우리 목사님이 신앙촌 물건 팔아줘서 신앙촌 부자되면 안 된다고 그랬어.” “물건 좋은 것 보면 그것 만든 사람들 좋지 않겠어요?” “그건 그렇지, 물건 좋으면 그거 만든 사람도 좋겠지, 집이를 봐도 그렇고.”
그날 그 손님은 자기 교회 목사에게 준다고 이불을 사가지고 갔다. 속은 안 그런데 괜히 교회에서 엉뚱한 소리들을 듣고 딴소리들을 하는 걸 보면 속이 상한다. 그렇게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 제대로 알게 되면 어느 순간 신앙촌에 대한 오해들이 없어지는 때도 오겠지.
`가서 부지런히 일하라`
부드러운 그 음성
늘 귀에 쟁쟁해
처음 전도관에 나오며 은혜를 받은 것인 줄도 모르고 왠지 모르게 기뻤고, 내가 둥둥 떠다니는 듯 좋기만 했다.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던 시절, 나는 ‘박정희 대통령이 안 부럽다. 세상에 이렇게 좋은 데가 있구나’ 싶었다. 그때는 간장을 이고 다니면 팔았다. 어린 아들이 뭐만 생기면 머리에 이고 ‘간장 사세요~’를 흉내내 웃게 만들던 그때부터 지금까지 신앙촌 소비조합으로 살며 나는 참 감사하다.
등을 다독이시면서 부드럽고 인자한 음성으로 “가서 부지런히 일하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생생하다. 그 말씀 잊지 않고 항시 노력했다.
손에 든 건 비록 적어도 난 지금 부자다. 남들이 모르는 하나님을 알고 있으니 말이다. 남들도 어서 부자를 만들어야 할텐데. 올해 내 주변에 부자가 많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