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되어 달려가는 체육대회, 응원가가 큰 힘이 되길 바라

체육대회 응원가 그 뒷이야기
발행일 발행호수 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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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쳐라 무적 백군! 위아 더 원! 우승 향해 가자!”
“힘차게 나가자 청군! 우승을 향해! 청군은 챔피언”

천부교 체육대회에 참석해 본 사람이라면 자동으로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응원가들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한 번 들으면 뇌리에 꽂히고, 몇 번 부르면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 천부교 체육대회 응원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1998년부터 여러 차례 체육대회 관련 음악작업을 해왔던 최원영, 이경민 관장을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두 분 다 1998년부터 응원가 제작에 참여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때 당시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경민 관장(이하 이경민): ‘소비조합 체육대회’라는 이름으로 개최된 1998년 체육대회는 3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천부교 체육대회’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던 제가 백군 응원단장을 맡게 되었는데, 응원가도 준비해야 한다는 거예요. 응원단장도 처음인데 응원가까지 하려니 막막했어요. 그때 고려대학교에 다니는 동생이 본인 대학교 응원가를 들려줬는데, 힘찬 음악에 단순하면서도 귀에 꽂히는 가사가 인상 깊더라고요. ‘응원가는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하고 거기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이후에는 월드컵 송이나 아시안게임, 올림픽 응원가를 많이 참고했어요.

최원영 관장(이하 최원영): 98년도는 제가 여수교회 학생관장으로 첫 발령을 받은 해였어요. 지금의 오프닝 순서와 같은 마스 게임 음악을 만들기 위해 선배 관장님과 함께 서울 출장을 갔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빠르지 않아서 직접 발로 뛰어 알아보는 편이 더 좋았거든요. 신규였던 저는 선배 관장님과 함께 음악 들을 수 있는 곳을 여러군데 찾아 다녔어요. 그 때 국립중앙도서관에도 음악 듣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서 많은 음악을 들었고 음반가게에 가서도 적당한 음악이 있는지 찾아보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01년 체육대회부터는 좀더 조직적으로 응원팀이 구성되었는데요. 응원가에 참고하려고 야구장도 갔었어요. 그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그 뒤로는 인터넷으로 월드컵이나 올림픽 관련 응원가 자료를 많이 찾고 있습니다.

■ 체육대회 응원가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게 되나요?

최원영: 일단 응원가로 쓰일 곡을 찾고, 편집하고, 가사를 붙여요. 그다음에 스튜디오에 가서 편곡과 미디 작업을 의뢰합니다. 미디 작업은 악기 소리를 입히는 작업인데, 상세히 설명해 줘야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이 나오더라고요. 그렇게 음원이 완성되면 응원 담당 싱어로 선발된 팀 관장님들과 모여서 응원가 연습을 하고 마지막으로 스튜디오에 가서 녹음을 합니다.

이경민: 녹음할 때 소리가 너무 크거나 튀는 사람은 뒤로 보내더라고요. 사실 저랑 최원영 관장님이 주로 마이크 뒤로 밀려나는 주요인물이에요. 하하하. 그리고 녹음을 하다 보면 ‘한 번만 더 해보면 지금보다 좋은 소리가 날 것 같은데’ 하는 욕심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어떤 때는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계속 녹음하다가 늦은 시간까지 하게 된 적이 있었어요. 그래도 스튜디오 실장님이 열정적이신 분이어서 이해해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 봐도 참 감사해요.

2010년 헤드뱅 스튜디오에서 응원가를 부르고 있는 이경민 관장(다섯번째)과 최원영 관장(여섯번째)

■ 스튜디오는 어떻게 찾게 되었나요?

최원영: 인터넷으로 스튜디오를 정말 많이 알아봤는데 우리랑 맞는 곳이 잘 없더라고요. 처음에는 음원 작업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저희 스케일이 커서 못하겠다고 연락 온 곳도 있었어요. 그러다 알게 된 곳이 헤드뱅 스튜디오였습니다. 그때 당시 이분들도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고, 일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많은 분들이었어요. 헤드뱅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은 오라, 함께 그 꿈을 이루어보자’ 이런 내용의 문구가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저희는 체육대회 우승의 꿈을 이루러 헤드뱅을 찾아가게 된 거죠. 하하

이경민: 3년에 한 번 체육대회를 할 때마다 헤드뱅 스튜디오에 가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실장님 아들이 아주 어린 아기였는데, 이제는 군대를 제대해서 일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새삼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스튜디오에 갈 때마다 느낍니다. 실장님도 우스갯소리로 천부교 체육대회 몇 번만 더하면 환갑 넘어서 보겠다며 웃으시더라고요.

■ 많은 응원가 중에 기억에 남는 응원가가 있으신가요?

최원영: 2001년도 백군 응원가였던 ‘빅토리’라는 곡이 기억에 남아요. 아무래도 처음 만든 응원가라서 더욱 애정이 가기도 하고요. 가사에 담겨 있는 의미도 참 좋아요. 가사가 ‘우린 모든 걸 할 수 있어. 도전하기만 하면 돼. 목표를 향하여 우승을 향하여 있는 모든 힘을 다하여. 도전은 우리의 영원한 몫. 우리 힘을 펼치는 기회. 땀으로 우승을. 인내로 구원을. 끝까지 모든 힘을 다하여. To the victory’ 이런건데,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갔을 때 편곡하시는 분이 가사가 너무 좋다고 누가 썼는지 묻기도 했어요. 그때 백군 관장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쓴 거였는데, 그 뜨거운 열정과 간절한 마음이 담겼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천부교 체육대회의 도전 정신이 잘 담긴 곡이란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빅토리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나서 마음이 뭉클해져요.

이경민: 저는 두 곡이 기억에 남는데요. 하나는 2013년 제가 인천교회 학생관장일 때였어요. 샤워를 하는데 갑자기 영감이 떠오르는 거예요. 잘 알려진 동요에 ‘무적백군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왼쪽 청군 오른쪽 청군 모두 길을 비켜라.’ 라고 따라 부르기 쉬운 가사를 붙인 곡이었어요. 약간 잔망스럽다고 해야 하나. 유머 코드를 넣은 곡이었는데 쉽고 재밌다 보니 반응이 좋더라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2019년 백군 응원가였는데, 그때는 이탈리아 민요 칸초네 중 하나를 골라 곡을 만들어야 하는 룰이 있었어요. 칸초네 중 하나를 편곡해서 응원가를 만들었는데 박자가 느려서 걱정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응원가를 들으시곤 ‘얘! 이번 곡이 제일 좋은데?’ 하시더라고요. 박자가 약간 느리다 보니 어른들이 따라 하기 쉬워서 정말 좋아하셨어요. 그때 박자가 빠르고 강렬한 노래만 응원가가 될 수 있다는 고정관념이 깨졌어요. 또 알고 보니 그 노래가 예전에 덕소 체육대회 때 응원가로 썼던 곡이라 하더라고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어서 참 흥미로웠습니다.

■ 끝으로 응원가를 통해 배우거나 느낀 점이 있으실까요?

최원영: 2004년에는 마음에 드는 음악이 안 나와서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너무 안타깝고 간절하니까 기도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하루는 길을 걷는데 대학생으로 보이는 무리가 국토대장정을 하고 있더라고요. 당시 대학생들이 가장 도전해 보고 싶어 하는 활동 중 하나가 국토대장정이었거든요. 끊임없이 걸어서 다리가 아플 것이 뻔한데도 밝은 얼굴로 전진하는 학생들을 보니까 저도 힘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체육대회도 천부교인들이 새롭게 도전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선의의 경쟁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요. 많은 교인분들이 천부교 체육대회에 참가해 본인의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되셨으면 합니다.

이경민: 2016년 백군 전체가 신앙촌으로 리허설을 하러 온 적이 있었어요. 권사님들이 모든 힘을 다해 연습하고 음악당에 모이셨는데, 이분들에게 힘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전력질주’라는 응원가를 불렀거든요. 가사가 ‘달려왔었던 모든 날들 오늘 이 순간 펼쳐보자. 하나되어 전진하자 우리의 목표 향해. 애태우며 함께했던 수많은 시련딛고. 하늘 위로 외쳐라. 힘껏 뛰어 오르자 영광의 그날까지! 헤이! 헤이!’ 이렇게 신나는 곡이 있어요. 그걸 함께 부르는데 ‘애태우며 함께 했던’ 이 부분에서 어른들이 울컥 하시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였거든요. 그날은 노래를 하면서도 더더욱 신이 나고 즐거웠어요. 어른들의 뜨거운 마음이 느껴지면서 하나로 딱 뭉쳤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때의 응원가는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었고, 지금까지 그런 응원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정말 행복한 날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천부교 체육대회에 참여하신 모든 분이 그 기쁨과 열정, 행복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속 인터뷰

헤드뱅 스튜디오 김대현 실장

2001년도에 천부교 체육대회 팀을 만났으니 벌써 20년 정도 되었네요. 그때는 저희 스튜디오가 생긴지 얼마 안 됐던 시점이었어요. 부스도 크지 않았고, 화장실도 밖에 있었던 작은 스튜디오였죠. 그때 천부교 체육대회 응원가 작업 의뢰를 받았는데, 재미있을 것 같아서 수락했습니다.

작업 첫날, 백군팀이 오셔서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날 작업 시간이 계속 오버돼서 늦게까지 녹음했었어요. 그 뜨거운 열정으로 꼭 우승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천부교 응원가 퀄리티는 장난 아니죠. 처음에는 기타 소리도 최대한 빼달라 하시고, 클래식한 곡 위주로 가져오셨어요. 그런데 해가 갈수록 다양한 음악이 사용되면서 지금은 뮤지컬 삽입곡 느낌이 나는 작품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선율도 풍성해지고 음역대도 넓어졌어요. 그러다 보니 실제 악기로 녹음하는 리얼 녹음 분량도 많아졌고요. 녹음하시는 분들이 우스갯소리로 쉬운 곡은 예전에 다 쓰는 바람에 어려운 곡만 남았다고 하시더라고요.

헤드뱅 스튜디오의 김대현 실장

제 생각에는 계속 응원가를 만드시다 보니 수준이 높아지신 것 같아요. 이번에 함께 편곡 작업을 한 분도 이번 응원곡이 역대급으로 잘 나온 것 같다며 포트폴리오로 사용하겠다며 좋아하시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어린이 오프닝 곡이 참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천부교인들과 작업하면서 느낀 점은 교인분들이 모두 선하다는 사실이에요. 해가 가도 변함없이 좋으시더라고요. 또 신앙촌 간장도 알게 되었는데요. 저희 와이프가 신앙촌 간장을 먹어본 이후로는 그 간장 아니면 안 사더라고요. 맛있다고 처갓집에 신앙촌간장을 사서 돌리기도 할 정도예요.

이제 천부교 체육대회 팀을 보면 오랜 친구처럼 반가워요. 20대 때 만난 분들인데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듯한 기분이 들거든요.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응원가 함께 만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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