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같은 은혜를 내리는 자 감람나무’라는 성경을 증거하심

김영복 권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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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는 할머니 때부터 장로교를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일생 동안 교회에 열심히 다녔지만,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은 전혀 들어 보지 못한 말씀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예배당에만 나오면 죄 사함을 받는 줄 알았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예배당에 나와서도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여 오히려 죄의 보따리를 불리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수십 년 예배당에 다닌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신으로 죄를 사함 받아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아 ‘성신으로 죄를 씻어 주시옵소서. 흰 눈보다 더 희게 하시옵소서.’ 하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한강 집회를 마친 후 박 장로님께서는 인천과 대구, 부산 등 전국을 다니시며 집회를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원효로 3가 박 장로님 댁에 예배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에 가 보았습니다. 전도관이라고 불리는 그곳에는 예배실이 차고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그곳에 다니며 성경의 ‘감람나무’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호세아 14장 5절에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니리~ 그 아름다운 것이 감람나무와 같고~” 하는 구절을 풀어 주시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이슬같이 내리는 은혜를 보고 향기를 맡았기 때문에 박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시는 감람나무이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수십 년 예배당에 다닌 것 가지고는 안되고
성신으로 죄를 사함 받아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야만 구원`
그 말씀이 깊이 와닿아 ‘성신으로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기도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남산교회 목사의 며느리로 저와 어릴 적부터 친하게 지내는 20년 지기였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전도관은 이단이라며 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도 예전에 박 장로님 집회에 참석했고 너희 시아버지도 가셨잖니?” 하고 물었더니 목사는 한강 집회까지 참석하다가 그 후로 “박 장로가 교만해졌더라.” 하며 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할머니 때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어도 그런 은혜는 못 받아 봤어. 전도관에 계속 나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감람나무에 대해 이야기하며 “성경의 감람나무는 아주 특별한 존재인데 어떻게 박 장로님이 감람나무가 될 수 있어? 그게 교만해진 것 아니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에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가 감람나무라고 되어 있고, 박 장로님께서 그 은혜를 내리신다는 것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체험한 일인데 왜 박 장로님이 감람나무가 아니시냐고 반문했습니다. 친구는 저를 설득하려고 갖은 이야기를 하다가 여의치 않자 전도관에 계속 다니면 친구 사이를 끊겠다고 하며 돌아갔습니다. 저는 친구가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했으면서도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누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 구원이 달린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이 들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은혜를 받는 곳으로 가야겠다.’라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안찰 하시며 손을 살짝 얹으시는데
사람들은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발버둥을 치기도 해
내 차례가 되어 안찰을 받고 나니 온몸이 시원해지며 날아갈 듯한 느낌
은혜를 받고 죄를 씻는다는 것은 막연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체험해

날이 갈수록 원효로 전도관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이만제단을 짓게 되었으며 제가 사는 을지로에도 전도관이 세워졌습니다. 전도관에 계속 다니던 어느 날 한번은 안찰을 받을 기회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안찰을 받았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배를 안찰하실 때 손을 가볍게 얹으시며 그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지적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눈과 배에 손을 살짝 얹으실 뿐인데도 어떤 사람은 아프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은 발버둥을 치기도 했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어 안찰을 받을 때 저는 배가 몹시 아파서 저도 모르게 팔다리를 오므렸습니다. 그런데 안찰을 받고 일어서자 온몸이 아주 시원하며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안찰을 통해 성신을 부어 주신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은혜를 받고 죄를 씻는 것이 막연한 것이 아니라 분명히 체험하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후 가게에서 팔고 있는 ‘술’이 마음에 걸려
꿈중에서도 보일 정도로 양심에 찔려서 가게를 접기로 결정
주위에서는 걱정했지만 가게를 처분하니 마음은 개운하고 평안

당시 저는 을지로 2가에서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먹는 것이라면 없는 것 없이 다양하게 판매했는데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이라 장사가 잘되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은 후로 가게에서 파는 술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어떻게 술을 팔 수 있나.’ 하며 양심에 거리껴서 꿈 중에도 가게 선반에 놓인 술병이 보이며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고심을 거듭하던 저는 1962년 즈음 가게를 접기로 단안을 내렸습니다. 그 전에 남편이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이웃들은 “아이를 다섯이나 데리고 어떻게 하려고 가게를 접어요?” 하며 걱정을 했습니다. 그러나 어렵더라도 양심에 거리끼는 일은 안 해야겠다고 결심한 저는 가게를 처분하고 나니 마음이 개운하고 편안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판매가 잘 안 되어 고전했으나 시간이 갈수록 신앙촌 제품을 반기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물건이 가득 들어 있는 보따리를 가지고 고객들 집에 가면 앞 다투어 물건을 사는 바람에 두 집만 지나도 보따리가 훌쩍 줄어들었고, 작아진 보따리를 들고 세 번째 집에 가면 집주인이 “보따리 크게 해서 오세요.”라고 웃으며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이 신앙촌 물건을 그렇게 좋아하니 저는 배운 지식이 없고 말을 할 줄 몰라도 판매를 잘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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