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미증유 사태는 오는가
김영수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북한 내부가 심상치 않다. 최근엔 김일성 시대가 더 좋았다는 푸념과 함께 김정일에 대해 존칭을 붙이지 않은 불경도 잦다. 한마디로 공화국 태양인 김정일 권위가 땅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외부 정보도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남조선 관심도 부쩍 늘어 쿠쿠전자밥솥은 물론 설화수, 궁 등 여성 고급 화장품이 당간부 부인들에게 인기다. 아이리스, 선덕여왕 다음에 나온 드라마를 찾는다는 소리도 들린다. 갓 군대간 신병들 탈영이 잦아 군관들이 잡으러 다니느라 난리다. 예전 북한 같지 않은 현상들이 속출하고 있다.
작년 11월 말 시행한 화폐교환조치 이후 북한체제의 궤도이탈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시장에 의존하면서 생존하던 일반주민과 장사꾼들은 청천벽력의 날벼락을 맞았다. 장롱 속 돈은 하루만에 휴지조각이 됐고, 시장폐쇄로 인해 먹고살 길마저 끊겨버렸다. 두 달치 생활비와 식량 배급으로 형성됐던 초기 지지와 환영분위기는 이젠 찾아보기 어렵다. 뭘먹고 살아가야 될지 막막한 착한 북한주민들은 돌거나 자살을 택했다.
급기야는 화폐교환조치를 주도했던 박남기 당 계획재정부장이 갖은 비난을 떠안은 채 숙청 후 총살됐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90년대 후반 평양에서 공개 총살된 서관히 농업담당비서와 같은 꼴이다. 수령과 영도자는 어떤 경우도 오류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북한식 통치논리에 따라 애꿎은 충복들만 목이 날아가고 있다.
웬만한 소식은 사나흘이면 북한 전역에 퍼진다. 지역의 물가를 이용해 이문을 남기는 북한장사 수법이 북한전체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든 결과다. 휴대전화와 위성전화의 위력도 대단하다. 북한 내부소식이 속속 전달되면서 가난의 공화국, 어둠의 공화국 소식이 이젠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초유의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김일성 탄생 만100년이 되는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활짝 여는 해로 설정, 북한 당국은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북한 상황으로 봐서는 2012년이 되기도 전에 북한에 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정일 수명도 3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예측과 함께 북한 내부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주민들이 당과 국가를 신뢰하지 않는다. 통제와 단속으로 억눌러 정통성을 유지하기엔 주민들 의식이 예전 같지 않다. 속도와 전투를 앞세운 위로부터의 동원으로 통치기반을 강화하기엔 체제 비효율성과 비자발성이 너무 높다. 더욱이 정부 정책을 믿지 않고 나름대로 살아갈 정도로 주민들이 너무 똑똑해졌다.
당의 명령과 국가의 계획이 먹혀들지 않는 체제는 오래 못 간다. 그런 현상이 올 초부터 부쩍 늘고 있다. 기대했던 중국 지원도 시원찮다. 압박하고 으름장 놓으면 식량과 비료를 펑펑 갖다주던 남조선도 사라진지 오래다. 그래서 북한에 투자한 부동산까지 빼앗겠다는 초강경수를 꺼내들었다.
급박한 북한내부 사정으로 올 한 해 남북관계는 심하게 ‘출렁출렁’일 것 같다. 궤도이탈 속도를 보면 미증유의 ‘북한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꽤 높다. ‘예기치 않은 사건’이 권위와 신뢰를 잃은 통치자 운명을 가른 예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쓰러질 상태의 고목이 남쪽으로 쓰러지는 경우에 대비하는 새로운 전략과 대북정책이 필요한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