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나쁜 버릇 길들이기

류길재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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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길재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북한의 비핵화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만 하면 쌀이나 비료 몇 십만 톤이 문제가 아니라,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불로 올려줄 정도의 막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그럴 듯 해 보인다. 그러니 북한이 왜 이렇게 기가 막힌 제안을 수용하지 않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낌새도 비치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첫 번째 이유가 이른바 군사강국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라면, 두 번째 이유는 미국과의 관계를 대등하게 풀겠다는 것이다. 즉 미북 수교와 평화협정, 그리고 미국의 대북지원을 얻겠다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핵카드를 한국 정부에게 돈 받고 파는 모양새를 취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국제제재의 지속으로 경제난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북한이 언제까지 이런 셈법을 고집할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김정일이 생존해 있는 한 쉽게 변화할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미국하고만 핵문제나 평화문제를 논하고 한국과는 경제협력문제만 논하자는 입장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미국과 얘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남북한 사이에도 이같은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전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올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남북관계는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셈일 터이다. 그러나 역시 북한의 수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남한 무시 행태를 어떻게 교정할 수 있을까. 핵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 정부가 갖고 있는 그랜드 바겐 구상을 수용하게 하고,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 당사자가 포괄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틀을 갖출 수 있을까.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다. 얼핏 보면 이유가 간단하다. 북한의 고집 때문이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선 북한으로서는 남한과의 논의구도 자체가, 그것도 남한의 우월한 경제력을 담보로 하는 논의구도가 자칫 북한이 가장 우려하는 ‘흡수통일’의 조건을 만드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둘째로는 지금까지 ‘미제의 식민지’이자 ‘괴뢰’라고 선전해 왔던 남한과 대등하게 군사문제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북한 당국으로 하여금 자가당착에 빠지게 할 수 있다. 요컨대 북한으로서는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논의구도인 것이다.

북한이 미국만 쳐다보는 이유도 이같은 이유의 다른 면이라고 할 수 있다. ‘괴뢰’가 아닌 종주국과 대등하게 문제를 논의해야 북한 정권의 안정성이 보장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북한을 설득하는 노력이다. 설득은 지난 2년 동안 정부가 견지한 원칙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 접촉과 대화가 병행돼야 가능하다. 만나야 설득을 하든, 압력을 가하든 할 수 있다. 이제 이명박 정부의 임기도 중반을 넘어섰다. 수많은 국정과제가 추진 중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중장기적인 과제다. 한 정부의 임기 내 해결할 수 없으며,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관계는 계속된다. 중장기적인 안목과 미래비전으로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성심을 다해 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3차 정상회담이 아닌 새로운 정상회담을 한다는 기분으로, 즉 남북관계를 개척한다는 자세로 이명박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야 한다. 지금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떤 형식으로 만날까가 아니라 만남 자체를 통한 새로운 대화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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