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권의 희생양들

강철환 / 북한전략센터대표
발행일 발행호수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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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강철환 / 북한전략센터대표

사회주의 종주국인 구소련이 변화하고 이웃 혈맹국가인 중국도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중국식 사회주의인 개혁개방을 추진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압력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우리식 사회주의’라는 것을 내놓고 변화를 거부하고 있는데 그것은 김일성-김정일에 이어 김정은에게까지 권력이 이어지는 왕조 국가를 지탱하겠다는 것이다.

김일성을 태양으로 묘사하고 김일성 민족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우상숭배는 극단화되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절대 권력은 같은 공산주의자들마저도 잔인하게 처단해야 했고 김정일 시대에는 노동당 간부들마저도 공개처형을 당하게 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함께 항일운동을 했지만 김일성의 우상숭배를 거부한 많은 지식인들이 처형당했다. 박금철 부주석을 비롯한 많은 고위간부들이 수정주의자로 몰려 수용소에 끌려갔고 최창익, 김두봉 등 헤아릴 수 없는 엘리트들도 김일성에게 처단 당했다. 남한에서 올라간 수십만의 남노당원들도 김일성과의 노선투쟁을 벌이다가 끝내 전멸하고 말았다.

남노당의 수장 박헌영은 미제의 고용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고 2인자였던 박갑동 선생은 수용소에 끌려갔다가 가까스로 풀려난 후 망명해 지금까지 반북(反北) 활동을 해오고 있다.
중국 등 동구권 국가들이 개혁개방으로 급격하게 변화된 후 체제 종말의 위기에 처한 북한에서 수백만 인민이 아사(餓死)하는 대참극이 벌어지게 되자 이때부터 김정일은 자신의 실정으로 체제가 붕괴되는 것을 막고 자신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최고위층 노동당 간부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을 서슴치 않고 있다.

그 대표적 희생양은 1997년에 평양시 낙랑거리에서 공개 처형된 서관히 전 노동당 농업담당비서다. 당시 북한에서는 수백만이 아사하면서 그 책임이 김정일에게 쏠리자 민심을 돌려세우기 위한 희생물로 서관히가 지목됐다. 서관히의 죽음은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8년 8월에 함흥에서 자살한 김달현 전 국가계획위원장 겸 내각부총리는 흥남비료공장을 재건하기 위해 당 자금 1억 달러를 내줄 것을 김정일에게 제의했다가 제거대상으로 몰렸다. 김달현은 북한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비료공장만은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공장 현대화를 위한 설비투자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김정일에게 요구했다가 끝내 자살로 내몰리고 말았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무덤을 세우는데 8억 7천만 달러를 탕진하면서도 인민을 위한 비료공장에는 한 푼의 돈도 투자하지 않았다.

2008년 초에는 대남공작 부서인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최승철이 요덕수용소에 끌려가 생사여부가 불투명해졌다. 그 이유는 남한에서 친북 정권대신 이명박 정부 출범에 따른 김정일의 진노때문이었다.

북한은 최근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물어 노동당 재정부장 박남기를 공개처형 했다고 한다. 사실 화폐개혁은 김정일의 직접 지시 하에 인민들의 재산을 사실상 강탈한 것인데 북한 전체인민들의 분노가 심상치 않게 되자 결국 김영일 내각 총리가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평양시 인민반장들을 모아놓고 사과하는 사태로 이어졌다. 잘못은 김정일이 했는데 아랫사람들이 또다시 김정일의 희생양이 된 것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이런 수법이 언제까지 통할지는 미지수다. 이제 북한주민들은 희생양들이 아닌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하는데 대한 인식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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