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관장 편 ② “성신의 열매 주렁주렁 휘도록 맺을래요”
“성신의 열매 주렁주렁 휘도록 맺을래요”노구산, 오만제단, 소사신앙촌. 이 단어들은 나에게 조금 특별하다.
노구산-이슬을 구하는 산. 1958년 6월 30일부터 7월 5일까지 열렸던 노구산 집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었다. 그리고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배어 있는 오만제단과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이 소사신앙촌이기 때문이다.
새벽에 오만제단을 향하여 차를 몰고 올라간다. 차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어느덧 녹음이 우거진 초여름 숲의 향기를 가슴 깊이 심호흡 해 본다. 상쾌하다.
내가 이 곳에서 다시 새벽예배를 드리게 될 것을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다. 올해 1월 소사신앙촌 학생관장으로 발령받아 온 첫날 오만제단 대예배실에 들어섰다.
하나님 존영을 향해 앞자리로 한 발 한 발 걸어가는데 참으로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노구산 정상에 세워진 오만제단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던 현장,
은혜의 창파를 이루었던 이곳에서
많은 학생들이 하나님을 깨닫고
구원을 소망삼아 힘껏 달리기를
어렸을 때 오만제단 대예배실은 학교 운동장보다 더 넓게 느껴졌었다. 또 한 학년이 세 반으로 나뉠 만큼 아이들이 많았다. 지금처럼 푸짐한 간식이 없었던 그때, 우리 반 반사 선생님은 분반 공부를 마치면 항상 사탕을 주셔서 다른 반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나눠 먹기도 했었다.
여름방학이 되면 3일간의 여름신앙학교가 열려서 오전, 오후 두 번을 오만제단에 갔었다. 신앙촌 곳곳의 전봇대 위 확성기에서는 여름신앙학교 참가를 알리는 광고가 흘러나왔다. 반사 선생님들은 북을 치며 마을 곳곳을 돌고 아이들을 모아서 오만제단까지 인솔하였다. 그림그리기, 글짓기, 찬송가 부르기, 성경 암송 대회, 반별 대형 모자이크 만들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즐거웠다. 다음 주 일요일, 예배실 벽면에 전시된 시상 작품 중에서 내 작품을 찾을 때는 두근두근 설레였고 또 시상이 되었을 때는 너무나 기뻤었다.
추운 겨울에 예배를 마친 후, 손과 발이 꽁꽁 얼어 울면서 산길을 걸어 내려 갔었다. 예배를 드리러 올라오시는 어른 분들이 많이 춥겠다며 빨리 집에 가라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었다. 아주 오래된 기억들을 하나 둘씩 꺼내어 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20여 년이 지나 돌아온 신앙촌은 재개발이 되어 현대적인 아파트가 들어서고 전혀 다른 새로운 도시의 모습으로 변화 되어 있었다. 그리고 기성교회 건물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하나님의 발길이 머물렀던 이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았던 이곳에… 내 눈앞에 보여지는 낯선 풍경들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구원을 향한 첫 번째 울타리로 만들어 주신 소사신앙촌. 하나님과 함께 찬송을 부르며 은혜 받아 감사와 영광을 돌리던 이곳에 지금 내가 있다. 새벽예배시간.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노구산 정상에 세워진 오만제단에서 다같이 소리 내어 간절히 기도문을 할 때에는 이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어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한없는 은혜를 허락해 주시기를 간절히 구해본다.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올라가 나타나는 교회. 처음 온 학생들에게는 분명 낯설고 신기한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시던 현장, 은혜의 창파를 이루었던 이곳에 한번이라도 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임을 알게 해 주고 싶다.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은혜를 받아 하나님을 깨닫고 구원을 소망삼아 힘껏 달릴 수 있기를 바라본다. 유년 시절 오만제단 예배실 가득 힘찬 박수와 함께 울려 퍼지던 “나는나는 감람나무 굵은 가지가 될래요. 성신의 열매 주렁주렁 휘도록 맺을래요”라는 어린이 찬송가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하다.
/소사교회 학생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