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날만 기다리던 중환자가 생명물의 권능으로 완치되다

조남일 관장(4) / 진주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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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단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 봤더니 임산부처럼 배가 부른 젊은 부인이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얼굴에 병색이 짙은 그분은 “전도관에 나오면 죽어서도 좋은 곳에 간다고 해서 왔어요.”라고 했습니다. 그분을 제단으로 데리고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엄청나게 부른 배를 보니 꼭 쌍둥이를 임신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해산할 날이 가까운가 보다고 물었더니 임신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속병이 있어서 배가 이렇게 부른 것이라며 병원에서 오랫동안 치료를 받다가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여 퇴원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제 산다는 생각은 없어요. 다만 전도관에 다니면 죽어서도 좋은 곳에 간다고 하기에 찾아왔어요.”라고 힘없이 이야기했습니다. 그 몸을 가지고 제단에 나올 수 있겠냐고 했더니 마지막 힘을 끌어내서라도 죽을 때까지 매일 새벽예배에 나오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예배에 참석한 그분은 배가 너무 불러서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여 양손을 바닥에 짚고 앉았는데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러웠습니다. 그분이 석 달 동안 빠짐없이 새벽예배에 나온 후부터 생명물로 찜질을 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새벽예배를 마친 후에 저는 생명물을 적신 수건으로 배를 찜질해 주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 영혼을 보살펴 주시고 육신의 병을 낫게 하시옵소서.’ 하고 애타게 기도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임산부처럼 배 불러 병원서도 포기한 환자가 전도관 찾아와
매일 새벽예배 드리고 생명물 적신 수건으로 찜질한 지
보름만에 배 꺼지고 건강찾아

그렇게 매일 찜질을 한 지 보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그날 새벽예배에 나온 그분을 보고 제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삭처럼 불러 있던 배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서 여느 사람처럼 똑바로 앉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제 제단에서 생명물로 찜질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방귀가 끊임없이 나오더라고 했습니다. 길가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봐서 너무 창피했지만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빵빵하게 불러 있던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는 것처럼 쉼 없이 방귀가 나오고 나자 그렇게 불렀던 배가 푹 꺼졌다면서, 자신도 믿을 수가 없어서 배를 내려다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후로 그분이 완전히 건강을 되찾게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하루아침에 달라진 모습을 보고 우리 교인들과 동네 사람들까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병마에서 놓여나 건강해진 그분은 제단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며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죽을 날만을 기다리던 환자가 깨끗이 낫게 되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제단을 찾아왔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인 1971년에는 저희 어머님이 운명하시게 되었습니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어머니는 저의 권유로 제단에 나오기 시작하셨는데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전도를 하려고 애를 쓰셨습니다. 본인이 전도한 학생이 덕소신앙촌에 입주하게 되자 신앙생활을 잘하라고 격려하시며 친자식처럼 돌보기도 하셨습니다. 한번은 어머님이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 주위 환자들과 대화하시는 것을 들었더니 “한국 땅에 의인이 나타나셨는데 한국 사람들이 모르고 있어요.” 하며 동방의 의인에 대한 성경 구절을 조곤조곤 일러 주셨습니다.

어머니가 숨을 거두신 후 생명물로 정성껏 씻겨 드렸더니 환하게 핀 얼굴에 살짝 미소까지 머금어 정말 곱고 예쁜 모습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형제들과 친척들은 무척 놀라워했습니다. 그리고 여동생이 하는 말이, 자신의 시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천주교식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그 절차가 경건하고 엄숙해 보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온몸이 통나무처럼 뻣뻣하게 굳어 있고 인상을 쓴 험상궂은 얼굴이라 두 번 다시 보기 싫을 정도로 무서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도관에서는 장례예배 때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것이 경건치 못하게 보여 못마땅했는데 어머니가 웃으면서 가시는 것을 보니 전도관에 무엇이 있기는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교인들과 인간의 죄를 안아
맡아 주시는 하나님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하며 많이 운 날
하나님께서 “오늘 많이 울었지?”
우리 마음 다 아시는 것 느껴

그 후 저는 1976년에 서울 20중앙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5년 정도 지내는 동안 가끔씩 목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픈 증상이 있었는데 나중에는 목에 돌덩이를 매단 것처럼 무겁게 느껴지고 두통이 더욱 심해지며 배까지 점점 불러 왔습니다. 그 후 1981년에 부산 4중앙으로 발령을 받아 처음으로 예배를 인도하던 날이었습니다. 폐회 찬송을 부르는데 목에 있었던 돌덩이가 배로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더니 배를 칼로 찢는 것처럼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겨우겨우 방으로 들어갔을 때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 보니 하나님께서 하신 전화였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고 말씀드리니 “그래, 알고 있어.” 하시며 수화기를 아픈 부분에 대라고 하신 후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한참 동안 축복을 받고 나자 언제 그렇게 배가 아팠던가 싶을 정도로 통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축복을 받은 뒤로 목이 답답하고 머리가 아프던 증상까지 깨끗이 사라져서 그 후로 아픈 적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예배 시간에 설교를 하면서 교인들과 함께 많이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시기 위해 인간의 죄를 안아맡아 씻어 주시는 희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전도관을 세우시고 신앙촌을 건설하시며 이 땅에서 펼치신 모든 일들이 오직 구원을 주시기 위한 한없는 사랑과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날 교인들도 많이 울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방에 들어오니 하나님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온화하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오늘 예배 시간에 많이 울었지?”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으로 기뻐하실 수 있는 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조남일 관장님 신앙체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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