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짓지 말고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 구원을 얻으라

유옥례 권사(3) / 소사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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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제가 어머니 집에 들어섰을 때 어머니는 놀라움과 반가움으로 저를 끌어안으셨습니다. 그리고 상처와 진물 투성이인 제 피부를 보시고는 “얘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하며 깜짝 놀라셨습니다. 제가 피부병을 앓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저에게 물 한 컵을 주시며 “이 물은 박 장로님께서 축복하신 생명물이야. 이제부터 매일 한 컵씩 생명물을 마셔 보자.” 하셨습니다. 그리고 생명물을 제 몸에 발라 주셨는데 참기 어려웠던 가려움이 생명물을 바른 뒤로 차츰 가라앉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새벽예배를 드리기 위해 어머니를 따라 소사신앙촌 노구산에 있는 오만제단으로 갔습니다.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며 그동안 제단과 멀어졌던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아픈 몸을 낫게 해 달라고 소사신앙촌에 온 것이 참으로 죄송하고 송구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던 어느 순간 상큼하고 달콤한 향기가 진하게 맡아지는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에는 참기름처럼 고소한 향기가 진동을 하는데 ‘아! 향취 은혜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 저 같은 죄인에게도 이렇게 은혜를 주십니까!’ 하면서 많이 흐느껴 울었습니다.

그동안 제단과 멀리 살다가
아픈 몸을 낫게 해달라고 찾아온 교회
참으로 죄송한 마음으로 기도드리던 중
향취의 은혜가 임해 ‘저 같은 죄인에게도 …’

소사신앙촌에 온 이후로 저는 매일 생명물을 한 컵씩 마시고 몸에 바르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상처에서 흐르던 진물이 꾸덕꾸덕하게 마르면서 눈에 띄게 차도가 생겼으며 상처가 차츰차츰 아물면서 얼마 후에는 깨끗이 낫게 되었습니다. 문둥병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했던 피부병이 씻은 듯이 사라지니 그 감사함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소사신앙촌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감사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듬해인 1966년부터 저는 신앙촌 제품을 판매하는 소비조합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모시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을 해야 했는데 소비조합 분들이 활기차게 사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소비조합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장사를 나간 첫날 저는 신앙촌 주변의 동네에 가서 집집마다 다니며 맛있는 신앙촌 간장을 드셔 보시라고 했습니다. 간장을 맛본 사람들이 정말 맛있다며 너도나도 사는 바람에 몇 시간도 안 되어 간장을 다 판매할 수 있었습니다. 난생처음 장사를 해 보는 것이었지만 가는 데마다 신앙촌 제품을 반가워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금세 단골 고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소비조합 하시는 분들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아서
신앙촌 소비조합을 시작 양질의 제품은 날개 돋친 듯 팔려
경제적 여유 생겨 큰 집으로 이사도

그러던 어느 날, 덕소신앙촌에 갔을 때 하나님께서 소비조합들에게 안찰을 해 주셔서 저는 처음으로 안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차례대로 안찰을 받았는데, 어떤 사람이 안찰을 받을 때 몸부림을 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눈에 살짝 손을 대고 계실 뿐이었지만 그 사람은 아파서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저렇게 아프면 어쩌나.’ 하고 더럭 겁이 났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배에 손을 대시자마자 몹시 아파서 겨우겨우 통증을 참으며 ‘죄를 사해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드렸습니다. 안찰을 받고 나니 상큼한 과일 향기 같은 향취가 진하게 맡아지며 마음이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처음으로 안찰을 받던 날 보니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눈에 살짝 손을 대실 뿐인었는데 그 사람을 아프다고 몸부림을 쳐
나도 몹시 아팠지만 안찰을 받고 나서 진한 향취를 맡고 마음은 기뻐

저는 처음 소비조합을 할 때 가진 자본이 없어서 친구에게 돈을 빌려서 시작했는데, 제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판매가 잘되어 빌린 돈을 금방 갚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간장뿐 아니라 이불, 양재 등 품질 좋은 신앙촌 제품이 날개 돋친 듯이 팔리면서 차츰차츰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으며, 나중에는 좀 더 큰 집으로 옮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비조합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중에 어떤 사람들은 “신앙촌에 들어가면 다 가난하게 산대요.” 하며 얼토당토않은 말을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촌에 가 봤느냐고 물으면 자신은 가 보지 않았지만 그런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터무니없는 비방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보세요, 직접 보지도 않고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저는 빈손으로 신앙촌에 들어갔지만 이렇게 소비조합을 해서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고 이전보다 더 큰 집도 장만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말씀 하시지 마세요.” 그렇게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나면 사람들이 “신앙촌 아줌마 참 당당하네.” 하며 다음부터는 함부로 비방하지 않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후 1982년경 어머님(故 김고산 집사)이 89세를 일기로 운명하시게 되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보름 정도 천식을 앓으시다가 밤에 주무시는 동안 조용히 숨을 거두신 것이었습니다. 높은 연세에도 비교적 건강하셨던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니 저는 적잖이 놀라고 당황스러웠지만 애써 마음을 진정하며 ‘내일 장례반에 연락하고 정성껏 예배를 드려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생전에 피부가 검은 편이셨던 어머니는
생명물로 씻긴 후 몰라볼 정도로 뽀얗고 맑게 피어
생전보다 더 곱고 예뻐져 편안한 고인의 모습에 큰 위로를 받아

다음 날 저희 집에서 입관예배를 드리며 장례반 권사님들이 생명물로 시신을 씻기셨습니다. 어머니는 원래 피부가 검은 편이셨는데 생명물로 씻긴 후에 보니 몰라볼 정도로 피부가 뽀얗고 맑게 핀 것이었습니다. 환한 얼굴이 생전보다 훨씬 곱고 예뻐서 ‘누가 아흔이 가까운 할머니라고 하겠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으며, 입관예배에 참석한 교인 분들도 “어머니가 잘 피셨네요.” 하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깨끗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면서 이별의 순간에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귀한 은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렸습니다.

1990년 2월 7일 하나님께서 낙원으로 가신 후, 저는 하나님 존영을 바라보며 지나온 시간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초창기부터 “죄짓지 말고 성결한 자격을 갖추어 구원을 얻으라.” 하시던 말씀과 많은 사람들을 안찰하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구원을 주시려고 가르칠 것 다 가르치시고 은혜 주실 것 다 주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낙원에 가신 후에도 육신으로 계실 때와 변함없이 생명물로 시신이 아름답게 피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은혜로 함께해 주심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사랑에 깊이 감사드리게 되었습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매일 새벽예배 때 269장 찬송을 부르며 하나님의 음성을 생각해 봅니다. “꼭 지켜 그 세계 같이 가자.” 하시던 하나님. 그 귀한 언약을 꼭 지켜서 성결하고 아름다운 자격을 갖추어 그날에 구원을 얻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이 모든 은혜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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