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붓는 것같은 은혜를 받으니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아

유옥례 권사(2) / 소사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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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집회 중 하루는 찬송을 부를 때 ‘내 죄를 사하소서.’ 하고 기도드리는데 저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울면서 찬송할 때 어느 순간 물 한 동이를 머리 위에서 “쏴-아-” 하고 쏟아붓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손끝 발끝까지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르르하면서 가슴 속이 말할 수 없이 상쾌하고 시원해지며 마음에서 자꾸만 기쁨과 즐거움이 샘솟아 났습니다. 저는 ‘아! 은혜를 주시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집회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했더니 제가 ‘생수 체험’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집회 기간 내내 마음이 참으로 기쁘고 즐거워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찬송을 하는데 어느 순간
물 한 동이를 머리 위에서 쏟아 붓는 것처럼 시원한 느낌이 들고
마음에선 자꾸만 기쁨과 즐거움이 솟아

집회가 모두 끝난 후 박태선 장로님께서는 기차를 타시기 위해 목포역으로 향하셨습니다. 집회에 참석했던 많은 사람들이 목포역까지 따라가서 배웅했는데, 박 장로님께서는 서서히 출발하는 기차에서 저희를 향해 손수건을 흔드시며 잘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또 언제 뵐 수 있을까……’ 하고 아쉬워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떠나는 기차를 바라보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목포집회에서 돌아온 후 다니던 장로교회에 나갔더니 목사가 “박태선 장로는 이단”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체험한 저는 ‘그럴 리가 있나! 은혜를 주시는 분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10년 동안 매일 새벽예배에 빠짐없이 다니며 나름대로 열심히 장로교회에 다녔지만 박 장로님 집회에서 받은 은혜는 전혀 들어 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목사는 집회에 가 보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저런 말을 할까?’ 하고 의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장로교인이신 친정어머니를 찾아가 집회에서 들었던 말씀과 제가 체험한 은혜를 자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 가서 은혜를 알았어요.” 하고 말씀드리자 어머니도 앞으로 박 장로님 집회에 꼭 가 봐야겠다고 하셨습니다.

종일 고단하게 일한 후 잠자리에 들면
박 장로님 집회에서 받은 은혜가 하나둘씩 떠올라
‘그땐 참 좋았지’ 언젠가는 박 장로님 집회에 찾아가리라

그 이듬해에는 폐병을 앓던 남편이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더니 결국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교회 소속의 고아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는데, 하루 종일 고단하게 일한 후 잠자리에 누우면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았던 일들이 하나둘씩 눈앞에 떠올랐습니다. ‘그때 참 좋았지. 지금도 박 장로님은 집회를 하실 텐데……’ 저는 박 장로님에 대한 소식을 듣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박 장로님 집회에 가서 은혜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어머님이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기도처가 함평면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반가운 마음에 수요일 저녁때 그곳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가정집의 방 한 칸을 예배실로 단장한 그곳에는 여남은 명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도처에 들어서는 순간 좋은 향기가 코에 쏟아 붓는 것처럼 강하게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박 장로님 집회에서 맡았던 향긋한 과일 냄새 같은 바로 그 향취였습니다. 순간 ‘아! 은혜를 주시는구나.’ 하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이 어디에서 집회를 하실까 항상 마음속으로 궁금했는데, 기도처에 진동하는 향취를 맡으면서 ‘박 장로님은 여기에도 계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찬송을 부르는 동안 무거운 짐을 훌훌 털어 버린 것처럼 몸과 마음이 가볍게 느껴지며 참으로 기쁘고 즐거웠습니다.

박 장로님 집회에서 은혜 받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 드린다는 기도처를 찾아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좋은 향기가 코에 쏟아 붓는 것처럼 강하게 진동하는데
이전에 박 장로님 집회에서 맡았던 그 향취
찬송을 부르는 동안 몸과 마음이 가볍고 너무도 기쁘고 즐거워

그 후로 저는 매주 수요일이면 함평의 기도처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제가 일하던 고아원이 장로교회 소속이라 고아원 직원들은 모두 장로교회에 다녀야 했지만, 저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함평기도처에서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기도처에서는 연세가 지긋하신 장로님 한 분이 예배를 인도하시면서 박 장로님의 설교 말씀을 설명해 주셨는데, 집회에서 들었던 것처럼 ‘성신을 받아 죄를 씻어야 천국에 갈 수 있다.’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힘차게 손뼉을 치며 찬송을 부르다 보면 어느새 온 방 안에 향취가 강하게 진동했으며 그때마다 가슴 속이 시원하고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 친정어머니는 함평기도처에 열심히 다니시다가 경기도 부천에 소사신앙촌이 건설되면서 신앙촌에 입주를 하셨습니다. 그즈음 저는 아는 사람의 소개를 받아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했는데, 서울에서 1년 정도 지내는 동안 일하느라 바빠서 제단에 나가는 것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신앙촌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이
안수하시고 안찰해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줬답니다.
아주머니도 신앙촌에 가면 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요?`

서울에서 생활한 뒤로 저는 피부가 가려워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조금 나아지는가 싶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심해지곤 했습니다. 온몸이 참을 수 없이 가려워 손으로 긁다 보니 나중에는 손톱이 닳아서 반질반질해질 정도였으며, 몇 차례 병원에 다녀 봤지만 그때뿐이지 아무런 차도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곳곳에 상처가 나고 진물이 흐르는 피부를 보면서 ‘꼭 문둥병자 같다. 이런 몸으로는 더 이상 일도 못하겠구나.’ 하며 한숨만 나왔습니다.

제가 피부병으로 고생하며 병원에 자주 다니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사장이 어느 날 저를 부르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주머니, 전에 들으니 어머니가 신앙촌에 사신다면서요? 그 신앙촌을 세우신 박태선 장로님이 안수하고 안찰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 줬답니다. 아주머니도 신앙촌에 가면 병을 고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저는 깜깜했던 눈앞이 번쩍하고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전에 박 장로님 집회에서 병자들이 나았던 모습이 떠오르며 ‘그래, 신앙촌에 가면 내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몸으로는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저는 사장에게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한 후 소사신앙촌을 처음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때가 1965년 제 나이 서른여덟 살 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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