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관 못 가게 만류하던 목사에게 도리어 전도하다

박순봉 권사(2) / 기장신앙촌
발행일 발행호수 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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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저희 어머니는 미신을 섬기는 분으로 제가 박 장로님의 집회에 다니는 것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던 중 한강 집회가 열렸을 때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동생과 함께 집회에 참석했다가 혼자서 잠깐 집에 들렀는데, 어머님은 “네가 너무 지나치게 다니는 것이 아니냐?” 하며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님이 박 장로님의 집회에 참석하시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집회장에 가시게 하려고 일부러 이런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집회장에 있는 막내한테 밥을 가져다주시겠어요? 저는 집에서 쉴게요.” 했더니 어머님은 알겠다고 하시며 밥을 싸서 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도록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다음 날 집회장에 가 봤더니 어머니는 동생과 나란히 앉아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저를 보시고는 “얘야, 이렇게 좋을 수가 있니. 얼른 가서 동네 사람들을 다 불러오너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다녀오시면 어떠냐고 했더니 “아니다, 나는 여기서 꼼짝도 안 하련다.” 하시며 “지금 향기가 나지? 아주 좋은 향기가 나지?” 하며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집회장 전체가 향기로 가득 차 있다며 좋아하셨던 어머니는 한강 집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참석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집회에 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어머니는
동생을 찾아 집회장에 갔는데 하루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다음날 찾아갔더니 동생과 나란히 앉아 열심히 찬송을 부르며
`얘야, 이렇게 좋을 수가 있니? 얼른 가서 동네 사람 다 불러 오너라`

제가 다니는 새마을교회의 교인들은 박 장로님 집회가 열리는 곳마다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박 장로님의 집회에 가느라 교회에 자주 빠지게 되자 목사가 교인들 집을 심방하며 교회에 나오라고 설득을 했습니다. 우리는 “목사님도 은혜를 받으셔야지요.” 하며 박 장로님의 집회에 가자고 도리어 설득했더니 목사는 마지못해 따라와서 못마땅한 얼굴로 집회장 바깥에 서 있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목사 자신이 박 장로님께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박 장로님 집회에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교인들은 박 장로님의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들리면 지체 없이 달려가 참석을 했습니다.

그 후 저는 원효로에 박 장로님 댁이 있으며 그곳의 기도실에서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드린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거기서 예배를 드리고 박 장로님의 말씀을 들으며 성경상의 ‘감람나무’에 대해 차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호세아 14장의 구절을 풀어 주시며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고 향기를 내리는 자는 감람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박 장로님께서 “쉭! 쉭!” 하시며 축복하실 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뽀얗게 이슬 같은 은혜가 내리는 것을 보았고, 예배 시간에 진동하는 좋은 향기를 맡았기 때문에 박 장로님께서 바로 성경에 기록된 감람나무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박 장로님께서는 이 구절을 설명함으로 많은 비방과 모략을 받고 있다고 하시며 “그러나 나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고 향기를 맡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셨습니다.

박 장로님이 축복하실 때 뽀얗게 내리는 은혜를 보고
바로 박 장로님이 호세아 14장에 기록된
이슬 같은 은혜를 내리는 감람나무이심을 깨달아

제가 원효로 기도처로 예배를 드리러 가는 것을 알고 새마을교회 목사가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목사가 ‘박 장로는 이단’이라고 하며 가지 말라고 하기에 저는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병이 나은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 이단이든 삼단이든 저는 상관이 없습니다. 제가 해골같이 마르고 힘이 없었던 것을 아시지요? 박 장로님께 안수를 받고 이렇게 건강해졌습니다. 거기서 이슬 같은 은혜를 받고 향기를 맡았는데 목사님 교회는 그런 은혜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 은혜를 줄 수 있으신가요?”라고 했더니 목사는 더 이상 대답을 못 하고 되돌아갔습니다.

원효로 하나님 댁의 기도실로 사람들이 점점 모여들면서 얼마 후에는 예배실을 짓게 되었습니다. ‘원효로 구제단’이라고 불리는 그곳에는 시간이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배실이 차고 넘쳐 제단 옆의 샛강 둑에까지 사람들이 늘어서서 예배를 드렸는데, 먼저부터 다니던 사람들은 새로 온 사람에게 예배실을 양보하고 둑에서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저는 매일 영등포 집에서부터 원효로까지 걸어 다니며 새벽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당시는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통행금지가 풀리기 전에 집을 나서면 곳곳마다 경찰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경찰들은 새벽예배에 가는 우리를 보면 손뼉을 치며 찬송하는 시늉을 하면서 “예배드리러 가지요?” 하며 무사통과로 보내 주었습니다.

펄펄 끓는 굴을 발에 쏟아 화끈거리고 따가워 정신을 잃을 정도
마침 순회차 제단에 와계셨던 하나님 앞으로 실려 가 축복 받아
그 순간 얼음을 댄 것처럼 시원하고 나중에 보니 흉터도 안 남아

1956년 여름부터 청암동에 이만제단을 짓기 시작하면서 많은 교인들이 건설 일을 도왔습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건설 장비가 없던 시절이라 지게로 모래와 물을 져다 날랐는데 저는 지게를 지고 싶었지만 번번이 지게를 맡지 못했습니다. 모두들 힘들고 무거운 일을 남보다 먼저 하려고 했기 때문에 지게를 맡는 일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귀한 성전을 짓는 곳에서 다 함께 힘을 모으고 어려운 일에 솔선하면서 즐겁게 일을 했습니다.

이만제단이 완공된 후에는 제가 사는 영등포에 제단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각 제단을 순회하실 때 영등포제단에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제단에 가기 전에 콩나물국을 끓여서 밥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만 잘못하여 펄펄 끓는 국을 오른발에 쏟고 말았습니다. 순간 화끈거리고 따가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저희 집에 오셨던 전도사님이 그 모습을 보고 이웃에 사는 교인들을 급히 부르셨고, 저는 리어카에 실려 제단으로 갔습니다. 전도사님이 하나님께 “발을 데었습니다.” 하고 말씀드리자 하나님께서는 발을 향해 “쉭! 쉭!” 하시며 축복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축복하시는 순간 얼음덩어리를 발에 댄 것처럼 아주 시원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화끈거리고 따갑던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며 온몸이 개운하고 가뿐하게 느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발을 보니 언제 데었던가 싶을 정도로 흉터 하나 없이 깨끗하게 나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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