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수출규제, 전화위복의 호기로 삼아야

홍익희/세종대 교수
발행일 발행호수 2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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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세종대 교수

한일 간 경제 갈등 냉정한 대응 필요

정부는 외교적 화해 노력에 집중

기업은 거래선 다변화를 꾀하고

정밀 부품소재 산업 육성 전력해야

1980년대 초 우리가 직물과 신발 등을 팔고 있을 때, 일본은 이미 세계 최강의 제조업 국가이자 세계 최대 반도체 수출국이었다. 그 무렵 미국은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1983년 반도체협정을 맺어 본격적인 기술규제를 가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해 이병철은 ‘도쿄 선언’을 통해 반도체산업에 뛰어들었다.

그 뒤 우리는 일본을 차근차근 따라잡아 섬유, 조선, 전자, 반도체산업 등 많은 분야에서 일본을 추월했다. 중계무역국인 네덜란드를 제외하면, 우리나라가 중국, 미국, 독일, 일본 다음 실질적인 세계 수출 5강이다. 일본과의 격차도 크지 않다. 2018년 우리 수출액이 6,011억 달러인데 비해 일본은 7,326억 달러였다. 해가 갈수록 격차가 좁혀지고 있어 머지않아 수출액에서 일본을 추월할 가능성마저 있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관계가 한국과 일본이다. 한국한테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빼앗긴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는 일본이 한국이 더 크기 전에 손을 볼 요량으로, 우리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판결을 빌미로 2019년 7월 1일 한국에 대해 3개 품목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대우폐지 등 초강수를 들고 나왔다. 이를 보면서 필자는 하늘이 주신 전회위복의 호기라 여겼다.

전화위복의 호기로 삼아야

6․25전쟁의 잿더미에서 맨손으로 출발한 우리나라는 정말 이렇다 할 수출거리가 없었다. 이를 해결할 방법은 해외에서 원자재를 들여와 가공하여 수출하는 길뿐이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우리는 일본 등에서 실을 들여와 보세지역에서 직물을 생산하고 봉제의류를 만들어 수출했다. 그 뒤 1970년대에는 일본 부품을 수입해 만드는 전자제품 조립산업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자 대일 무역적자가 1990년대 100억 달러로 늘어났다.

이후 일본은 우리 경제를 ‘가마우지 경제’라 부르며 비하했다. 가마우지는 훈련을 시키면 고기를 잡아오는데, 어부는 새가 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목을 끈으로 묶어 놓는다. 어부가 고기를 뺏고 풀어주면 다시 고기를 잡아오는 일을 되풀이 한다. 우리 경제가 그렇다는 것이다. 일본에 부품 값, 기계 값, 기술료 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는 가마우지 경제라는 것이다.

그 뒤에도 대일 무역적자는 계속 증가해 2010년에는 361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나마 이후 적자규모가 조금씩 줄어들어 2018년 대일 무역적자는 240.8억 달러였는데 그 중 151.3억 달러가 부품소재 분야였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경제적 정한론’이 회자되었다. 부품소재 일본기업들이 한국과의 거래를 일제히 끊을 경우, 한국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심각한 것은 한국이 세계 1,2등 하는 분야일수록 일본 의존도가 높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부품소재산업에서 자립할 수 있어야 진정한 극일을 이룰 수 있는 이유이다. 오랜 타성에 젖어 그간 자립이 어려웠던 것이 이번 아베의 도발로 우리기업과 정부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전화위복이다.

현실적으로는 치밀하게 대응해야

2018년 우리나라는 일본 부품소재를 288억 달러어치를 수입했다. 우리 반도체 산업은 불행하게도 이들 일본산 부품소재를 수입해야만 완제품을 제조해 수출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이 수입액의 50%만 자립한다 해도, 이를 개발하고 산업시설을 확충하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이번 일이 전화위복의 기회라 할지라도, 지금과 같은 한일 간 경제 갈등이 오래 지속되거나 더 악화되어서는 현실적으로 곤란하다. 특히 정부가 맞대응 원칙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럴수록 냉정해야 한다. 우리기업과 정부는 내부적으로 결의를 다지더라도, 이를 겉으로 드러내 정치 외교적 마찰이나 양국 간 경제보복의 악순환이 증대되어서는 이로울 게 없다.

정부와 기업은 일본의 경제보복 확대에도 대비해야 한다. 우리나라가 일본의 백색국가 대우에서 제외되면 실리콘웨이퍼 등 1100여 개 전략물자 확보에도 비상이 걸릴 수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은 규제가능 소재별 비상경영계획을 세워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1차적으로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적 화해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한편 기업은 러시아, 대만, 중국 등 거래선 다변화를 꾀하는 한편 궁극적으로 국내 중소기업의 개발과 생산 확충작업을 전력 지원해야 한다. 우리는 자립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 우리가 일본의 정밀 부품소재산업을 따라 잡는 날이 바로 일본을 제치고 수출 4강으로 등극하는 날이자 비로소 온전한 극일이 이루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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