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 제단(10) 특전대⑤.끝

특전대 전도정신 오늘날에 되살려야
발행일 발행호수 2079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서울중앙전도관의 특전대는 밴드부, 판매부, 전도부, 영사부로 편성되어 경인지역과 지방 순회 전도 활동을 펴고 있었다. 당시의 특전대 소속 전도부는 주로 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되었는데 이들은 서울 명문 고등학교 재학생들이 대부분으로 6·25 전쟁을 치른 후여서 나이가 10대에서 20대 후반까지의 혈기 왕성한 젊은이 들이었다. 이들은 특전대 전용버스로 이동하면서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버스 옆에는 신앙신보의 신문 명칭이 쓰여 있었다. 이 버스가 머무는 곳에는 항상 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들곤 하였다.

특전대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는 집회 전날에 그 지역에 가서 밴드부가 주민들에게 하나님의 집회가 있음을 확성기로 가두방송을 한 후 제단에서 연주를 하거나 일정한 공터에서 합주를 하곤 하였다. 그리고 종종 한강 백사장에 나가 놀러 나온 시민을 대상으로 전도 활동을 하였는데 관악단의 연주로 군중이 모여들면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고 날이 어두워지면 하나님 집회의 장면과 소사신앙촌 전경을 영사기로 상영하곤 하였다.
특전대는 1958년경에는 전국 순회전도를 실시하였는데 첫 순회 지역은 강원도였다. 춘천을 시작으로 하여 군인들이 밀집되어 있는 철원을 비롯하여 강릉까지 순회를 하고난 후 다음 순회 지역인 경남지방으로 이동하였다.
“특히 마산에서는 밴드를 앞세우고 연주를 하면서 시가지를 행진하여 연도의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는데 그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특전대원들이 노방전도나 지방 순회를 하고 오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랑하셔서 안수 안찰을 많이 해 주셨습니다.” 이영치 집사 (66세. 부산교회)
이와 같이 중앙의 특전대가 인원과 장비를 갖추어 전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전국의 각 전도관에서도 학생과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특별 전도대가 구성되어 활약하였다. “몇 개월 후에 대전에 전도관이 생기게 되었고, 저는 성가대, 특전대, 안내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특전대로 일을 하면서 충청남도에서 열리는 하나님 집회는 다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집회하시는 곳마다 미리 가서 포스터를 붙이고, 차에 스피커를 달아 찬송을 부르면서 ‘불의 사자 박태선 장로님’이 부흥회를 한다고 이곳저곳 다니며 전하였습니다. 친구들과 노방전도를 하며 하나님 집회 소식을 곳곳에 알렸습니다.” 임영숙 권사(63세. 서울 노량진교회)
“우리는 큰 북을 치며 노방전도를 하면서 시온 제품을 홍보하기도 하였는데 특히 시온캐러멜은 맛이 있었을 뿐 아니라 그 케이스에는 아름다운 소사신앙촌의 이국적인 모습이 칼라로 인쇄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치연 권사(67세. 기장 신앙촌)
이와 같은 특전대의 전도활동은 소사신앙촌과 덕소신앙촌을 거쳐 70년대 초반 기장신앙촌이 건설된 후까지 면면히 지속되었다. 현재의 기장 신앙촌 남성관악단은 특전대가 그 모태였던 것이다. 그들은 인근 지방의 큰 행사나 체육행사가 있을 때 마다 초청되어 시온의 위상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증거하는데 초창기의 특전대가 생명을 내걸고 담대하게 감람나무를 증거한 전통을 이어받는 활약상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못내 아쉬울 뿐입니다.”   어느 초창기 특전대원의 회한의 말이다.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