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준 자갈밭에서 수확한 고구마

임수자 권사 / 전농교회
발행일 발행호수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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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1958년 신앙촌 정문 밖 자갈밭에서 키운 하나에 한 관이 넘었다는 고구마를 들고 조남준 권사(사진 왼쪽)가 웃고 있다. 사진에 보이는 여학생은 18살 때의 임수자 권사.

한 관이 넘는 큰 고구마
아래 사진은 신앙 체험기 1권(54페이지)에 나오는 자갈밭에 심어서 거둔 고구마를 들고 찍은 사진으로 전도사님이었던 오빠가 갖고 있던 것입니다. 남들은 심은 고구마가 뿌리를 내려 고구마가 달릴 때 그때서야 고구마를 심으니까 주위에선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거둘 때 하나에 한 관이 넘는 큰 고구마를 수확하게 된 것입니다. 고구마를 심을 때는 제가 어릴 때여서 사진을 통해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키워주시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준 일이었습니다.
전도사님으로 발령 받아 지방으로 가게 된 오빠를 따라 다니면서 식사를 챙겨주고 수발을 들어주며 다녔습니다. 오빠가 종로 을구의 전도사님으로 있던 때로 제가 19살 때 일입니다. 교회 내부는 다다미 방이었습니다. 난방 기구라곤 따로 없고 유담포(침낭 난방용 물통)라고 하는 1말짜리 탄알집에 물을 채워 뜨겁게 해서 품고 자는데 밤새 식으면 아침에 그걸 난로 위에 올려 놓곤 했습니다. 1월 3일이었습니다. 그날 난로 위에 올려놓은 유담포 뚜껑 단추를 ‘똑딱똑딱’ 반사들이 만지작 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뚜껑을 채우면 물이 끓어올라 터지니까 뚜껑을 채우면 큰일 나는 것입니다. 반사들이 가고나서 뚜껑이 닫혀 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 큰일 나겠다 싶어 뚜껑 단추를 끌러 놓으려고 다가가는데 그만 “뻥”하는 소리와 함께 베니어 합판 천정을 뚫고 유담포가 터지면서 그 물을 고스란히 뒤집어 쓴 것입니다. ‘나 죽는다’고 펄펄 뛰었죠. 오빠는 저를 일단 생명물로 응급처치를 하고 택시에 태워 백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3도 화상도 넘는다며 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눈, 코, 입이 분간이 안 될 정도로 퉁퉁 붓고 얼굴이 무거워 고개를 들고 있을 수 없을 정도였고 하도 누워있으니 허리가 아퍼서 일어나 앉으려고 해도 얼굴이 무거워 쓰러질 정도였습니다. 얼굴은 부어서 한 마디로 호박 덩어리 같았습니다. 엄마 친구분은 문병 왔다가 제 모습을 보고 놀라 쓰러져서 저보다 더 오래 누워계시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너무 속 상하셔서 저보고 ‘병신이 되느니 차라리 죽어라’고 하실 정도였어요.

계속 누워있으려니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픈데도 일어나 앉을 수가 없어서 계속 누워지냈는데 이만제단에서 안찰을 받는 꿈을 꾸었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하나님께 ‘허리가 아퍼요’ 했더니 하나님께서는 다정한 음성으로 ‘응, 허리?’ 하시더니 허리를 탁탁탁 세 번을 쳐주셨어요. 그 순간 벌떡 일어났는데 방안에 향취가 진동을 하고 그렇게 끊어질듯 아프던 허리가 하나도 안 아프면서 그날로 얼굴의 물이 빠지면서 그날부터 눈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데인지 일주일만에 목부터 얼굴 껍질이 싹 벗겨지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히 박피를 한 거지요. 1주일만에 머리를 감는데 오른 쪽 팔뚝에 큰 주먹만한 물집이 잡혀 있는 거예요. 얼굴때문에 미처 보지 못했는데 그 물집은 세달이 지나도록 잡혀있다가 결국 지금도 엄지 손톱만하게 흉터가 남아있습니다. 얼굴엔 화상의 흔적도 없어요. 팔뚝의 흉터는 ‘그날의 일을 잊지 말라고 남겨 놓으신 건가보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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