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기장신앙촌-신앙촌 건설하며 찍은 사진

어려운 고비 때마다 힘 주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발행일 발행호수 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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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신보 사진

기장신앙촌 2동 지붕공사를 마치고. 오른쪽에서 일곱 번째가 김정희씨.

동네(충남 서산군 이북면)에 처음 전도관(이북 전도관)이 생기고 오빠가 열심으로 믿으면서 동생과 저도 따라서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는 군대에 가면서 저를 소사신앙촌에 들여보내고 떠났습니다. 소사신앙촌에서 축복을 받으며 신앙촌에 들여보내 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가 1960년이었습니다.

2년만인 1962년 7월 20일에 덕소신앙촌 건설대로 뽑혀서 가게 되었습니다. 왔더니 두 동의 임시 숙소와 화장실만 지어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아직 신앙도 어리고 나이도 어린 제가 힘들어 하면서 일을 하고 있는 어느날인데, 1아파트 옥상으로 자갈을 지고 올라가면서 ‘힘들어서 못하겠다. 뒤에서 누가 밀어주면 좋겠다’하는 생각을 하는데 진짜로 뒤에서 누가 밀어줘서 수월하게 옥상에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올라와서 뒤 돌아보니 하나님 발이 보이는 거였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그후 제강공장에서 일을 하다가 직조 공장으로 옮겨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하러 뛰어가는데 불러 세우시더니
`여기 못이 얼마나 많은데 뛰어가나, 조심해라`

기장신앙촌 건설이 되고 건설대로 덕소 공장에서 뽑혀 왔습니다. 기장에 오니까 많이 진행이 된 상태였고, 공장 출신들은 따로 일을 했습니다. 원래 건설대들은 빨리빨리 일도 잘하는데 우리는 쩔쩔 매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잘 못하니까 마음에 힘들어 하면서 일을 하던 어느날, 다섯 명이서 철근 하나를 들고 1동 2층까지 올라가서 내려놓고 빨리 돌아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부르시더니 “야, 너희들이 이 무거운 걸 들고왔냐. 장하구나!”하시며 칭찬을 하시는 거였습니다. 고마워 눈물을 흘리며 내려왔습니다.

기장신앙촌을 건설 할 때 하나님께서는 매일 덕소에서 비행기로 오르내리셨습니다. 밤 8시쯤 되면 가셨다가 다음날 덕소에서 새벽예배를 인도하시고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기장에 오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주무시기나 하셨겠나 싶은데 나는 힘들어 갖고 마음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셨는데 지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 되면 나가지 뭐’ 이런 마음으로 갔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며 “이리와 봐라. 가서 식대장 불러와라”하시며 심부름을 시키시는 것이엇습니다. ‘살았구나’ 싶어서 막 뛰어가는데 하나님께서 다시 불러세우시며 “여기 못이 얼마나 많은데 뛰어가냐. 살살 가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생각하면 눈물이 많이 납니다. 그때는 ‘우리 같은 거 나가도 아시겠나’ 했는데 하나하나를 살피시고 귀하게 여겨주시니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돌이켜 보면 그때그때마다 잡아주시고 지켜주셔서 지금까지 따라 올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김정희/ 기장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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