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심방’의 추억

이만제단 건설하며 기쁨이 넘치던 기억도
발행일 발행호수 2256
글자 크기 조절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신앙신보 사진

1957년 4월 이만제단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달려가서 참여한 흑석동 지역의 무더기 심방 기념사진.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50년 전 백정환 권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먼저 하나님의 집회에 참여하시고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저에게도 함께 다닐 것을 말씀하셔서 차마 거절은 못하고 남산집회에 참여는 했으나 하나님은 못 뵙고, 1955년 한강집회 때였습니다. 집회에 가신 어머니가 며칠이 지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으셔서 밥을 해서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리고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곧 오신다는 말을 해서 한번 보고 가려고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당시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서 차를 타고 끝까지 들어가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때 제마음은 ‘유명하신 박장로님이 오신다니 얼굴이나 한번 보고가지’하는 아주 건방진 마음이었습니다. 호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서있는데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며 제게 “학생 뭐이 그렇게 잘났어?”하시는 거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뜨금하며 ‘뭔가 다르긴 다른가보다’ 정도만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거역못하고 전도관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전도관에만 다니겠다고 마음 먹고 처음 안찰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잘난 사람 또 왔어”하시길래 마음 속으로만 ‘죄송합니다’하고 안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안찰을 하시며 “이런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뭐 하나님을 믿었다고 그래. 이거 다 빼야 돼”라고 하셨습니다. 신학대학까지 가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을 모시기에 교만한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만제단을 짓기 시작하면서 청년들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듣고 자원해 달려갔습니다. 처음엔 밤새 경비를 서지 않았는데 자고 일어나면 시멘트가 몇 포대씩 없어지는 걸 알고 돌아가면서 밤새 자재를 지키는 경비를 서기도 했습니다. 터를 닦을 때는 매일 아침 하나님께서 안수를 해주셨습니다. 물자가 풍부하지 않던 시절 아침 저녁 수제비를 해주었는데 국물 따라내면 딱 한 주먹쯤 되는 수제비를 먹고도 배고픈 줄 모르고 기쁘고 즐거웠던 기억만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하나님께서 영적 수도공사라고 하신 무더기 심방을 하실 때 흑석동 지역을 심방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이만제단에서 작업하다 작업복 차림으로 달려가서 예배를 마치고 찍은 기념 사진입니다. 사진에는 당시 영등포 감찰장이던 윤재민 장로님, 노량진 구역장이던 이장로님, 손선보 전도사님의 젊은날 모습도 보입니다.
백정환 권사/기장신앙촌

공유하기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원하는 곳에 붙여넣기(Ctrl+V)해주세요.
인쇄하기
북마크추가
관련 글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