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 받은 뒤로는 근심걱정 사라지고 든든하고 평안할 뿐
왕정숙 승사(2) / 기장신앙촌박태선 장로님께서는 죄를 세밀하고 명확하게 구분해 주시며, 구원을 얻으려면 자유율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죄지으면 지옥이요, 죄를 회개하여 씻음 받고 다시 죄짓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하시면서, 죄를 회개해야 그 마음속에 은혜가 담긴다 하셨습니다. 순간 저는 철없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동생들과 다투었던 일, 남의 텃밭에 열린 호박을 호기심에 손톱으로 살짝 찔렀다가 진액이 조르르 나오는 게 재미있어 자꾸 찌르면서 장난한 일, 그 모든 일이 잘못이요 죄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속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뚜렷하고 큰 것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마음과 생각까지도 낱낱이 떠오르면서 진심으로 뉘우쳤습니다.
시신이 ‘구찌베니’ 바른 것보다 더 예쁘게 핀다는 말씀에
그저 살아 있는 사람의 모양과 같으려니 생각했는데
빨갛게 빛나는 선명한 입술을 보고 다시 한번 놀라
저는 제단에서 찬송을 부를 때 손뼉을 치는 것이 그렇게 어색했습니다. 장로교회의 엄숙한 예배 분위기에 익숙해 있던 저는 손뼉을 치는 것이 아무래도 점잖지 못하게 보여서 ‘누가 뭐라 해도 손뼉만은 안 치겠다.’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찬송 시간에 모두들 손뼉을 쳐도 저 혼자만 치지 않았는데, 어느 날 그렇게 했더니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가슴속이 아주 시원하고 맑아지는 것을 느꼈는데, 그때는 무언가 꽉 막힌 것 같아서 짜증까지 날 정도였습니다. 두 손을 들어 힘차게 손뼉을 치는 순간, 답답하던 속이 시원하게 뚫리면서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으며, 그것이 아주 분명하고 확실하게 느껴졌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 “기성교회에는 엄숙한 모습은 있으나 엄숙한 능(能)은 없다.” 하셨을 때 그 뜻을 분명히 알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예배 시간에 하나님께서 단상 위의 책 받침을 내려치시자, 책 받침의 좌우 양쪽으로 연기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한 뽀얀 것이 확 하고 나왔습니다. ‘아니, 저렇게 단상에서 먼지가 날리다니…….’ 하고 생각했는데, 예배를 마친 후 다른 교인 분들이 “오늘도 단상을 치실 때 이슬은혜가 뿜어져 나왔다.” 하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 그것이 은혜로구나. 그렇지, 귀하신 분을 모시는데 단상 청소를 얼마나 잘 했겠나. 내가 본 것은 먼지가 아니라 이슬은혜다.’ 하며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신이 은혜를 받아 아름답게 피는 것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시신이 구찌베니(くち-べに, 입술연지) 바른 것보다 더 빨갛고 예쁘게 핀다.”라고 하실 때면, 저는 그저 우리같이 살아 있는 사람의 모양과 같을 것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광주제단 교인의 예닐곱 살 된 딸아이가 홍역을 앓다가 죽었는데, 예배를 드려서 참 곱고 예쁘게 폈다고 했습니다. 교인 분들이 아이를 보라고 하실 때, 겁이 많은 저는 시신을 보는 것이 겁나기도 하고 꺼려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아이 시신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아주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썹의 검은 빛, 발그스름한 볼, 그리고 빨갛게 빛나는 선명한 입술 – 그 빛깔이 그토록 예쁠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뚜렷한 색상으로 그려 놓은 인물화를 연상시켰는데, 그토록 곱고 예쁜 모습이 그림이나 화장이 아니라 시신이 핀 모습이라는 것이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저는 예전에 죽은 친구를 보고 몹시 섬뜩하고 무서웠던 기억이 새삼 떠오르면서, 시신이 피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일인지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새벽예배를 드리러 가서 예배실 문을 열었더니, 단상 앞에 하얀 연기 같은 것이 둘러져 있었습니다. ‘웬 연기가 들어왔나?’ 하며 얼른 문을 닫고 이웃집을 살펴봤지만, 어느 집이나 굴뚝에서도 연기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내내 그 뽀얀 것이 둘러져 있어서 마치 단상 앞에 하얀 스크린을 펼쳐 둔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교인의 어린 아들이 숨을 거두어서 입관하여 단상 앞에 안치해 두었는데 그곳에 이슬성신이 계속 내린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곤히 잠든 것 같은 편안한 모습으로 뽀얗게 피어 있었습니다.
원래 이북이 고향인 저는 서울에서 학업을 마치면 곧바로 고향에 돌아갈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남북이 가로막혀 귀향할 길이 멀어지면서 노심초사 애를 태우게 되었습니다. 성격상 유난히도 잔걱정이 많아서 공연히 불안해하며 머리 아픈 일이 잦았는데, 이남에서 혼자 살면서부터는 더욱더 근심 걱정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제가 은혜를 받은 뒤로 근심과 걱정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고질적인 두통 증세도 깨끗이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잡념 없이 맑은 생각으로 기도를 드리면 언제든지 마음이 든든하고 평안할 뿐이었습니다.